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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 2 - 왕의 전설
김시연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철종하면 흔히들 강화도령이라고 한다는데 책을 보고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게됐다.
이원범이었던 19살 시골소년이 나라의 가장 큰 인물인 왕이 되기까지, 하지만 외가 세력인 안동김씨들에게 눌려
왕으로써 제 의견을 내보지도 못하고 옴짝달싹 할수밖에 없었던 눈물의 하루하루를 보냈던 임금으로의 삶과 마지막 죽음도
담고 있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행복했었던 철종의 강화도 소년 시절의 이야기는 그 후 궁에서의 생활과 대비되어 더 안타까움과 슬픔을
자아낸다.
정조의 친척인 그의 할아버지 때 왕가의 피를 가진 사람이란 이유로 누명쓰고 죽임을 당하고 끝내 그의 아버지와 큰 형까지도
처형을 당했다. 나머지 두 형제도 강화도로 유배되어 갔다. 그 곳에서 봉이라는 총명하고 단아한 정인을 만나 사랑을 싹틔워가고
있던 중, 지나친 주색으로 청춘의 나이에 눈감은 헌종 후사로 원범이 지목된다.
조선은 이미 이씨의 나라가 아닌 안동김씨의 나라였다. 외척인 순원왕후가 안동김씨의 권력을 이어가기위해 직접 지목한 사람이
원범이었고, 죄인이란 출신도 무시한채 왕으로 들여오기로 한 것이다.
봉이와 생이별을 하고 궁에들어왔지만 본인이 마음대로 할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죄인이었던 신분때문에 왕의 정통성을 들이대며 비난하는 사람들과 모든 선택과 결정을 하는 안동김씨들에 숨이 막혔다.
날마다 봉이를 그리워해 후궁으로 들이려 하지만 봉이의 조상이 안동김씨와 반대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훗날에 문제되지 않도록 정인까지 죽임을 당한다.
풍파와 비탄 가운데에도 계속 배우고 왕의 자질을 쌓아가다보면 정조처럼 훌륭한 왕이 될거란 희망으로 열심히 정사에 매진하려
애쓴다. 서얼 반대조치, 흉년이 들었을때 백성들에게 환곡을 나누어주고 본인 옷을 수수한 무명옷으로 바꿔입었고, 과거시험의 부정부패를 막기위해 암행어사도 파견하는 등 많은 노력들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적으로 철종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원치 않은 왕을 했고, 왕으로써 할수있는일이 없었고, 사랑하는 정인이 죽었으며, 게다가 강화도의 추억을 나눈 친구들도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또한 왕의 정통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십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고, 생모의 묘자리도 원하는 곳에 쓸수 없었으며 나중에는 누군가가 묘를 훼손하기도 했다.
뒤돌아 생각하니 회한이 밀려오고 억장이 무너졌다. 봉이를 만나 사랑을 나눈 5년을 제위하곤 평생 단 한순간도 행복하거나 즐거운
적은 없었다. 즉위하기 전이나 후에도 늘 생존을 걱정하며 겁에 질려 전전긍긍했다. 이젠 정말 쉬고싶다. 멈추고 싶다.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꼭 여기까지이다. p316
왕의 무력감과 가슴터지는 비탄이 세세하고 개인적으로 잘 묘사되었다. 안동김씨의 세력이 60년 동안 쇠심줄처럼 질기고 어마어마했구나 느낄수있었다.
이들의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그로인해 아전과 관리들은 백성에게 돌아갈 환곡을 떼어먹었다. 안그래도 흉한 날씨탓에 먹을게 없던 백성들은 길길이 날뛰어도 바뀌는것이 없다. 오히려 세금을 더 징수해서 매관매직에 들인 돈을 매꾸길 바빴다. 나중에 농민운동이 터져 바로잡기위해 설치한 기구가 매관매직을 행한 안동김씨들로 구성된게 참으로 아이러니 씁쓸 그 자체다. 그 원흉의 근본이유가 그들인데 말이다. 그 당시 백성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팍팍한지 이해할 수있었다,
궁의 여인들의 삶에 대한 고증이 꽤 흥미로웠다. 양기를 위해 새벽 5시에 맺힌 이슬 한대접씩 먹는 순원황후나, 물담배를 피는 왕대비 등.. 특히 왜 철종이 후사가 없었는지에 대한 암시도 흥미로웠다.
뒤에 숨어서 눈을 번뜩이며 기회를 맹수처럼 기다리는 흥선군은 다소 수동적인 철종과 대비되었다.
흥선군이 고종인 둘째아들 재황을 후사 왕으로 올리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인고로 보냈음을 알수있었다.
외척에 휘둘리고 자신의 뜻을 펼수 없었던 철종을 보면 정말 답답하고 소심해보이기까지 한 생각도 들지만 그 당시 상황이 그의 정신을 우울과 좌절로 끌고갈수밖에 없었던 것같다. 꼭두각시같은 왕이 느낀 일종의 굴욕감도 있었고 무엇보다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들 죽어나갔다. 그냥 강화도에서 봉이와 향초를 팔며 오순도순살았다면 아이도 많이 낳고 나름 행복하게 살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아름다운 순 우리말이 굉장히 많았다. 달빛이 수긋이 비추자~, 흰 꽃을 난만히 피우자~, 으밀아밀 속삭이다~ 와 같은 순 우리말과 낯선 의성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읽을때 쭉 내려가기보다 멈출 때가 많긴한게 좀 그렇긴 하다.
작가는 고증과 자료를 모으기 위해 몇년동안 고생하고 박물관을 수없이 다녔다고 한다. 사극에서 볼수없었던 장면들을 볼 수있고 묘사가 자세하다.
잘 몰랐던 철종의 이야기를 알게되어 뜻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