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이야기이다.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청소년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행해만사”무슨 일이든 말만하면 다 풀어준다는 뜻인데, 장보고의 무리에 끼여 심부름을 하던 장희는 장보고가 망한 후 15년 정도 모은 재물을 탕진하며 살아간다. 탕진 재미를 모두 끝낸 후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시장 어귀에 행해만사를 열어 어려움을 풀이해주고 해결해주는 일로 끼니를 이으려고 한다. 첫 손님은 순진하고 어리석으며 신의가 있는 한수산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재산을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게 된 상황이었다. 장희에게 자신의 고민을 풀어놓은 한수산은 은장신구를 맡기는데, 원래 의리라는 것이 없는 장희는 몸을 빼서 한수산을 등쳐 먹을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한수산에게 돌아가 그를 구하는 길을 선택한다. 무슨 대단한 당위나 대의가 있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순진무구한 어리석은 남자에게 온전히 사기치는 선택을 하지 못해서이다. 불의한 마을 사람들을 따돌려 작은 배에 의지에 서해로 나아가던 장희와 한수산은 이름이 왁자하게 난 해적 고래대포에게 잡힌다. 죽을 위기에 있지만 부하로 삼아달라는 간교한 장희의 말이 수용 되기도 전에 백제의 후예를 자처하는 해적단의 기습 공격으로 장희와 한수산은 이제 그들에게 잡혀가는 신세가 된다. 거기에서 한수산은 백제 왕의 손녀의 손녀의 손녀 쯤 된다고 하는 족보가 부실한 공주의 남편감으로 낙점이 되고 장희는 포로처럼 갇혀 죽을 날만 받아두게 된다. 장희는 장보고의 무리에서 온갖 세상을 다 보고 자란 터에 배포가 크고 타고나길 영민하고 말이 간사하여 누구든 말로 설득하기가 좋아, 이름만 공주의 남편감인 한수산을 해적 우두머리들의 간계에서 자주 구해주고 결국에는 한수산이 공주와 결혼할 수 있게 해준다. 신분 또한 공주 아래 장군들의 위치와 같게 하고 자기 스스로도 그 바로 아래 관직을 획득 한다. 싸움 한 번 없이 신라의 조세선을 공략하여 재물을 나누어 갖는데 성공한 장희의 이름은, 소문만 무성하여 “서해의 공주 해적”(장희 자신)이라면 벌벌 떨게 만드는 공포의 대명사가 된다.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명분 아래, 장군놀이, 공주 놀이를 하고 있는 무리의 본질을 꿰뚫은 장희는 이들의 결말을 위해 숨겨졌다고 소문 무성한 풍 태자의 보물을 찾는 일을 연출한다. 세세한 것은 다 계획하지 못했지만 보물이 발견되었을 때 본색을 드러낼 누군가를 예상하여 살아날 길을 열어둔다. 거창하고 허황된 것 같은 말들을 믿는 사람들과 어리석은 대중을 명분으로 묶어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의리와 명분에 크게 묶이지 않으면서 본질을 꿰뚫는 사람이 등장하면 그 판은 형세가 달라진다. 재미있는 깨트림이라는 생각이다. 최근에 종영한 <빈센조>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변호사 홍차영 같은 인물이 이런 유형인 것 같다. 아니다, 오히려 더 멀리 있고 넓은 아우라를 갖고 있다. 명분의 허명을 알면서도 인정과 의리는 있다. 때론 비윤리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의리를 지켜야할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여 반대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이 주변에 있던가. 위험한 사람일까?ㅎㅎㅎ 나는 이 사람 편에 서고 싶은데 그 이유가 뭘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