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맥어스킬 #냉정한 이타주의

“냉정한 이타주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세상을 바꾼 것이 열정이 아니라 냉정이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합니다.
아이들의 문구점 뽑기 두 판이면 이미 1000원이 되고, 인형 뽑기는 시작하면 만원까지 쉽게 갑니다.
그 돈 아껴서 후원하면,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는데 그 순간의 유흥과 쾌락은 좀 경험해 봤으니 이제 누군가를 살리는 절대적인 도움을 줘 보지 않겠냐고 설득하기 좋은 근거들이 있습니다.

아사히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아주 미약하게 후원하는 일이 좀 지속되면서 간혹, 아주 간혹..내가 돕는 작은 힘이 보태어져 “생계비”를 지급했다는 문자를 받을 때 눈물이 날만큼 울컥합니다. 누군가의 생존 문제가 여전히 치열하다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나도 그에 멀리 있는 삶은 아닙니다만.
후원금을 받아 어떻게 사용했는지 잘 알려, 후원을 이어지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분들의 절박함이 간혹 날아오는 문자에 무게를 싣고 다가올 때 책상 앞에 앉아 그런 것들을 요약하던 일들이 슬쩍 부끄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간혹, 주객이 전도되는 일들이 있으니까요.
나는 돈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많이 돕고 싶습니다. (물론 책을 살 때는 놓아지는 이성을 모른척 하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이분들의 투쟁이 결실을 맺고 승리하길, 그리하여 내 작은 힘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길 기도합니다. 바라기는 이젠 돈 좀 있어서 더 잘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해보려고 했는데, 잘 모르겠고. 이젠 뭐가 효율적인 베풂이고 도움인지 살짝 지혜를 보태어 예리하게 생각해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각 나라별 구호단체들의 후원금별 효율을 따져 효율적으로 구호하는 단체를 발굴하여 대거 후원했다는 저자의 지혜가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일테면, 아주 비효율적이지만 마냥 견디며 도와야하는 곳이 있으니) 대체로 그 방법상의 문제을 두고 말하는 것이기에 방법을 옳게하는 이들이나 그 도움의 필요가 절대적인 곳을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균형은 내것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평균 아래에 있는 누군가를 평균 상태에 끌어 올려놓는 것이며, 그것이 곧 “사랑”이자 “정의”라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