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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예술혁명 -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이지영 지음 / 파레시아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궁금하다.
BTS가 정말 "기존의 위계질서와 권력관계에 균열을 내며 세계를 뒤흔드는 혁명의 의미"를 담고 있는가?
BTS가 정말 "전 지구적인 규모의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변혁을 징후적으로 표현"하는가?
BTS가 정말 "새로운 예술형식과 민주화, 그리고 희망"을 말하는가?
아미는 정말 "방탄의 팬덤이지만 단순한 소비자나 추종자"가 아닌가?
BTS와 아미는 정말 "현재의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필요성, 그리고 그 변화가 더 큰 자유와 해방, 더 나은 세상을 향해야 한다는 데 대한 감응과 공명"을 하는가?
BTS는 정말 " 현재 세계 전체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 그 억압 하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단절, 외로움은 어떤 것이고, 사람들은 세상을 어떠한 방향으로 바꾸기를 욕망하는가"를 말해주는가?
이 책의 저자는 결코 철학에 문외한이 아니다. 무려 서울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로도 모자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또 하나 마무리 짓고 있으며, 한예종, 서울대, 홍익대, 옥스퍼드대 등에서 강의했고, 세종대에 재직 중인 교수님이다. 그런 교수님이 BTS는 '혁명'이라고 말한다. BTS는 '민주화, 그리고 희망'이라고 말한다. BTS는 '더 큰 자유와 해방'이라고 말한다. BTS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단절, 외로움'에 대해 말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위의 용어들만큼 빠순이와 안 어울리는 것도 없다. 빠순이라는 존재는 '혁명'을 생각하지 않는다. 빠순이라는 존재는 '민주화'를 말하지 않는다. 빠순이라는 존재는 '고통과 단절'을 생각하지 않는다. 빠순이라는 존재는 스스로를 '군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빠순이라는 존재는 '자유와 해방'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용어들을 말하는 존재는 누구였는가? 그건 바로 그 옛날의 '운동권 지식인'들이었다. 이 용어들은 그들의 '최종어휘'였다. 이데올로기였다. 그리고 그 옛날의 '운동권 지식인'들은 바로 그들의 아버지였고, 타도해야할 대상이었으며, 흔히 말하는 꼰대들이었다.
지금, 정치인이 된 빠순이, 군인이 된 빠순이, 운동권 지식인이 된 빠순이들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동경하고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책임이다. 혁명을 얘기하는 자는 투옥을 감수해야 했고, 고통과 단절을 얘기하는 자는 마음 속 깊이 타인과 공감하여 자기 스스로도 상처를 입어야 했다. 군인이 된 자는 자기의 영혼을 희생시켜야 했다.
그래서 묻고 싶다. 저자가 얼마나 공부했는지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들뢰즈와 벤야민은 모른다. 내가 공부했다고 할 만한 철학자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전부며, 내가 공부했다고 할 만한 학문은 심리학과 법학이다. 그래도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들뢰즈와 벤야민으로 저 무한한 실존의 갭을 채울 수 있는 거냐고. 당신은 과연 저 궁극적인 어휘에 책임을 질 수 있냐고. 과연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와 해방'을 말하는 자들로 하여금, '고통과 단절'을 말하는 자들로 하여금, '희망'을 말하는 자들로 하여금 ……BTS를 말할 수 있냐고.
그래서 이 책은 그저 유치한 놀이에 불과하다. BTS와 아미는 그저 아이돌과 팬에 불과하다.
내가 이 책의 소개글만 보고도 이를 가는 것은, 이 책의 저자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철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철학자라는 것. 궁극적인 진리를 담보하는 자라는 것. 그래서 내게 이 책은 단순한 평론서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적 범죄가 되었다. 사상의 커다란 방종이자 무책임이 되었다.
BTS는 너에게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다. BTS는 너에게 자유와 해방을 말하지 않는다. BTS는 과연 너에게 혁명을 얘기하지 않는다. BTS는 너에게 '고통과 단절'을 말하지 않는다. BTS가 당신에게 갖는 주관적인 의미는 결코 확장될 수 없다.
그런데 빠순이들은 자기들의 허영심을 정당화해줄 권위자가 등장했다며 이 책에 찬사를 보낸다. 우리 오빠들은 민주화 투사이자, 혁명가이자, 구원자이고, 우리는 그 오빠들을 따르는 투철한 정신의 군인들이다. 이 웃기지도 않은 촌극에, 이 말도 안 되는 언어도단에, 저자의 사리사욕과 공명심에서 시작된 술수가 통했다.
이 책도 불티나게 팔릴 것이다. 다행인 것은, 언제나 그렇듯 아이돌은 늙어갈 것이며, 빠순이들도 저마다의 그 누군가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BTS가 누구였는지도 새까맣게 까먹은 채, 자기의 고통과 단절에 아파하며, 자기의 희망을 찾아, 자유와 해방을 찾아, 혁명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