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유시민이 과학자들과 대담하는 영상이 온라인 여기저기에 뜨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의 책 <문과남자의 과학공부>가 발간되면서부터인데, 이 책을 썼다는 자격 하나만으로 그의 지적 유희의 범위는 과학계까지 넘나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과의 대담에 참여한 과학자로는 김상욱 교수, 박문호 박사, 최재천 교수 등이 대표적인데, 개인적으로 아는 한 분은 사석에서 유시민과의 대담에서 받았던 곤혹스러웠던 기억을 토로한 적이 있다.
가장 당황스러운 부분은 엄밀히 검증된 팩트를 기반으로 축적되어 온 과학 이론의 성과물들을 유시민 본인의 인문학적 감상이나 사회학적 추론과 연결지어 자신의 지론을 공고히 하려는 근거로 삼으려 하는 의도가 느껴질 때라고 했다.
예를 들면, 진화론을 역사적 진보의 필연성과 연계한다든지, 생물학적 동족세포 인식을 사회학적 공감 이론에 연결지으려 한다든지 할 때 말이다.
평생을 철저한 과학적 인과관계에 근거하여 사유해왔던 과학자 입장에서는 유시민의 그 같은 ‘논리 비약적’인 추론을 면전에서 반박하기도 곤란했고, 그렇다고 양심을 거슬러가며 무비판적으로 추켜세워 주기도 거북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대담은 결국 어떠한 공통된 합의나 공감으로 귀결되기 어려워 결론 없이 겉돌게 될 뿐이므로, 과학자 입장에선 적당한 선에서 유시민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주거나, 과학사의 에피소드 같은 지엽적인 흥미 거리 몇 마디를 추가하면서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기나긴 대담을 마치고 나올 때의 과학자의 심경은 한마디로 ‘곤혹스러움’ 자체였다고 한다. 왠지 과학이 유시민에게 실컷 이용당하고 만 듯한 느낌.
유시민의 사례 말고도 과학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프로그램이 유행처럼 번졌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러한 사조를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입장은 한결같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그러한 유행은 대체로 과학에 대한 단편적 이해를 섣불리 인문학적 감상과 연계하여 ‘통섭’이라는 미명으로 왜곡하는 경우가 많았음이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묵묵히 실험실과 강의실에서 엄정한 사실만을 다루며 살아가는 진정한 과학자들의 바램은 단 한 가지 뿐이다.
“제발, 과학 전공자 아닌 사람은 과학에 대추 놔라 밤 놔라 하지 말아 주세요!”
“과학은 과학 그 자체로만 해석하되, 여기에 인문학적 감상이나 추론을 부여하진 말아 주세요. 그것이 설사 과학에 대한 찬양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