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한 과학자의 위대한 꿈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시절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아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좋아하는 과목에는

성적이 좋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대학 시절에도 특별하게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지만, 반항적인 태도로 교수들과 마찰로 교수들이 학교에 아인슈타인 오는 것을 꺼려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반항아였다고 한다.

부모님과 사촌형의 직업이 영향이 있었을까?

어린시절부터 전기를 만지는 걸 좋아한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학교에 입학해도 독일어가 어눌하고 자폐 증상과 난독증이 있어, 다섯 살 무렵 입원까지 했을 정도로 인지적인 발달이 매우 늦은 편에 속했다고 알려진다.

어린 시절 아인슈타인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줄 몰라 주로 혼자 놀았고, 기계를 작동해서 움직이는 장난감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는 그런 아이를 야단 치기보다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격려했다.

"너는 세상의 다른 아이들에게 없는 훌륭한 장점이 있으므로 너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길을 찾으면 너는 틀림없이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우주와 관련된 호기심을 다섯살때부터 아이의 특별한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 부모님은 물리학에 남다른 관심과 호기심이 아인슈타인이 탄생한 것 같다.


'만일 사람이 빛의 속도로 달리면서 빛을 바라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이 의문은 '특수 상대성 이론에 관한 최초의 사고 실험' 이라고 한다.

이 의문을 품은 후 10년 후 상대성 이론이 완성되었다고 하니 아이들이 가지는 호기심을 깨버리지 말아야겠다.

기하학과 대수학에 대한 그의 열정으로 인해 12세 소년은 자연을 "수학적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12세에 미적분학을 독학하기 시작했으며 14세 때 그는 "적분 및 미적분학을 마스터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2차대전중에 이미 핵융합반응에 따른 핵물질 추출을 가능케 했고 이에 따라 언제든지 핵무기의 제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나는 인생에서 한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을 만들 것을 권고하는 편지에 서명했을 때였는데, 독일인이 그것들을 만들 위험이 았었다 ..." 1955년에 아인슈타인과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을 비롯한 10명의 다른 지식인과 과학자는 핵무기의 위험을 강조하는 한 선언문에 서명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었고, 이때 미국에 있던 아인슈타인은 원자력이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눈물로 밤을 지세웠다고 합니다.


**출판사에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