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퍼트리샤 포즈너 지음, 김지연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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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치와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거대하고 먼 악의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이야기가 점점 내 주변의 이야기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모두가 거대한 악이라고 비난하던 존재들도 사실은 우리 곁에 일상적인 존재로부터 출발한다. '대중의 지지 없는 전체주의는 불가능하다'는 말처럼, 전체주의는 전근대 봉건사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경계를 늦추는 순간 전체주의가 등장할 수 있고, 전체주의가 한 사회를 잠식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2,

누군가의 희생을 밟고 얻은 성장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현대 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많은 부분의 기술과 성장은 신분제에서의 희생,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의 폭력과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대가로 얻어진 것이다. 누군가를 살리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희생과 살인을 서슴치 않았던 시대. 이 책의 저자를 포함한 당대의 의료인들이 마주했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3.

너무도 사실적이고 자세하게, 역사상 가장 잔혹한 폭력의 시대를 간접적으로 목격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글로써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을 직접 목격하고 그 속에서 가해-피해의 스펙트럼 속에서 존재했던 이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도 언제든 이러한 고통 속에 놓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불편하고 무섭고 고통스럽더라도 역사의 비극과 마주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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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미국 대표시선 창비세계문학 32
로버트 프로스트 외 지음, 손혜숙 .엮고옮김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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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시집을 읽게 되었다. 사실 그 전에는, 시에 관심이 간다고 해봐야 국어시간에 만난 시들 중, 간혹 가다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을 때, 빠르게 지문을 읽어내려가야만 했던 수험생의 부담감을 잠시 내려놓고, 천천히 글을 읽어가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집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 글자를 읽어 내려갔던 나의 독서 습관과 달리, 시집은 무언가 '숨을 쉬어가는 듯한' 독서를 할 수 있었고, 그런 호흡이 마음에 들었다. 글을 읽으며 숨을 쉰다는 기분을 느끼니, 그전까지의 읽기와는 다른 새로운 매력에 끌리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영시(英詩)를 읽고 있다. 누군가는 '모든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처럼 언어 자체의 맛이 중요한 시는 번역을 하는 순간 그 감동과 미학이 변질된다면서 번역된 영시를 읽는 것을 꺼리기도 하겠지만, 나는 번역된 시도 나름대로 너무 좋다. 특히, 함축된 언어로 표출된 시인의 감각에 더해, 그 언어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을 번역자의 열정이 더해져, 더 강렬하게 나에게 다가오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다양한 주석과 각주로 가득찬 이 책의 번역은, 더 좋은 번역을 위해 번역자가 얼마나 열정을 바쳤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지 않은 길>에서는 여러 시인들의 시를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 시인 한 사람의 시집만을 읽었던 나에게는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반적인 서정시부터 산문시, 연작시와 서사시까지, 다양한 시들을 한 번에 만나면서 다양한 호흡으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책에 실린 시인들의 시 전부, 생경하고도 새로운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에게 와닿는 것은 아무래도,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에밀리 디킨슨인 것 같다. 둘의 시는 너무도 상반되는 느낌을 준다. 포의 시는 뭔가 빽빽하게 지면에 들어찬 활자가 내 눈안에 가득차지만, 그런 모습과 달리 왠지 모를 공허함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빽빽한 글자 속의 여백이 유난히도 커보인다. 반면, 디킨슨의 시는 뭔가 여백과 하이픈이 자주 보이는, 빈틈이 많아 보이는 글이지만, 무언가 가득찬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듯 하다. 이런 역설적인 느낌이 시를 읽게 하는 매력이 아닐까. 단순한 활자가 아닌, 활자의 밀도와 배열, 단어 선택 하나하나가 말을 거는 듯한 느낌. 그리고 언어 너머에서 나에게 전달되는 에너지는 계속해서 시집을 찾게 만든다.

  특히 영시를 읽다보면 '하이픈'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특히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거의 모든 시에 하이픈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고 '낯선' 느낌의 첫인상이었지만, 계속해서 보다보니,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간다. 언어로만 표현되는 '시'라는 장르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미학적이고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길지 않은 몇 센티미터 안에, 작가는 얼마나 많은 뜻을 담아두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시를 읽는 것이 단순히 활자를 눈에 담고 머릿속으로 읽어내려가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펜이 종이 위를 스치는 그 순간의 호흡으로 함께 숨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글을 읽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짜릿함"이 느껴진다.

내 위엔- 영원이 내려앉고-
내 앞엔- 불멸이 내려앉네-
나는- 그 사이에 낀 기간-
죽음은 동녘 잿빛으로 날려
서녘이 시작되기 전
예명으로 녹아 흩어지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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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김성우.엄기호 지음 / 따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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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자 중심에서 멀티미디어 중심으로 넘어간다는 '매체의 변화'로부터 출발한 두 저자의 대담은, 사회 전 영역에 대한 깊은 고찰로 이어진다. 미디어의 변화를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은 세대론과 교육문제, 나아가서는 불법 촬영물 문제로 이어지며, 사회 전반에 매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영향력 때문에, 매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리터러시'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어내는 능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텍스트로 작용하고, 이것을 비로소 깨달을 때, 리터러시는 성장한다. 그리고, 다양한 미디어를 바탕으로, 미디어에 대한 무한한 선택권이 주어진 이 시대가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을 텍스트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듣고 싶고, 보고 싶고, 알고 싶은 것 만으로 세상을 구성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아는 것으로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라는 고독한 과정이 두려워, 계속해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이를 찾는 것은, 우리를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 '아무도 날 지지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마주해야 한다.⠀
  '읽는' 행위는 매우 주체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단순히 활자를 뇌에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사고회로를 돌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읽었던 수 많은 텍스트들을 합치고 분리하며 뇌 속에서 또 다른 텍스트를 생산해낸다. 그래서, 작가만큼 독자가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작가가 자신의 글을 써내려가도, 그것을 읽으며 새로운 조합과 지식을 생산해줄 독자가 없다면, 그 글은 무의미하다. '잘 쓰는 법', '작가가 되는 법'을 갈망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잘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읽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텍스트로 여기고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해석은 자기만의 해석이 됩니다. 의견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고독하게 자신만의 완결적인 의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근대적 시민이고 개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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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95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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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사진결혼은 그 당시 조선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인 선택 방안이었을 것이다. 여자로 태어나 자신이 태어난 마을 밖을 벗어나기 조차 어려웠던 그 시절, 듣도보도 못한 '포와(하와이)'라는 곳에 가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꿈과 희망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꿈과 희망은 점점 거짓된 정보로 이어져 '포와에 가면 돈을 긁어 모은다더라', '남편 될 사람이 지주라더라', '여자들도 학교에 다닐 수 있다더라"는 헛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설마, 남의 나라에 땅을 빼앗긴 조선 땅보다 살기 힘들까.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여기보다 낫지 않을까. 수많은 여성들이 그런 희망을 가지고 조선을 떠났고, 희망에 가득찬 그들에게, 하와이에서의 별볼일 없는, 고달픈 삶은 엄청난 절망이었을 것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먼 곳에 왔는데, 이곳에서의 삶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 돌아갈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절망은 아마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버들이 고향을 떠나며 느꼈던 걱정과 설렘, 태완과의 결혼생활에서 느꼈던 외로움과 행복함, 태완이 하와이를 떠난 후 친구들과 함께 힘을 합쳐 살아가는 생활까지.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변곡점을 통해 여러 번 분위기를 전환한다. 하와이로 이민을 갔던 1세대 이민자들의 삶 또한 그랬으리라. 아무런 기반이나 연고도 없이 도착한, 말도 통하지 않는 그 곳에서 수없이 많은 고난에 부딪히며 조금이나마 더 나은 내일이 오기를 기대하며, 그저 그 힘을 원동력을 버텨냈을 것이다. 특히, 사진결혼을 통해 하와이로 이민을 와,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던 하와이의 한인 여성들은 한인회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인종차별 등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상황에 휘말려 갈등하기도 하고, 고향에 대한 걱정과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서로를 이해하며 연대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던 그들에게, 서로는 서로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연대를 통해 자신의 삶을 힘차게 살아나간다.
  이금이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구축한 여성 캐릭터들을 보며 이금이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믿고 읽는다 . 특히, 성폭력 피해자들의 성장을 담아낸 <유진과 유진>, 딸 뿐만이 아니라 엄마의 트라우마를 통해 모녀의 관계를 감동적으로 담아낸 <신기루>를 보면서, 이금이 작가의 작품을 항상 기다리게 되었고, 이번 작품도 출시되자마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사진결혼'으로 대표되는, 재외한인 여성들의 고달픈 삶을 여성의 연대의 관점에서 너무도 따뜻하게 풀어낸 이 작품을 보며, 이금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여자들은 장에 가는 것조차 어려웠던 때 어떻게 머나먼 곳으로 떠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무엇이 사진 한 장에 자기 운명을 걸게 했던 걸까.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와이에 도착해 만난 남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낯선 곳에서의 삶은 또 어땠을까 -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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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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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모든 적폐인 것처럼 이야기된다. 하지만, 그 책임이 과연 '유교'에만 있는 것일까. 현대 사회의 적폐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이고 복잡다단한 구조와 원인들을 외면하고 싶은 이들이 만들어낸 '공공의 적'은 아닐까. 유교가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남긴 것은, 유교 자체의 문제보다도,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유교의 논리를 이용했던 기득권층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정지해있는 고전의 텍스트를, 시대에 맞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입맛대로만 받아들이고자 한 기득권층의 오랜 습관이 유교를 '적폐'로 만들어버린 것일 수 있다.⠀
  김영민 교수님의 책에서, 유교는 매우 세련되고 유용한, '삶의 지침서'로 재탄생한다. 누군가의 '주석'이 고전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논어>는 단순히 해설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의 무덤'이라고 표현된 콘텍스트가 되어, 하나의 배경으로서 세상과 인생의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설명한다. <논어>의 이러한 변신은 독자들로 하여금, <논어>가 얼마나 매력적인 책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신에게 뭔가 얻기 위해 기도하고 전례를 행하지만, 거기에 응답할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예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예를 통해서 신에게 뭔가 얻어낼 수는 없지만, 예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끼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거라고.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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