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기 때문에선지 평소 지식인들의 서재이야기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을 참 좋아한다. 책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같음에 큰 동질감이 좋고, 또 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그저 책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좋다.
거기다가 이번엔 책과 메모에 미쳐 살았던 옛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주는 정민선생님의 글이라니.
많은 일화 중 가슴에 와 닿았던 부분을 몇 개 회상해 보자면,
첫 번째로는 정민 선생님의 대학 중문과 교수님의 편지묶음.
그 교수님의 스승님은 그 제자에게서 받아왔던 편지들을 쭉 보관하고 계셨다.
그리고는 어느 날 그 제자에게 받아왔던 편지들을
‘내가 늙어 더 이상은 보관하기가 어려우니 이제 돌려줌세’ 라며 전해주었다.
그 제자 또한 스승님에게서 받은 답장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두 묶음의 편지를 맞추자 문답이 딱 맞는 서간첩이 된 것이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까맣게 잊고 있던 수십년 전의 자신의 필적을 통해 그 시절의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감동이라니.
옛 문인 이덕무도 세상을 뜨자, 이서구가 이덕무의 아들에게
이덕무에게서 받았던 평생 동안의 편지들을 건네주었다.
이덕무가 보낸 손톱만한 쪽지도 버리지 않고 평생 모아두었다가
한 장 한 장 정성껏 배접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으로 말이다.
책보단 스마트폰에 손길이 가깝고, 편지보단 문자메시지가 쉬운 메마르고 팍팍한 지금의 세상인데, 오고가는 편지들을 고이 잘 보관해 한권의 책이 되는 감동이란.
나도 이때껏 받아왔던 편지들을 잘 모아두고 있는데
그 편지를 보내줬던 친구녀석도 내가 보낸 답장들을 잘 보관하고 있을까?
언젠가 우리들의 편지를 나란히 펼쳐보게 되는 날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생겼다.
두 번째로는 용서인과 초서법 이야기.
‘용서’란 남에게 사례를 받고 그를 위해 책을 베껴 써주는 일을 말한다.
책이 워낙 귀하던 시절이라 좋은 책과 만났을 때 베껴서라도 간직해두지 않으면 다시 볼 수 가 없었다고한다. 제가 하면 좋겠지만 시간과 품이 많이 드니 형편이 되면 남에게 돈을 주어 책을 베껴오게 했다.
조선 후기까지도 용서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이덕무도 책 써주기 품을 팔아 생계에 도움을 얻었다고한다.
이렇게 생계를 꾸리는 사람을 용서인이라고 부른다.
다산은 초서를 강조했다. 초서란 책을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한 권의 책을 통째로 베껴 써보면 피상적으로 눈으로 읽을 때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정민 선생님도 초서의 단계를 그저 건너뛰면 글의 내용도 수박 겉핥기로 대충 읽고 마는 경험을 수없이 했다고 한다.
필사를 했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지 눈으로만 보아서는 절대 의미가 맺히지 않는다. 필사도 곁에 메모가 늘 따라붙어야 좋다. 글을 옮겨 쓸 당시의 정황을 적어도 좋고, 읽다가 떠오른 단상을 적어두는 것도 필요하다.
날짜를 꼭 함께 써두어야 뒤에 다시 그 자료를 읽을 때 자신의 생각이 발전되어 간 단계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p.108
그러고 보니 나도 필사를 했던 시절이 있다.
집안이 가난했던 이덕무가 빈 공책에다 중요한 책을 베껴쓰곤 했던 것처럼.
지금과 같이 읽고 싶고 갖고 싶던 책을 마음대로 살수 없었던 학생일 때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왔던 책을 읽을 때 마다
너무나도 간직하고 싶은 구절들을 빈 공책에다 베껴쓰곤 했다.
언제든 다시 또 보고 싶지만 그 책은 반납해야만하고
갖고 싶지만 그 책들을 사기에는 턱없이 형편이 부족했기에
나는 책을 빌리면 빠른 시일 내에 읽고는 반납기한 마지막까지 팔저림을 참아가며
한 구절 한 구절 베껴 써내려갔다.
그렇게 적어 내려갔던 공책들을 오랜만에 꺼내보니 13권정도.
베껴 쓴 책이 수백권이나 되는 이덕무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이지만,
지난 시절 빼곡히 베껴 적어 내려갔던 공책들을 펼쳐보니
새삼 어떻게 이렇게 써내려갔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써서 바르게 적어본것도 있고, 하도 베껴쓰다보니 팔이 너무 아파서
갈수록 휘갈겨 적어놓은 변화를 보노라면 재미있기도 하다.
간혹 글에 대한 소감과 날짜도 보인다.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이젠 필사보다는 밑줄긋기를 행하고있는 지금
필사를 다시 시작해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대충대충 스쳐 보는 것은 말달리며 하는 꽃구경일 뿐이며
손으로 또박 또박 베껴 쓰면 또박또박 내 것이 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좀 더 기억의 창고에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한 매력적인 방법이기에 말이다.
형편이 되지 않아 무수히 베껴적었던 지난날의 필사가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에게 큰 위력이었겠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인터뷰 속 유영만 교수님도
한번쯤은 감동적인 책 하나를 선정해 필사해보길 권하고 싶다고 했다.
필사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해 보는 것 말이다.
예전에는 책 읽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스마트폰만 검색한다고 한다.
검색만 하니까 얼굴이 사색(死色)이 된다. 사색(思索)을 해야 얼굴에 화색이 돈다고.
책을 안 읽는 국민은 미래가 어둡다는 말을 덧붙이시면서 말이다.
나의 고등학생시절에는 인생의 지표로 좋아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늘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꼭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시곤 했다.
시험을 대하는 자세이야기, 우리가 꿈꾸어야 할 사랑이야기, 인생의 목표에 관한 이야기 등..
나는 그 선생님의 말을 작은 수첩에 메모를 했었다.
십년은 지난 지금 그때의 수첩을 꺼내보았다.
선생님의 말씀과 그때의 젊은 내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책속의 정민선생님도 어느 한 모임에서 말을 듣는데 한마디 한마디 흘려들을 얘기가 없어서 급히 수첩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고 한다.
메모를 하다가 문득 둘러보니 서른 명에 가까운 참석자 중에 메모하는 사람이 정민 선생님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의 메모가 아니었다면 이제 와서 당시 그의 얘기는 고사하고 그의 이름조차 가물가물 했을거라고 한다.
수첩속 선생님의 말씀을 메모한 것 중 눈에 띄는 것이 몇 개있다.
“정말로 하고싶은 일을 하세요. 직업 선택을 해서 한번만 하고 말거 아니니까~ 인생 길게 보고 선택해요. 정말 자기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거 해야해요. 우리의 인생은 100년도 못사니까.
그 기반이 공부에요. 지금 열심히 하세요. 지금 열심히 하면 평생 대가가 와요."
- 2004년 10월 18일 월요일 2교시에
“밖을 봐요~(햇빛이 쨍쨍한 날)
어제 죽은 사람은 오늘 이걸 못보겠죠.
열심히 오늘을 즐깁시다!“
한마디도 빠짐없이 옮겨 적고자 말의 속도에 맞춰
급하게 날려 쓴 그 당시의 나의 메모를 읽고 있으니 그 시절의 그리움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메모가 없이는 기억은 지워지고 생각도 쉬 떠난다고 한다.
그때의 메모 덕분에선지 고3 수업시간 우릴 보고 인생을 말씀하셨던 아름답던 선생님과 지금보다 철없고 젊었던 나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메모는 기억의 한계로부터 생각을 지키려는 방어기제다.
메모가 없이는 기억은 지워지고 생각도 쉬 떠난다. 공부는 기억과 생각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퍼뜩 스쳐간 생각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니다. 떠오른 생각은 그때그때 붙들어두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운 좋게 되살려도 처음 그것과는 다르다. 붙들려면 적어두어야 한다.
적어둘 때 내 것이 된다. 적어둬야 또렷해진다. - p.130
소설가 조정래님도 그의 상상력은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신문철과 기록을 뒤지며 깨알같이 메모하고 현장을 답사해 죽은 기록에 바람, 햇빛, 땅의 냄새와 사람들의 감각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천재는 없다. 다만 부지런한 기록자가 있을 뿐이다. - p.155
밥 먹듯 메모하고 숨쉬듯 기록해야 마땅하다는 정민선생님의 말씀은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다. 새겨두고 또 새겨놓아야겠다.
+)
메모는 꼭 써먹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 기억해두고 싶은 사연, 언뜻 스쳐 들어 잊어버리기 딱 좋은 상식 또는 정보 등도 느낌이 오면 옮겨 적었다. 생각은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증발해버리듯 감쪽같이 사라진다. - p.170
++)
삼시 세끼를 먹는 데 특별한 목표가 있을 수 없다. 세끼를 끼니때마다 이유를 달고 먹지는 않는다. 먹어야 하니까 먹고, 먹는가보다 하고 먹는다. 독서도 이 경지에 이르러야 일상이 된다.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먹는다. 규칙적으로 먹는다. 소화가 안 되면 한 끼를 건너뛰는 수가 있기는 하다. 배고프다고 한꺼번에 폭식해 버릇하면 나중에 건강을 상한다. 독서가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진 것은 세끼 밥 먹듯 독서하는 습관이 사라진 것과 무관치 않다. 무심코 책을 들던 손이 스마트폰만 찾게 되면서 우리는 생각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기계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