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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 제15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서평은 소미미디어 출판사 서평 이벤트로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요약 :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연을 개그맨이라는 모습을 통해 들여다본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개 중간 중간 흐름과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기 위해 개그를 넣은 부분들은 개그코드가 맞지 않다보니 이질감을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화자인 '나'가 콤비의 개인적 사정으로 개그콤비를 해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개그(pp.174~180)의 부분은 정말 재치있는 반어법을 사용한 개그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소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이 작품은 화자인 이류도 되지 못하는 개그맨인 '나'의 시선으로 주인공 격인 '가미야'씨와 개그맨의 현실에 대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화자인 '나'는 '가미야'씨의 제자로 들어가고 나서 '가미야'씨의 제안으로 그에 전기(傳記)를 적기 시작한다. 전기를 쓰기 시작한 '나'에게 비친 '가미야'의 모습은 순수하고 전력을 다해 남을 웃기려는 인간 그리고 정말로 바보가 아닐까, 정상적으로 행동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리고 '가미야'는 자신의 스타일을 남의 말에 흔들림 없이 고수하는 '강인한 인물'로서 '나'에게 보인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움을 거는 호전적인 인물로......
'나'는 끝내 10여년의 개그맨 생활을 그만두고 다른 일로 전향한다. 하지만 나는 그를 패배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장대한 개그맨의 세계 대회에 출전하여 오랜 기간 대회 선수로서 대회를 지속될 수 있도록 그리고 타인들이 더 좋은 웃음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다하고 박수칠 때 떠난 참 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스파크스('나'의 개그콤비명)의 해체 전 마지막으로 한 개그무대에서 보여준 반어적 개그...... 그 부분을 읽을 때는 마음이 움직였다. 그의 행적들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면서 순간 '나'가 된 느낌이었다.
'가미야'씨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조언자 역할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순수하면서도 냉철하게 계산가능하고 화자 '나'의 성장을 돕는......
결국 소설에서 화자인 '나'도 '가미야'도 개그맨으로서 대성공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끝에 보여준 재회한 '가미야'와 '나'의 해학적인 대화와 행동을 보며 아 이렇게 살아가는 거구나라고 느꼈다.
[소개하고 싶은 문장들 (저작권 문제시 곧바로 지우겠습니다.)]
p.11
[중략] 행인들은 깜짝 놀랄 만큼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p.13
[중략] 걸출한 장대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불꽃이 곁들여졌다. 이렇듯 모두 다 갖춰진 환경에 왜 우리를 불러들인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이 머리를 쳐들었다. 산과 산에 메아리치는 불꽃의 폭음에 내 목소리는 지워져버리고 한없이 왜소한 나 자신에 낙담했지만 그래도 내가 절망에까지 내몰리지 않은 것은 자연이나 불꽃에 압도적인 경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그야말로 평범한 이유에 따른 것이었다.
p.36
나는 자신의 불우를 시대 탓으로 돌릴 수 있을 만큼 둔감하지 않았다. 나와 그들 사이에는 분명한 능력 차이가 있었다.
p.37
자신들이 남 앞에서 뭔가를 표현할 권리를 얻기 위한 오디션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아직 증명하지 못한 동안에는 자기 견해를 주장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길게 가로놓여 있었다.
pp.49~50
[중략] "솔직히 그건 어려운 문제야, 진부한데도 기막힌 순도를 유지하는 것도 있잖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른들한테 혼이 날 정도가 아니면 안 된다. 라는 건 분명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흔한 말이야. 근데 이미 들은 적이 있는 것이니까, 내가 아는 것이니까, 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생각을 평범한 것으로 부정해버린다는 건 글쎄 [중략] 어디까지나 내가 그런 잣대로 살아가도 되느냐 마느냐 라는 차원의 얘기야."
pp.74~75
[중략] ~이라고 반쯤 비웃으면서 하는 말들을 들으면 그런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 새 스스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조금씩 내 위주의 말과 행동이 불어났다. 그러면 말과 행동을 증거로 삼아 주위에서는 점점 더 그것을 믿기 시작한다.
p.90
[중략]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술을 마셔야 하는지, 스스로도 뭐가 뭐지 알 수 없는 때도 있었다.
p.114
[중략] 가미야 씨는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방식을 결코 바꾸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너무도 상대를 과신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일절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가미야 씨를 지켜보면 나 자신이 무척 경박한 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곤 했다.
p.117
십대 시절, 코미디언이 되지 못한 나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며 고민했던 그 바닥모를 공포감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p.171
[중략] 모든 것이 때늦은 일이 되어버리는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나 자신의 의지로 꿈을 마감해버리는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세상 모두가 타인처럼 느껴지는 밤이 수없이 이어졌다.
p.174 (이후에 반어법을 사용한 개그가 이어지는데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상식을 뒤엎을 만한 코미디를 하기 위해 이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뒤엎어버린 것은 노력은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 라는 훌륭한 말뿐입니다."
pp.182~183
당장 소용도 없는 것을 오랜 시간을 들여 계속한다는 거, 얼마나 두렵겠는가,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결과가 전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에 도전한다는 것, 얼마나 두렵겠는가, 소용없는 것을 배제한다는 건 위험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중략] 긴 세월을 들인 이 무모한 도전으로 나는 내 인생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p.185
'나 답게 산다'는, 이자카야 화장실에나 붙어 있을 듯한 단순한 잠언의 피가 통하는 격정적인 실천 편이었다. 나는 이제 슬슬 가미야 씨에게서 독립해 나 자신의 인생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pp.187~188
주위와 비교당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도태되기도 하지. 이 장대한 대회에서는 이기는 자와 패배하는 자가 분명하게 존재해. 그래서 재미가 있는 거야. 근데 말이다. 도태된 놈들의 존재라는 거, 절대로 쓸모없는 게 아니야. 이거 안 하는 게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중략]
"반드시 그 모든 사람들이 다 필요한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