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기
김광기 지음 / 김영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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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어원은 뭘까. 언제나 이방인이었던 유대인을 가리키는 단어 '히브리인'은 히브리어로 '이브림'인데, 이는 '아바르'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건너다, 피하다, 넘겨주다, 지나가다, 이민을 가다. 그리고 소외되다, 화가 나다, 젊음과 같이함이라는 뜻까지(p.56). 놀랍게도 이 성질들이 모두 이방인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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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난 내 친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도 내가 이방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방인이 되어본 경험이 있으리라 감히 말한다. 순간적인 감정이건, 장기적인 체험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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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늦게 도착한 영화관 같은 것이다. 도대체 앞부분에 무슨 이야기가 펼쳐졌는지 주위 사람에게 실례가 될까 봐 물어볼 수도 없는, 영화의 결말을 보지도 못하고 그전에 예기치 않게 불려 나와야 하는 영화관 같은 것이다.

- 미국의 비교신화학자 캠벨(Joseph Campbell) p.67

실은 우리 모두 인생이라는 곳에 난데없이 툭 떨어진 이방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떠나야 한다. 처음에는 보호와 양육을 받는 기간이 있고 떠날 때는 예고 없이 떠나는 탓에 자신이 인생의 이방인임을 알아채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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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이방인임을 깨닫는 순간은 따로 있다. 새로운 공간이나 새로운 사람들 속에 빠질 때가 그러하고, 일상 속에서도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이화(익숙한 것을 낯설게 여기고 만드는 것. p.185)를 경험할 때가 그러하다. 

이방인이 되는 것은 대부분 달가운 경험이 아니다. 대부분의 토박이가 이방인을 핍박하고 이방인을 더욱 이방인으로 만든다. 이건 이방인에게는 불쾌한 일이지만 토박이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이방인들을 누구보다 필요로 하는 건 결국 토박이이기 때문이다. 토박이 집단은 자신들의 상황을, 문제를, 광기를 알지 못한다. 평생 그것만 보고 듣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방인도 결국엔 자신이 쌓아온 고유의 관점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객관화는 불가능하겠지만 토박이보다야 거리를 가지고 볼 수 있음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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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까지 다 합쳐서 267페이지. 그리 두껍진 않지만 얇지도 않은 책 한 권을 통해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우리 모두 이방인이라는 진실이다. 인간이라면 이방인일 수밖에 없고, 이방인이 가지는 어려움은 이러한 것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지는 특별함은 저러한 것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는 이방인의 자리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그 불가피함과 가치를 알게 된 덕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덮은 후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 모두가 이방인임과 동시에 토박이라는 진실이다. 사실, 제목에 이끌려 책을 든 사람이라면 이미 본인이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거기서 오는 괴리감을 해소하고자 이 책을 펼쳐든 것이지,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으려는 목적이 아니리라.

저자의 제1목적을 독자들에게 당신들 모두 이방인임을 알리는 것이라고 할 때, 이 제1목적을 이미 충족한 사람, 즉 본인이 이방인임을 잘 아는 사람에게 이 책이 필요한 이유는 이방인이 나뿐만이 아님을 알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나 또한 토박이일 수밖에 없음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이방인인 나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적대적으로만 느껴졌던 토박이를 한결 부드러운, 혹은 안쓰러운 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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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글항아리에서 2014년 출간했던 본인의 저서 '이방인의 사회학'을 대중서로 다듬은 책이다. 실제로 저명한 시인, 소설가,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고, 시쳇말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는 등, 글 내내 조금이라도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그리고 성공했다(최소한 나에게는)! 소설처럼 읽었다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겠으나(ㅋㅋㅋ) 그래도 어려움 없이 흥미롭게 술술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단어의 뜻이나 유래에 관심이 많아서, 어원을 알아보며 그 근원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좋았다. 

사회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이 있지만 겁먹을 필요 없이 일단 펼쳐들면 누구나 재밌게 읽을 책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린 모두 이방인이고 이 책은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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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이라는 단어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서도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나온다. 작년에 이 책을 읽을 때는 많이 공감하지 못해서 이게 그렇게까지 회자된다는 게 신기했는데,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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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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