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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 실재하는 시간을 찾아 떠나는 물리학의 모험
리 스몰린 지음, 강형구 옮김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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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


우리는 만약 어떤 것이 가치 있다면 그것이 시간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뿌리 깊은 개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우리는 시간 속에서 행동하지만 비시간적인 기준들에 따라 우리의 행동을 판단한다.


이러한 역설의 결과 우리는 스스로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사는 셈이 된다. 


최근 읽기 시작한 철학서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에 나오는 말과 비슷한 문제의식이 등장해 책을 향한 호감도가 높아진 채로 독서를 시작했다.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저자

리 스몰린

출판

김영사

발매

2022.08.16.

시간과 비시간


우리는 시간의 영향을 벗어난 듯한 영원함에 큰 가치를 매기는 경향이 있다. 어느 시공간에서도 의미 있는 것을 진리라 부르며 그를 찾기 위해 애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비시간적 진리를 믿는 것은 시간 바깥에서 생각한다는 의미다. 


시간 밖에서 생각한다면,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할 접근법이 절대적이며 이미 존재하는 범주들의 집합으로서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시간 안에서 생각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개념, 전략, 사회조직을 발명할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측면을 기술하는 수학 방정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발명은 '관계'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관계론적인 세계에서는 모든 사물이 공간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관계의 그물망에 속한다. 관계가 공간에 선행하고, 사물은 관계에 의해 정의된다. 이러한 관계망은 정지하지 않고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움을 만난다. 




시간의 실재를 믿는 이유


새로움을 만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이상적인 소리일지는 모르겠다만, 무언가를 제대로 알기 전, 앎을 향해 가는 과정에는 믿음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믿음을 바탕으로 가설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얼 믿을지 결정하는 데에는 지금까지 알아낸 근거가 중한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게 아니라 이걸 믿어야 하는 이유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내 표현대로라면) 저자는 시간의 실재를 믿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시간의 실재를 믿을 때 우리의 닫힌 세상이 비로소 열리기 때문이다. 인류는 불확실함에서 비롯하는 상상력으로 번성한다. 시간을 받아들인다면, 기후 위기 등 현 인류가 당면한 문제 극복을 위한 방향성을 잡을 수 있다. 아예 새로운 관계에서 시작하는 만큼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 


p.415


우리에겐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계주의다. 관계주의에 따르면 미래는 현재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약되며, 따라서 새로움과 발명이 가능해진다. 이는 비시간적이고 절대적인 완벽함으로의 초월이라는 잘못된 희망을 인간 행위자의 영역이 끊임없이 확장되는 진정으로 희망적인 관점으로 대체할 것이며, 이러한 새로운 관점에서 우주의 미래는 열려 있다. 




과학과 철학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뒷표지의 글 하나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카를로 로벨리의 저서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부다. 로벨리는 시간의 실재를 주장하는 유명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이 문제에 한해서는 스몰린과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 그는 이 갈등에 관해 이렇게 썼다.


이것이 바로 과학의 매력이다. 완전히 대립하면서도 그러한 대립 때문에 이루어지는 토론을 통해 서로 배울 수 있고,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친형제처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로벨리와 이 책의 저자 스몰린은 절친한 사이임에도 시간의 실재성에 관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두 입장 중 무엇이 정답인지 알지 못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내가 과학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고, 이 책을 통해 그 오해를 풀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과학에는 정답과 오답만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시간이 정말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다(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과학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제에서는 긍정적인 힘을 내뿜는 갑론을박이 가능하다.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철학이나 윤리 문제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이 과학 책을 어려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었나 보다. 


책의 여는 글에도 적혀있지만, 이 책은 물리학이나 수학에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독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였다. 그리고 이 정도면 저자는 성공했다! 읽기 쉬운 책이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논리 문제를 풀듯 곱씹어 보며 문장 하나하나 읽어나가면 된다. 여러 번 읽어보면 이해가 된다는 것도 철학서의 특징 같다. 철학은 재밌지만 과학에는 관심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꽤 있으리라 믿는데, 꼭 도전해 보길 바란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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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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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저자의 에세이 한 권인지 두 권인지를 나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읽었던 글이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보는 저자명이 반가웠고, 많은 시간이 흐른 작가,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이 흐른 독자의 관계라 궁금했다.


 

 

최소한의 이웃

저자

허지웅

출판

김영사

발매

2022.08.22.

흰 우유와 초코 우유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꽤 초반에 등장한다.


p.72


이 세상은 내가 가진 가장 빼어나고 훌륭한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탱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려주고 싶은 가장 빼어난 것으로 돈 이외에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은 누구보다 가난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정말 건네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봅니다.


제일 좋은 것, 제일 소중한 것을 물려준다는 말이 와닿는다(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불현듯 생각나는 바람에 씁쓸함이 들기도 했지만,,). 이 말은 한 사람이 나고 죽거나 그에 준하는 긴 세대뿐만 아니라 짧은 몇 년 차이의 세대에도, 아니 위아래가 있지 않아도 어느 관계에서나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우유 급식이 있었다. 내가 저학년일 때는 무조건 흰 우유였는데, 학교를 졸업할 즈음, 초코우유나 딸기 우유도 나오는 것에 대한 찬반 설문 같은 걸 진행했다. 우리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점차 변화 중인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내 친구들은 우리는 어차피 졸업하니 찬성해 봤자 소용도 없는데, 후배들만 맛있는 우유를 먹는 것이 싫어서 그냥 반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게 특이한 경우도 아니고 그런 아이들이 꽤 많았다.


그때는 반쯤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면 그런 사람들을, 그런 사회를 꽤 많이 보고 듣고 접하고 살아간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걸 준다고 해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걸 끝까지 놓지 않고 도리어 좋지 않은 걸 두고 간다. 사실 그 심정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라 그런 행동과 생각이 가능하게 내버려 둔 사회가 기이하게 보이기도 한다. 


좋은 것, 소중한 것을 물려주는 마음이 들기 위해서는 그 상대가 좋고 소중해야 한다. 상대가 내 자리를 빼앗는, 혹은 빼앗을 수 있는 경쟁자 따위가 아니고 같은 편이란 걸 아는 게 중요하다. 


p.7 작가의 말


이웃을 향한 분노와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책을 펴냅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아첨하기


책의 마지막 챕터에는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반말 논란과 함께 어린 사람에게 자연스레 말을 놓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최근 서빙 알바를 하면서 내게 말을 놓는 어른들을 많이 만난 터라 더 공감이 갔다. 솔직히 어른들이 나를 존중하는 태도로, 정말 예뻐하는 마음으로 반말하는 경우는 나도 신경 쓰지 않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참 많다. 


저자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다. "젊은 사람을 다루는 데에는 아첨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렇게 할 책임이 없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지." 속이 시원했던 부분인 게, 이게 내가 손님으로 오는 어린아이들에게도 꼬박꼬박 높임말을 하고 더 쉬운 말을 사용할지언정 어른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안내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동등하게 대할 때 그들도 어른스럽게 굴고 싶어 한다. 


아첨이란 말이 부정적인 단어임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윗사람에게는 그렇게 잘하면서 아랫사람에게는 못할 게 뭐가 있느냐는 의문은 든다. 누구에게 하든 아첨은 적절히만 하면 내 편을 만드는 행위다.




동의와 비판의 과정


크게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그래서 한 권의 책으로 나왔지만) 한두 페이지의 짧은 글로 세부적인 논쟁거리를 여러 개 말하는 책이다. 위에는 내가 동의하는 부분을 위주로, 그래서 내 생각이 더 길게 이어지는 부분을 적어놓았지만, 저자와 뜻을 모두 같이하지는 않았다. 나와 정반대라 생각되는 의견도 있었고, 내가 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영역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부분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거나, 괜히 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마저도 독서의 일부고 내 생각을 확장시켜줄 양식이다. 


p.290


지혜란 책 속의 정보 값에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저자의 아이디어와 내 생각이 만나 동의와 비판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기는 겁니다. 사유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고전을 붙잡고 낑낑대야만 사유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만화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장 깊고 넓은 생각의 끝에 닿을 수 있습니다.


양식. 책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마음의 양식. 그건 단순히 읽기만 해서 소화되는 건 아니다. 곱씹어 보면서 나와 맞는 부분은 내 것으로 만들고, 맞지 않는 부분은 타산지석 삼아 내 것을 다시 만들고. 그렇게 해야 양식을 든든하게 먹은 마음이 성장할 수 있다. 진짜 신체의(ㅋㅋㅋ) 양식을 먹을 때도 꿀떡꿀떡 삼켜버리면 안 되고 천천히 씹어가며 먹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그래서 책을 읽은 후 생각을 확장하고 공유하고 정리하는 단계가 소중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럴 여지가 많이 남아 유익하다. 이 글의 처음에 마지막으로 저자의 책을 읽은 게 중학교에서라고 했다. 5년이 더 넘는 시간이었고 나는 성장기를 거쳤고 저자는 투병을 겪었다(그리고 개인적인 상황을 치워두고서라도 그 기간이 사회적으로도 좀 다이내믹하지 않았나.....?ㅋㅋㅋㅋㅋㅋㅋ). 저자가 같을 뿐 다른 책을 읽은 것이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저자와 얼마나 동의하고 얼마나 달리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또 앞으로의, 5년 후의 나는 어떨까. 이 후기가 있으니 그때는 내 과거의 기록과 비교해 볼 수 있겠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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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 - 우주의 탄생부터 인간 의식의 출현까지
박문호 지음 / 김영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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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책의 들어가는 말을 지나 첫 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대중적인 과학 입문서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본격적이라 방금 펼친 책을 그대로 덮고 싶었지만, 저자 소개에 있던 문장이 날 붙잡아줬다.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가 모토'. 반박할 수없이 멋진 말이다.



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

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

저자

박문호

출판

김영사

발매

2022.06.30.

대중의 과학화


과학의 대중화, 그리고 대중의 과학화. 두 가지가 무엇이 다르냐 묻는다면, 아쉬운 쪽과 아쉽지 않은 쪽, 둘 중 변화해야 하는 게 누구냐고 되묻겠다. 당연히 상대가 없을 때 아쉬운 쪽이 상대에게 맞춰 변화하는 게 옳다. 사실 과학은 인간이 없어도 변함없이 존재하지만 인간에게는 과학이 필요하다. 그러니 인간이 과학에 맞춰야 하는 것. 이때까지는 '인간'의 역할을 과학자들이 전담해왔지만 이제 우리도 인간으로서 역할(ㅋㅋㅋㅋㅋㅋ)할 때가 왔다. 그래서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가 맞다. 변화는 과학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니까.




-라고 당차게 말한 것치고는 읽는 속도가 너무 더뎠다(;;). 그래서 그냥 내 관심을 끄는 부분을 바로 펼쳐버렸다. 책은 우주-지구-생명-인간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인간이 제일 궁금해서 제4장 '인간과 의식의 진화'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생명, 지구, 우주의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인간에서 우주로 거슬러 올라가기


저자의 의도와는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나처럼 흥미 부분부터 읽는 시도를 해보기 바란다. 어차피 하나의 굵은 줄기로 이어져 있기에 앞으로든 뒤로든 알아서 이동하게 되어 있다. 다만, 나는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대충 납득하며 책장을 넘기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뒤에서부터 읽어도 문제가 없었는데 그렇지 않다면 이 방법이 어려울 수도 있을 듯하다.




인간의 사고: 이미지 사고와 언어 사고


인간의 사고에는 이미지 사고와 언어 사고가 있다. 언어 사고는 논리, 추론, 계산에, 그리고 이미지 사고는 기억, 상상, 느낌, 창의성에 사용된다.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 사고가 언어 사고다(너무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쳐 지나가지만 일단 무시).



이미지와 영상이 난무하는 시대에 언어, 글, 문자의 중요성을 잊지 않게 해주는 과학적 증거 같아서 너무 반갑다. 우리 시대의 중심을 잡고 있는 SNS 두 가지는 이미지 위주의 인스타그램, 영상 위주의 유튜브. 긴 텍스트가 메인인 SNS나 플랫폼이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언어 사고가 이미지 사고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지 사고가 언어 사고보다 중요한 것도 절대 아니다. 이 점이 자꾸 잊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언어라고 해서 기나긴 글만 포함하는 게 아니고 영상물의 짧은 대사 한 줄, 제목 한 줄도 당연히 언어다. 몇 초짜리 영상에서도 언어의 영향을 생각해 보면 더 재밌을 거다.




왜 과학자의 역할이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는 서술 방식이 무슨 매체에서 만들어낸 전형적인 이과형 인간 같다는 생각을 했다(ㅋㅋㅋㅋㅋ). 방대한 이야기를 한정된 공간인 책 하나에 담으려다 보니 핵심만 딱딱 전달하느라 사례나 비유를 들지도 않고 '다시 말해'나 '쉽게 바꿔 말하면' 같은 것도 없다. 가장 친절한 부분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이다.


열등생을 배려하지 않는 듯한 글쓰기에 서운하려 했으나 이 문과형 인간의 얄팍한 서운함은 나가는 말에서 싹 풀려버린다.


p.269


의미는 인간 뇌 작용이 생성한 정보적 속성이지 자연물이 아니다. 자연의 목록에 의미라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와 상징은 인간의 신경 시스템이 창출해낸 정보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우주다. 의미의 세계는 우주 속 존재인 인간에서 생성되었지만 물리적 우주를 모두 담아낸다. 존재가 존재의 근원을 밝혀내는 순간 그 존재는 더 이상 존재가 아니다.



책을 전부 읽었으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해 내가 과학자도 아니고 이걸 알아서 뭐 하나,라는 실망 섞인 포기를 하려는데 저 문장을 보니 어떻게 해서든 이 책을 다시 독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의 근원을 밝혀나가는 건 과학자들이 한다 손치더라도 그걸 소화하는 건 내 몫이다. 마치 알파고를 이긴 게 이세돌이지 나나 인류의 승리가 아닌 것처럼(ㅋㅋㅋㅋ) 아무리 과학이 그 처음을 찾는대도 그걸 내가 따라가지 못한다면 난 그냥 존재에 불과하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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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2022-08-2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덮었다가 이 리뷰를 읽고 그래도 좀 쉬울것같은 인간 챕터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쪽은 그래도 잘 읽히네요 ㅋㅋ
 
플랫포노베이션하라 - 플랫폼의 핵심을 꿰뚫는 6개의 질문
박희준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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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지탱하는 원리가 사라지고 담론 체계가 허물어지는 불확실성의 시대" (p.53)


영국의 석학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1970년대 중반 국제 금융 시장의 혼란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 말이다. 저기서 50여 년이 더 흐른 지금은 아예 '초불확실성의 시대'라 할 만하다. 저자는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와 공급자가 재빠르게 소통하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성행한다고 말한다. 각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안이 바로 플랫폼이다. 


 

 

플랫포노베이션하라

저자

박희준

출판

김영사

발매

2022.07.06.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부르짖는 플랫폼은 대체 뭔가. 플랫폼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 승객들은 비용을 지불해 이동 수단을 제공받고, 철도 운영사는 비용을 지불 받아 이동 수단을 제공하는 장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플랫폼의 뜻은 여기서 더 확장되어 '참여자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를 교환하는 공간'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재화나 서비스가 일어나는 온갖 곳이 모두 플랫폼이다. 하지만 우리가 대형 마트를 플랫폼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그 자율성에 있다. 


p.24


플랫폼의 핵심 기준은 상호작용의 자율성이다.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복수의 집단이 충분히 자율적이고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를 교환할 때 플랫폼으로 정의될 수 있다.


대형 마트는 마트의 폐쇄적인 운영 아래에서 교환이 일어난다. 자율적, 직접적 상호작용이 없다면 플랫폼이라 불리지 못한다.




고객에게서 나오는 브랜드 구축


책을 읽으며 공감한 부분 중 하나는, 소비자들의 신뢰가 더 이상 기업의 통제 영역에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p.212). SNS의 활성화로 소비자들은 소비자 사이에 공유되는 평판에서 구매 결정의 신뢰 근거를 찾는다. 발 빠른 기업은 이를 확인하고, 고객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 기반 공간을 제공하고 그 공간에서 공유된 이야기를 소재로 브랜드를 구축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LG를 바로 떠올렸다. 자신들이 '마케팅 못하는/안 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또 그게 커다란 마케팅 포인트가 되리라고는 LG 본인들도 몰랐을 테다(ㅋㅋㅋㅋㅋㅋㅋ). 만약 이걸 의도한 것이라면... 그야말로 마케팅의 신. 아직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LG의 광고는 못 본 것 같은데, 대기업 나름의 자존심을 내려두고 잘 써먹는다면 기막힌 광고가 나올 거라 생각한다. 




프리랜서, 현대의 용병


이러니저러니 해도 개인의 입장에서 읽은 내게는 마지막 챕터인 '플랫폼에서 선택받는 노동자가 되려면' 파트를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밖에 없다. 나 또한 프리랜서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책의 앞부분에 프리랜서라는 단어의 유래가 나온다. 중세 서양의 용병 free(자유로운)+lancer(창기병)에서 나온 말로, 이들은 대의명분이나 고용주의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보수를 위해 옮겨 다녔다고 한다(p.101).



하지만 나는 현대의 프리랜서가 또 다른 양상을 띤다고 본다. 공동체의 가치관 대신 보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을 선택한 게 현시대의 프리랜서다. 예전에는 나와 같은 가치관을 지닌 공동체를 찾아 그 안에 소속되고, 차이가 있다면 거기에 맞춰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나만의 가치관을 유지하며 그때그때 상생하는 공동체와 협력한다. 책에서도 뒷부분에는 이 점을 인지하는 듯하며, 개인 노동자(개인 노동자가 프리랜서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로써 살아남는 방법을 꼼꼼히 알려준다.



이 후기의 처음에 '사회를 지탱하는 원리가 사라지고 담론 체계가 허물어졌'고 우리는 '초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저 말만 보면 꼭 대혼돈과 암흑의 아포칼립스 세계로 들어갈 것 같지만, 우리의 문명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사회의 원리와 체계가 흔들린다는 것은 이전에는 목소리를 키우지 못했던 개개인, 소수의 생각들이 일어선다는 의미다. 미래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다양한 선택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닐까. 그 여러 선택들이 다양한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것일 테다.




플랫포노베이션 안내서


책의 뒤쪽 책갈피에는 '플랫포노베이션을 알기 위한 가장 탁월한 안내서'라고 적혀 있다. 빈말이 아닌지 안내서의 역할에 정말 충실한데, 우선 목차가 최고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에 앞서 언제나처럼 목차를 읽다가 진심으로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 참 깔끔하고 정갈한데 호기심도 이끌어내는 목차다. 대략 설명하자면 플랫폼의 정의/ 플랫폼이 필요한 이유/ 이가 불러올 변화/ 변화의 조력 요소/ 기업의 방향성/ 개인의 방향성으로 나뉜다. 필요한 내용을 순서에 맞게 적절한 키워드로 보여준다. 


본문에는 중요한 문장이 초록색 글씨로 강조되어 있으며 챕터의 마무리마다 각 꼭지를 요약정리해서 한두 장으로 정리한 페이지가 있다. 이런 구성의 책은 종종 볼 수 있만, 정작 읽어보면 생각보다 핵심적이지 않고 그냥 멋만 들어간 부수적인 문장을 강조해놓은 경우도 있던데 여기는 정말 핵심 요약정리라서 좋았다. 긴 정보글을 읽는 데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이 정리 부분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도 좋을 듯하다. 



또한 저자가 한국인이라 더 좋았다. 언급되는 사례 중에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나 기업이 많아 공감하기 쉽고, 외국의 사례를 담는 경우 독자에게 생소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설명이 상세하다. 책 전체를 평가하기에는 사소한 요소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 완성도는 사소한 부분에서 나오니까. 


글로 된 지도가 있다면 이런 책이 아닐까 싶도록 완벽한 안내서다. 이 책의 도움을 받는다면 플랫포노베이션의 세계에서 길을 잃을 것 같지는 않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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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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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는 어떻게 대처하고 계신지요?"


그는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처하지 않습니다." (p.189)


남자에게만 치명적인 전염병의 시작을 발견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고, 결국 두 아들과 남편을 잃은 어맨더는 슬픔에 대처하지 않는다.



엔드 오브 맨

엔드 오브 맨

저자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출판

김영사

발매

2022.04.15.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었지만, 동시에 예상대로 너무 재밌어서 500쪽에 달하는데 두 번 만에 다 읽었다. 최근 내 집중력을 고려하면 매우 눈에 띄는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생존 이후


워킹데드에 준하는 아포칼립스물을 떠올리며 책을 펼친 바람에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맞이했다. 내가 예상한 아포칼립스물과 다른 점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점은 생존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라고 본다.


책은 발병 5일 전부터 발병 1745일째까지를 띄엄띄엄 담고 있고, 목차는 세계의 정황을 보여주는 단어로 이뤄져 있다. 이전, 발생, 공포, 절망. 그리고 생존, 회복, 힘, 적응, 마지막으로 기억.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남거나 마찬가지로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 각종 재난재해/아포칼립스 장르물은 보통 해피엔딩이건 새드엔딩이건 폐허 속에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시 일어난다. 새로운 사회가 굴러간다. 인류와 그 사회는 종말을 맞는 대신 생존하고, 회복하고, 힘을 얻어 적응하고, 과거를 기억한다.



이 책은 여러 캐릭터를 오가며 1인칭 시점으로 쓰였다. 그래서 여러 위치에서 여러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전염병 때문에 찾아온 변화는 누군가의 직업은 빼앗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커리어는 쌓아줬고, 누군가의 가족은 죽였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찾아다 줬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기존의 사회가 남성 위주의 견고한 독재 정권이라면 누군가는 분명 그 사실을 반기고 기회로 삼는다. 기묘한 일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이 '여자들'일 때


책의 화자는 대부분이 여자이지만 살아남은 소년의 편지가 하나 포함되어 있다.


p.396


근데 뭔가가 달라요. 여자애들이 너무 많고 선생님도 모두 여자니까, 이제는 우리가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요즘 사람들이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실제론 '여자들'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우리는 장애인을 떠올릴 때 남자 장애인을 주로 떠올린다고 한다. 사람의 기본 형태를 자연스럽게 남자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자기는 여자 장애인을 떠올렸다거나 그건 과대해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사람,인데 '여자인'. 사람,인데 '장애를 가진'...



최신 아이폰은 여성 손에 맞게 크기가 작아졌고 의료 기준 또한 여성 위주로 돌아가며 경찰관 소방관 군인의 의복도 여성의 신체에 맞게 제작되어 사망률이 감소했다. 여자가 디폴트인 사회라니. 그게 공평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회를 향한 궁금증이 치솟는 건 사실이다.


엔드 오브 맨 속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여자 장애인을 떠올릴 테다.




기억을 위한 기록


내가 여러 콘텐츠를 향유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상들을 좋아한다. 이중 하나만 보았다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여러 감상들이 겹쳐져서 나오는 새로운 감상.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유지니아'라는 책을 읽었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기록되면서 처음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인정을 받는 것", 그리고 "보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면 보이는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엔드 오브 맨에도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함이 연구의 목적이라는 부분이 나온다(p.405). 직전에 읽은 책과 비슷한 내용이 나와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엔드 오브 맨은 다시 반대되는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p.457


"그들이 기억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우리의 아들과 남편들 말이에요. 아니면 그냥...... 사라지는 걸까요?"


"나는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 대해 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고 생각해. 우리는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것을 기억할 거고. 그거면 충분할 거야.


알지? 세계가 너를 기억하지 않아도 너는 중요한 사람이야. 우리는 사랑했던 그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어. 모두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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