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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 - 사이코패스 전문가가 밝히는 인간 본성의 비밀
애비게일 마시 지음, 박선령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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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전문가가 밝히는 인간 본성의 비밀'이라니. 처음에 책 표지에 적힌 문구를 보고, 인간은 모두 악한 존재라고 말하는 무서운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애비게일 마시의 <착한 사람들>은 '사이코패스'와 더불어 '비범한 이타주의자'의 뇌를 살펴봄으로써, 인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착한 존재임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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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느 여름 밤 고속도로에서 이름 모를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밤길을 달리다 갑자기 튀어나온 개를 피하려다 급히 핸들을 꺾었고, 차가 빙글빙글 돌다가 역방향으로 정지한 상태로 엔진이 멈춘 상태에서 지나가던 운전자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그 운전자는 한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추월 차선에서 반대편을 향한 채 고립된 SUV를 발견한 뒤, 차들이 쌩생 달리는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저자에게 다가가, 그 차량을 다시 반대편 차선으로 이동시켰다. 그는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가버렸다. 저자는 "그는 엄청난 용기와 이타심을 가진 사람이 분명하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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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학원 첫해 라스베이거스에서 낯선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을 겪으며, 저자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인간의 성격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낯선 사람에게 구조되었던 일과 낯선 사람에게 폭행당한 일은 묘하게 대조적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사건은 저자에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믿음을 재고해야 한다고 속삭였다. 고속도로에서 저자를 도와줬던 사람이 이례적인 경우이고, 라스베이거스에서 폭행한 자와 같은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나 같으면 그냥 이런저런 사람이 있나보다 하고 지나쳤을 텐데, 저자에게는 두가지 사건이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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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이 잔인하고 냉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는 많다. 하버드 대학교 스턴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지원자'들이 교사가 되어 '학습자'에게 단어 묶음이 나열된 목록을 '가르치는' 실험을 진행했다. 지원자는 학습자가 단어 묶음을 잘못 말하면 레버를 당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레버를 당기면 학습자에게는 전기 충격이 가해진다. 지원자 절반이 학습자가 심한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불구하고 전기 충격을 가했다.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것이었다. 실험 과정에서 지원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진행자는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조용히' 말했다. 조용히 재촉했을 뿐인데도 평범한 미국 남자들은 죄 없는 낯선 사람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었다. 밀그램이 이 실험을 통해 연구한 것은 '권위'에 대한 복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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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연구의 기본적인 결론은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밀그램의 연구 동영상을 보면, 학습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한 지원자들 역시 비참한 모습을 보인다. 지원자들이 결코 무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연구를 다양하게 변형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순종'보다 '연민'이 강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일례로, 대니얼 뱃슨(Daniel Batson)은 전기 충격을 이용해 보통 사람들이 연민의 감정으로 낯선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도울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연구에서는 '권위'와 '연민'이 충돌할 경우 '연민'이 이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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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자는 동정심을 느끼는 뇌 기능이 상실된 정신 질환인 사이코패시(psychopathy)를 유발하는 원인을 찾는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진 아이들의 살아 있는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로 들여다봄으로써, 겁에 질린 표정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활성화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즉,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진 아이들은 자신들의 폭력과 위협으로 인해 타인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도, 그 표정을 식별하고 반응하는 뇌 영역에 결함이 있기 때무에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서, 이 책의 남은 분량이 모두 '사이코패스'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내용이라면 끝까지 읽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침울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자의 연구는 사이코패시 점수가 높은 '사이코패스'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주목해 '비범한 이타주의자'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p.155
인간은 이기적인 본성을 타고났다는 생각은 현대의 수많은 경제학, 생물학, 심리학 연구의 초석으로 남아 있다. 소위 합리적인 자기 이익이라는 경제학적 가정의 기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동기는 잠재적인 의사 결정이나 행동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과비용을 계산하는 내면의 작은 회계 원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즉 가장 이기적인 옵션을 고르려고 애쓴다. 우리 사회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런 믿음이 만연해있다.
(중략)
하지만 밀그램과 뱃슨, 블레어, 그리고 나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의 연구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런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들의 성향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단 하나로 규정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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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이코패스'가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비범한 이타주의자'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장과 같은 장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기증한 사람들이 비범한 이타주의자로서의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신장 기증의 경우, 모든 의료상의 이익은 수혜자에게 돌아가고 기증자는 의료적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과 이익이 불공평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렇게 신장 기증자들의 뇌를 살펴보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비범한 이타주의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겁먹은 표정'을 비교적 잘 인식하며, 그에 반해 '화난 표정'을 인식하는 능력은 대조군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인의 두려움에 대한 공감의 정확도만 평균치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양육 본능'에 대한 내용을 다루면서 두려움을 나타내는 표정이 아이의 표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p.271
이타주의의 가장 뛰어난 예측 인자 가운데 하나가 겁에 질린 얼굴 표정에 대한 반응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보살핌 연속체에서 매우 낮은 끝부분에 위치한 개인들 -사이코패스-은 이런 표정에 매우둔감한데, 아마도 편도체의 기능 장애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두려운 표정을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적절한 감정이나 행동 반응을 나타내지 못한다. 두려운 표정은 공격을 억제하고 공감적 관심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표정을 보고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이타주의자들은 이런 표정에 남달리 민감하다. 겁먹은 표정을 잘 알아보고 강한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
이것이 무척 흥미로운 이유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모든 표정 가운데 아기와 가장 닮은 것이 바로 두려워하는 표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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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잔인하고 냉혹한 범죄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범죄의 상당 부분은 전체 인구의 1~2퍼센트를 차지하는 사이코패스들이 저지르는 것으로, '인간의 본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저자는 공격성과 폭력성 역시 타고난 본성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동정심과 잔인함이라는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으나, 의식적으로 이타주의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p.354
사이코패스는 모르는 사람을 돕기보다 해치면서 즐거움을 느낄 가능성이 더 크다. 보통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 기쁨을 줌으로써 즐거움을 얻는다. 이건은 우리에게 진정한 이타주의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다. 불교 승려이자 신경과학 연구원 마티유 리카르(Matthieu Ricard)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은 타인의 행복을 원한다는 것을 전재로 한다. 타인의 운명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왜 그들을 보살피면서 기쁨을 느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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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활동과 <착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통해 이타주의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행보 역시 이타주의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 호기심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이타주의적 본능을 자극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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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개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판단을 내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 책에 담긴 연구 사례들과 저자의 주장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술술 읽어나가지는 못했지만, 사이코패스에서 비범한 이타주의자, 양육본능, 이타주의 증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주는 색다름에 이끌리듯 책장을 넘기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책장을 덮고서도 생각을 정리하느라 멍하니 있었다. <착한 사람들>은 '인간 본성'에 대해 곱씹어보는 기회를 주는 의미있는 책이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