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난 국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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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기존의 지식을 토대로 결합하고 융합하여 이루어진다. 이 책도 그런 과정에서 태어났다. 토머스 탈헬름(시카고대 경영학과의 심리학자)의 ’중국의 벼농사와 밀농사 지대에 대한 집단주의-개인주의 비교 연구’에 흥미를 가진 작가(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그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구체화 된 것인데, 협업에서 얻은 ‘쌀 이론’과 자신의 ‘재난’, ‘국가’ 이론을 적용하여 한반도 정주민들이 겪은 불평등의 진화 과정을 밝히고 있다. 특별히 ‘심리’와 ‘제도’라는 측면에서 불평등 구조가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 불평등에 대한 정주민들의 인식은 어떠한지, 불평등은 어떤 제도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발현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협업, 위계, 경쟁’이라는 상충하는 용어들이 쌀문화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공존하는지 역사적으로 짚으면서 불평등에 대한 인식, 협업과 경쟁이라는 모순 구조, 경쟁의 극단인 교육열, 노동시장의 차별 구조를 밝힌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세 가지 질문을 이끌어내고 그에 대한 답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꿴다. 처음은 동아시아인들의 협업 네트워크가 어디서 온 것이며, 얼마나 어떻게 효율적인가? 다음은, 권위주의라는 위계성이 민주주의 안에서 왜 살아있는가? 마지막은, 대단한 네트워크와 협력성에도 불구하고 왜 목숨을 건 경쟁을 하며 왜 그토록 불평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이다.

‘쌀’이라는 한반도의 생태적 환경 공간과 먹거리를 공유했던 선조들의 삶은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에 공통의 구조로 작동(장기지속) 한다. 특히 불완전체인 ‘밀’이 서구를 자유롭게했다면 완전체에 해당하는 ‘쌀’은 동아시아를 갇히게 했다고 본다.

저자는 쌀이 동아시아 국가를 아래(시민)로부터 형성되게 했다고 주장한다. 쌀농사에서 ‘공동노동 조직’은 필수불가결하였으며 이로 인해 협업, 상호 감시, 재난 대처 등의 유전자가 작동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발판 삼아 ’쌀,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하는 유산을 현대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제도에 걸맞게 재구성하려고 한다.

저자는 벼농사의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동아시아 국가의 기원을 밝히고, 당시 국가의 쓸모(?) 및 국가의 재난 대응 정치를 보여준다. 벼농사의 성패는 물을 다스리는 것에 있고, 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국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벼농사를 위한 전통적인 협업의 문화는 자본주의에서 하나의 ‘관계 자본’이 된다. 공동 노동의 경로를 겪은 시민은 서로 다른 추수(소득차)의 문제로 인해 불평등을 인식하게 되는데 이런 일들이 무한 반복되면서 경쟁력이 강화되고, 질시가 심화 되며 신뢰와 불신이 공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세 가지 역사적 패턴이 ‘네트워크 경쟁’이라는 모순적 언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관계는 ‘상대적 불평등’을 더욱 민감하게 느끼게 하며 그 내부에 평등화와 차별화를 강하게 열망하게 한다. 공동 생산 시스템에서의 평등화에 대한 욕망과 개인 소유 시스템에서 생기는 무한 경쟁과 불신, 불평등에 대한 민감성이 이렇게 강화되면서 반복되어 온 것이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보편적 복지와 연공제 타파 및 시험이 아닌 숙련도를 성과 및 성취의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한다. 개개인에게 다양한 시도를 허용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과 분위기를 만들고, 국가가 과거에서처럼 한시적 재난 대비처로 머무르지 않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편적 복지를 이룰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하라고 한다. 청년 고용과 여성의 취업 문제, 노사 갈등과 같은 차별과 불평등 구조가 이런 대대적인 개선과 개편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대다수의 동아시아가 연공제를 극복하는 동안 우리는 오히려 강화했다고 한다. 현상으로 보자면 옳은 말이다. “개혁은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절박한 필요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통찰을 받아들여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개혁적 사고를 해야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쌀 문화로 형성된 이율배반적인 공동생산 시스템과 개인의 소유라는 측면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 수시로 엄습할 재난에 대해 국가적 대처와 기업 및 개인들의 노력이 어떠해야하는지 역사적,객관적 입장에서 흥미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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