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와 지구별 어른
안명진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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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세창미디어 서평 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는 어린왕자와 관련된 도서를 3번의 시기에 읽었습니다. 첫 번째는 15년 전이었던 2002년,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생일에 담임선생님에게 선물 받아서 읽었습니다. 그때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예전에 정리하다 버린 초등학교 때 일기에는 닮고 싶은 친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읽은 시기는 2010년 고1 때였는데 이때는 선친이 돌아가시고 정신없을 무렵 책장에 있던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때는 어린 왕자를 부러운 대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자라고......


세 번째가 이번 도서 어린왕자와 지구별 어른입니다.

그동안 읽어왔던 도서들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책의 내용이 정말 쉽게 다가왔습니다.

전공과 관련하여 과학적인 사고를 요구받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다시 과학과 철학의 균형을 다시금 조정하도록 도와주는 부분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읽은 어린왕자는 불편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세상을 좀 더 불편하게 - 야만적 상황을 반복시키는 근대 합리적 사고에 대한 탈주술화- 

인식시킴으로써 합리성이라는 주술에 덮여있던 인식의 도식을 정화, 재조직화하는 것이 진정한 어린왕자의, 아니 

문학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문학을 창작하는 작가는 시대적 필요에 따라 역사를 해석하는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문제를 작품에 담고 있고 그러한 문제들이 독자에게 불편함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과학적인 사고를 강요받기 때문에 그 사고방식을 피할 수는 없는 현실 속에서 잠시 사고의 균형을 재조정하려는 분들에게 

어린왕자와 지구별 어른을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공유하고 싶은 문장]

p.6

문학은 바로 자기 시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그 시선이 새로운 방향을 볼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작가는 일상인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세계상을 부정적인 문제의식으로 응답한다. 작가는 자기 시대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중략] 문학의 본질은 소외이다. 문학은 소외를 먹고 자란다. 작가는 자신의 시대상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그 현실에서 떨어져 있기에 비판의식이며, 그 의식은 자신의 현실에서 격리되어 있기에 불행한 의식이다.


→ 대리사회 / 김민섭 저 / 2016 / 와이즈베리에서 경계인이라는 단어가 위문장을 적절하고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자유롭기 때문에 공감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년기 시절은 모두가 경계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식이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새로운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지만 사회에서 무난하고 적응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 자유를 버리고 공감 받을 수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어린왕자와 지구별 어른에서는 '마음의 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pp.45~46

우리가 이미 문제 있는 상처투성이의 삶과 시대의 관점을 가지고 거울 앞에 선다면, 거울 속에서 어떤 자기 모습을 보기를 기대하는가? 우리는 거울 속에서 자신의 본래 깨끗한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다. [중략]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계에 물들어 있고, 따라서 그 세계에 물들지 않은 본래 자기 모습을 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 하지만 경쟁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비판과 생각 대신 눈물을 머금고 무비판과 복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행복에서 멀어진다.


pp.172~173

어른은 진정 중요한 것을 추구해야 할 열정조차 상실한 인간이다. 어른은 삶의 열정을 세속적인 가치나 쾌락의 추구로 대체한다. 어른은 자신이 성취한 문명에 만족하며, 더 이상의 자기 발전이나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내적 동기조차 상실한 고민이 없는 사회이다. 어른은 현 세계에 머물러 살 수밖에 없는 '최후의 인간'이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주체, 삶의 주인이라고 착각한다. 어른은 이미 주객이 전도된 사실을 모른다. 어른의 세계를 구축한 도구적 이성은 전방위로 확대되고, 우리의 삶을 구속한다. 어른은 아직 자신들의 도구화된 삶을 보지 못한다.

→ 베버의 말을 인용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문화 발전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마지막 사람들(최후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이 진리가 될 것이다. "'영혼이 없는 전문가, 마음이 없는 향락인. 이들은 인간성이 과거에 도달하지 못했던 단계에 이미 올랐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할 것이다.'" 예로 노동의 보상이었던 돈이 독립하여 돈이 주체가 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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