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 제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일 테다. 그래서 화롯불의 불길이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 불 앞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에. "송아." 겨울눈이 녹아가는 내내 매일같이 송이는 제 이름자를 들을 수 있었다. 마음 고운 막내 도련님은 시간 날 때 뒤채로 달려와 제 이름을 불렀다. 송이는 예, 하고 답할 수는 없으되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 P19
"송아, 나는, 나는……." 물에 젖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나는 너를 희롱한 것이 아니었다." 송이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네가 불쌍해서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규현은 나는, 나는, 나는, 하고 말을 못 이었다. 말을 할 줄 아는 자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배우지 못해서 일 터였다. 혹은 아직 알지 못해서 일 터였다. 혹은 알아서는 안 되어서 일 터다. 겨울날 눈이 내리듯, 봄날 꽃이 피듯, 자연스럽게 알아야 하는 것들이 때로는 지붕 아래서 외면해야 할 일일 터였다. 혹은, 입이란 것이 말을 위해서만이 아닌, 숨을 전해주기 위해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 P62
그리 날이 훤하고 좋으니, 말 못하는 계집종, 발걸음 뒤편에 떨어지는 눈물을 뉘 알랴. 마음 안에서 부르는 노랫가락이 애달픈지 서글픈지, 시집간다 하하호호 웃음 짓는지 뉘 알랴. 보따리 하나 품에 안고 낯선 사내 뒤를 따라가는 길이 어떠한지 뉘 알길 있으랴. 그저 발걸음과 함께 조약돌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뭇사람들 귀 기울이니, 부르지 못한 노랫소리는 가을바람조차 듣지 못할 지어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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