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 생리하는데요?>, 오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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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많은 제약 중에 하나는 ‘성(性)’ 에 관련 된 것이다. 그동안 생각도 못해봤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남성의 생식기를 이르는 말은 그렇게도 많은데 여성의 생식기를 지칭하는 말은 부정적인 말을 다 빼버리고 나면 남는 말이 없고, 여성의 생체적 특징이면서 거의 반평생을 함께 할 ‘생리’ 관련해서도 그동안 얼마나 묵살 되어왔는지도 느꼈다.
정말 생리를 생리라 말하지 못하고(그마저도 여성의 월경을 완곡하게 표현한거라던데), ‘그 날’ 혹은 ‘마법’ 이라해야하는 줄 알았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 믿던 날들이 생각났다. 그런 날들이 아주 길었어서 지금도 ‘생리’ 라는 말을 내뱉을 때 조금의 머뭇거림이 있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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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면서도 마치 누가 내 입을 틀어막고 있기라도 한 듯, 혀끝을 맴돌던 말들이 결국 언어가 되지 못하고 목구멍 뒤로 삼켜졌던 경우가 허다했다. -p.8
/언어위 힘, 특히 ‘호명’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생리를 생리라고 호명할 수 있는 힘은 생리 그 자체의 힘이자 여성의 힘이다.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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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생리를 생리라 부르는게, 그게 뭐 중요한 일인가? 할 수도 있지만 작은 것부터 입이 틀어막히면 큰 것은 더욱 더 말할 엄두조차 나지 않게 된다. 차별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함을 또 다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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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생리를 긍정해본적이 있나요?’ 라는 질문을 누가 한다면 정말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번에 ‘예!’ 라고 대답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다. 나만해도 생리는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 더 나아가서 해도 싫고 안 해도 싫다고 생각하니까.
근데 이 책을 읽고, 물론 바로 판 뒤집듯이 긍정! 할 수는 없겠지만 차차 조금씩 긍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는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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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 책에도 나오지만 생리는 한 달에 한 번하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건강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는 거! 내 경우에도 생리통이 너무 심할 때 엄마한테 말하면, 그게 네가 한달을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는 거야, 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게 정말 신기하게도 딱 그랬다. 그 한 달 동안 이런 저런 일로 밤을 많이 새거나, 스트레스를 더 받거나 하면 그 달 생리통은 어김없이 나를 아주 극강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고, 너 또 그렇게 살거야 안 살거야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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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애초에 그냥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부정할 이유가 있는지에도 의문이 들었고, 차라리 충분히 더 연구하고 더 좋은 약을 만든다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지 않는 사회를 바꿔나가는 쪽으로 생각하는 게 두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에 인터넷에서 만약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생리/임신을 한다면 이미 많은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고, 좋은 약들도 개발되었을 거라고 우스갯 소리로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젠 그런 것들이 전혀 우스갯 소리로 느껴지지 않는다. 웃기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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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이 책이 생리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생리에서 시작해 여성에 대해 말하고 있고, 사회 기저에 만연해있어 눈치 채기 힘든 여성 혐오에 관해 말하고 있고, 결국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여성의 목소리를 죽이고, ‘남성’ 이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그 존재 자체를 지우려 했던 사회에 살게 돼, 세상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잘 몰랐던, 그래서 알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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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생리대 광고에서 ‘푸른색 액체’ 를 보고 진짜 생리가 파란색이라고 생각하는 분,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 여성을 보면 꼭 ‘생리 중이야?’ 라고 묻는 분, 생리 휴가/공결이 역차별이라고 생각하는 분 등등이 있으시다면 반드시! 꼭!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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