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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지금까지 내가 읽은 일본 소설과는 다르게 표현이 마치 '시'같았다.
이 소설의 느낌은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긴머리가 바람에 살짝 날리는,
왠지 피아노를 아름답게 연주하거나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꽃꽂이를 하는 여자를 본 느낌이었다. 그만큼 여성?스럽고 섬세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아픔을 우리옆에 항상 있는 부엌이 달래준다.
7p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 어떤 모양이든, 부엌이기만 하면,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하면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기능을 잘 살려 오랜 세월 손때가 묻도록 사용한 부엌이라면 더욱 좋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깨끗한 행주가 몇 장 걸려 있고 하얀 타일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런 주인공에게 가족이 생긴다.
유이치와 에리코는 혼자남은 주인공과 함께 살며 그녀의 상처를 보듬아 준다.
그러나 에리코도 세상을 떠나게 되고 이제는 혼자 남은 유이치를 주인공이 감싸주게 된다.
'돈까스 덮밥 배달하러 왔어'
'혼자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맛있어서'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주는 그 과정이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이 찡했다.
42p 나는 지금, 그를 알게 되었다. 한 달 가까이나 같은 곳에 살았는데, 지금 처음으로 그를 알았다. 혹 언젠가 그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하게 되면, 항상 전력으로 질주하는 나지만, 구름진 하늘틈 사이로 보이는 별들처럼, 지금 같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조금씩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48p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의 말투가 너무도 자상하고,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이 갑작스레 너무도 귀엽게 보여서, 나는 부러웠다. 나한테는 두번 다시 없을..... 나는 두번 다시란 말이 지니는 감상적인 어감과 앞으로의 일들을 한정하는 뉘앙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생각난 <두번다시>의 그 엄청난 무게와 암울함을 잊기 어려울 만큼 박력이 있었다.
주인공의 슬픔이 `두번 다시`란 두 단어로 압축되어 더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인생이란 정말 한번은 절망해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라는 걸 모르고 어른이 돼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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