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패러독스
김동광 / 두산동아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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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물리학이 밝혀낸 시간의 본질과 그것이 우리의 상식 및 철학과 충돌하는 지점을 명쾌하게 파헤친 과학교양서이다. 


저자 폴 데이비스는 시간이 절대적이라는 뉴턴의 고전 물리학에서 벗어나, 시간과 공간이 얽혀 있으며 관찰자의 속도나 중력에 따라 신축적으로 변한다는 상대성이론을 상세히 설명한다.


블랙홀, 웜홀, 우주 끈 등을 활용한 물리적 시간 여행이 이론적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과거로 갔을 때 발생하는 인과율의 모순(패러독스)도 언급한다.


시간의 패러독스 문제는 왜 과거는 기억할 수 있고 미래는 알 수 없는지에 대한 의문으로서, 열역학 제2법칙을 통해 '시간의 화살'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거시세계의 상대성이론과 미시세계의 양자역학이 시간 개념에서 어떻게 충돌하는지 짚어내며, 우주의 기원(빅뱅)과 시간의 탄생을 철학적/물리학적으로 통찰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책은 1995년에 출간된 저작이라 21세기 들어 급격히 발전한 중력파 검출, 루프 양자 중력 이론(LQG)이나 초끈 이론의 최신 성과들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시대적 공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시간이란 단순히 ‘흘러가는 무언가’가 아니라 우주의 구조와 인간의 의식이 얽혀 있는 거대한 수수께끼임을 보여주는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아인슈타인 이후 변화된 시간의 개념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이토록 우아하고 철학적으로 풀어낸 저작은 드물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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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유시민이 과학자들과 대담하는 영상이 온라인 여기저기에 뜨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의 책 <문과남자의 과학공부>가 발간되면서부터인데, 이 책을 썼다는 자격 하나만으로 그의 지적 유희의 범위는 과학계까지 넘나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과의 대담에 참여한 과학자로는 김상욱 교수, 박문호 박사, 최재천 교수 등이 대표적인데, 개인적으로 아는 한 분은 사석에서 유시민과의 대담에서 받았던 곤혹스러웠던 기억을 토로한 적이 있다. 


가장 당황스러운 부분은 엄밀히 검증된 팩트를 기반으로 축적되어 온 과학 이론의 성과물들을 유시민 본인의 인문학적 감상이나 사회학적 추론과 연결지어 자신의 지론을 공고히 하려는 근거로 삼으려 하는 의도가 느껴질 때라고 했다. 


예를 들면, 진화론을 역사적 진보의 필연성과 연계한다든지, 생물학적 동족세포 인식을 사회학적 공감 이론에 연결지으려 한다든지 할 때 말이다. 


평생을 철저한 과학적 인과관계에 근거하여 사유해왔던 과학자 입장에서는 유시민의 그 같은 ‘논리 비약적’인 추론을 면전에서 반박하기도 곤란했고, 그렇다고 양심을 거슬러가며 무비판적으로 추켜세워 주기도 거북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대담은 결국 어떠한 공통된 합의나 공감으로 귀결되기 어려워 결론 없이 겉돌게 될 뿐이므로, 과학자 입장에선 적당한 선에서 유시민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주거나, 과학사의 에피소드 같은 지엽적인 흥미 거리 몇 마디를 추가하면서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기나긴 대담을 마치고 나올 때의 과학자의 심경은 한마디로 ‘곤혹스러움’ 자체였다고 한다. 왠지 과학이 유시민에게 실컷 이용당하고 만 듯한 느낌. 


유시민의 사례 말고도 과학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프로그램이 유행처럼 번졌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러한 사조를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입장은 한결같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그러한 유행은 대체로 과학에 대한 단편적 이해를 섣불리 인문학적 감상과 연계하여 ‘통섭’이라는 미명으로 왜곡하는 경우가 많았음이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묵묵히 실험실과 강의실에서 엄정한 사실만을 다루며 살아가는 진정한 과학자들의 바램은 단 한 가지 뿐이다. 


“제발, 과학 전공자 아닌 사람은 과학에 대추 놔라 밤 놔라 하지 말아 주세요!”  


“과학은 과학 그 자체로만 해석하되, 여기에 인문학적 감상이나 추론을 부여하진 말아 주세요. 그것이 설사 과학에 대한 찬양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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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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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인류 문명의 불평등이 인종적 우월성이 아닌 지리적·환경적 요인(농업, 가축화, 문자의 전파 등)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며, 유라시아 문명의 정복 과정을 총(무기), 균(병균), 쇠(금속)라는 요인으로 설명한 역작이다. 그러나 역사적 복잡성을 생물지리학적 결정론으로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이나 정치·문화적 요인을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을 받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핵심 질문은 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는가 에서 출발한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길어 농작물, 가축, 지식의 교류가 용이했으나, 아메리카/아프리카는 남북으로 길어 문명 전파가 늦었다.(환경결정론)

농업 발전 -> 식량 생산 증가 -> 정착 생활 -> 인구 증가 -> 기술 발전 및 문자의 탄생 -> 강력한 문명 형성 이라는 농업 전파의 고리를 설명한다. 

이어서 가축을 키우며 얻은 병균(면역력)과 금속 기술(총, 쇠)이 정복을 가능하게 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1. 주요 비판 내용


* 지리 결정론에 대한 우려: 인간의 의지나 문화적 역량보다 지리적 조건이 역사를 결정한다는 주장이 지리 결정론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사회의 복잡한 변화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 제국주의 정당화 가능성: 서구의 정복 역사를 지리적 우연의 산물로 설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과거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의 잔혹성이나 정치적 책임을 희석시킬 수 있다.


* 근현대사 설명의 한계: 책의 논리는 농업의 시작부터 근대 이전까지의 거시적 흐름에는 설득력이 있으나, 자본주의의 발흥이나 산업혁명 이후 국가 간 격차가 벌어진 정치·경제적 제도 차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 동아시아 정체성 해석: 유럽의 분열이 경쟁을 낳아 발전했다는 논리와 달리, 중국의 통일이 기술 발전을 저해했다는 서술은 동아시아 역사의 역동성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는 부분이다. 


2. 서술 및 논증의 문제점


* 반증 사례의 생략: 자신의 가설에 들어맞지 않는 예외적인 문명이나 역사적 사건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축소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데이터의 일반화 오류: 뉴기니 등 특정 지역의 사례를 인류 전체의 보편적인 법칙으로 지나치게 확장하여 적용했다는 인류학적 비판도 존재한다. 


* 비전문 분야의 서술: 생리학과 지리학 전공자인 저자가 역사학과 고고학의 방대한 영역을 다루다 보니, 세부적인 역사적 사실관계에서 오류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총, 균, 쇠>는 환경적 결정 요인을 규명한 혁신적인 책이지만, 역사를 단일한 인과관계로 설명하려다 보니 인간의 능동적인 역사 창조 능력을 지나치게 축소한 한계를 보인다. 


인종주의적 편견을 과학적 논리로 타파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복잡한 인류 역사를 총, 균, 쇠라는 단선적 테마의 인과관계로 픽션화하는 데 따른 무리가 느껴진다. 


인류사를 <총, 균, 쇠>로 단순화할 수 있다면, <칼, 쌀, 말(馬)>도 가능할 것이고, <활, 밀, 배(船)> 또는 <종이, 비단, 향신료> 등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또 하나의 벽돌책이 추가되었다. 안 읽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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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혁명
루디 러커 지음, 김량국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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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학과 컴퓨터로부터 인간의 사고 활동에 관한 통찰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지평에 관한 최근의 정보들을 전해주는 책이다. 


교과서 안에서만 보던 지루한 수학을 떠나, 수학적 사고의 지평이 일상에서 어떤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지 알 수 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를 쉽게 풀어서 해설해주는 부분일 것이다. 


'진리는 어떤 유한한 진술로도 정의될 수 없다'는 괴델의 정리를 여러 쉬운 예문을 들어서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예컨대 "나는 나 이상으로 똑똑할 수 없다. 나는 내 머리 위에 서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같은 예문이 직관적으로 와 닿는다. 


인간의 이성적 사유체계, 특히 수리적 논리기호체계로 진술되는 유물론적/환원론적 접근으로는 결코 완전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얼핏 보기에 괴델의 정리는 그 어떤 진리나 진실도 용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나 무정부주의 같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또는 궁극의 진리를 갈구하는 물리학자나 수학자 혹은 철학자들에게는 일종의 좌절 같은 의미로 들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잘 생각해보자.

괴델의 정리가 없는 세계는 모든 특성이 목록화 가능한 세계가 된다. 

괴델의 정리, 나아가 튜링과 처치의 정리가 없는 세계는 모든 특성을 계산할 수 있는 세계가 된다.

이 말은 곧 세계는 유한하고 계산가능하며 답답할 뿐인 언제나 '닫힌 세계'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괴델의 정리가 존재하기에 세상은 그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는 '열린 세계'라는 말이 성립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떤 진리나 법 또는 이론에도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자유로운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사고혁명이란 인간 사유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자유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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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대승기신론 - 관찰자와 현상
소광섭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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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대상이 있으므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가 있으므로 대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던져야 할 의문은 ‘인식자의 주관에서 물질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가? 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궁극적 물질(Atom)을 찾겠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물리학은 새로운 비약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교에서는 공간과 우주는 인간과 별개인 무생명의 빈터가 아니다. 기신론의 경우 모든 대상이 인간의 주관에 의해서 나타나며, 삼계유심인 만큼 마음을 떠난 독립된 객관적 실재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또 관찰자와 분리 독립된 절대적 실체로서의 공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저 허공 하늘은 텅 빈 것이 아니며, 양자의 파동만으로 가득찬 물질현상만도 아닌, 인간의 의식과 밀접히 연결된 법계인 것이다. 


공간과 우주는 물질의 운동터로 보이지만 실은 아라야식의 펼침인 것이다. 


그러므로 빛에 끌리어 속아넘어가지 않는다면 우주는 그대로 ‘한 마음’으로 직관적 파악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객체로서의 우주란 우리의 환상에 불과하므로 분별하여 만들면 무한하지만 분별을 멈추면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기신론의 견해를 따른다면 물질과 정신을 나눠 보는 분별식은 낮은 차원의 식이다. 


원효의 해석을 따른다면 물질의 근본을 알기 위해 물질을 계속 쪼개나가는 일은 아무리 오래 한들 자연의 궁극적 원리에 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에 가서는 마음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없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여래의 삼매는 무엇을 얻거나 어떤 견해를 갖는 것이 아니다. 


결론: 우주는 의식이 생기는 순간에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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