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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이용마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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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자인 이용마 기자는,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기자로서 한국 사회 전반을 취재해 왔다. 그리고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홍보국장으로서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을 이끌고, 해고되었다. 2016년에는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복막암 판정을 받았을 당시 그가 전해들은 생존 기간은 12~16개월었다. 이 같은 내용을 이미 접한 상태에서 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현실을 그의 문장으로 접하는 것은 역시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에,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오지 않은 사람으로서 치열한 삶을 바라보는데서 오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더해지니, 눈은 문장을 따라가는데 머리 속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서 뒤쳐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p.4)
물론 삶의 고비마다 내가 내린 결정과 판단이 반드시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갈등하며 현실과의 타협을 줄기차게 거부해온 나의 선택이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여지도 많을 것이다. 헤겔의 말처럼 욕망의 체계에 불과한 현실 사회에서 교과서적인 정의를 갈구한 것이 과연 바람직했는지 재고할 필요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이 없는 현실은 마치 미래가 없는 현재와 같다. 나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분노하고, 저항하고, 끊임없이 부딪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언제나 현재보다 미래를 선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빠져나올 수없는 현실 속에서 꿈을 이루어보려는 나의 작은 발버둥이기도 했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 미래가 불안하게 다가오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발버둥은 일상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침묵과 순응보다는 이런 치열함이 소중한 꿈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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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용마 기자가 쌍둥이 아들들을 위해 쓴 책이다. 아들들이 스물 즈음 인생의 행로에 대해 고민할 때, 어쩌면 자신이 곁에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정리한 이 책을 쓴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지,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 그의 아들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펼칠지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p.12)
내가 없다 해도 나의 경험이 너희들의 삶에 밑걸음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살아 있어도 어차피 내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않겠는가. 게다가 나는 남들이 좀처럼 하기 어려운 경험을 많이 하지 않았던가. 나의 경험이야말로 너희에게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정리이자, 우리가 살아온 세상, 우리가 바꾸어야 할 세상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다. 내가 살면서 얻은 경험, 주요 고비마다 했던 고민, 그동안 보고 들었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솔직하게 정리했다. 기자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듣고 느낀 것을 기록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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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기에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기자로서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MBC와 KBS가 파업을 진행하고 있고,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지인이 있기 때문에 책에 담긴 그의 이야기가 남일같지만은 않았다. 저자는 1996년 MBC에 입사해 근 2012년 해고당하기까지 사회, 경제, 문화, 통일외교, 검찰, 정치 등 한국 사회 전반을 취재했다. 그래서 저자의 삶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과정은 곧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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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공영방송이 정치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MBC의 경우, 주식의 70%를 소유한 방송문화진흥회가 사장과 임원 인사를 전적으로 결정하는데, 방문진 이사회는 여야 정치권의 추천으로 구성된다. 방송사가 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국민대리인단 제도이다. 공영방송 사장에 입후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야가 청문회를 실시하고, 그 과정을 국민대리인단이 지켜본 뒤 투표를 하는 방식이다. 생각해본 적 없는 방식인데,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이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음 좋겠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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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시한부 판정을 받고서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모습이 그저 대단하게 느껴졌다.
(p.347)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다고 할 때 언론은 이를 자연스럽게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켜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이 정치권력/언론사주/재벌 등 누군가에 의해 통제된다면 이런 순기능적인 발전 모델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사회적 의제는 정치권력이든 재벌이든 언론사 사주든 누군가에 의해 왜곡될 것이다. 그러면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의제로 등장해야 할 것들이 등장하지 못하게 되고 언론은 또다시 우리 사회를 억압하거나질식시키는 기능을 하게 된다. 사회가 뒤틀리게 된다. 언론이 바로 서야 사람들이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고, 정부가 자기 역할을 하며, 사회가 발전하고 미래가 보장된다.
(p.366)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다. 기득권 세력들이 그동안 쌓아놓은 사회적 적폐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체와 인간다운 삶을 목표로 한다면 가지 못할 길이 아니다. 이 사회를 지금부터 바꾸어 나가야 우리 아이들 세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