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쟁이 중년아재 나 홀로 산티아고
이관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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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을 더 이상 하게 되지 않을 때, 외국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야 말겠다던 아빠의 말은 어느새 그저 조용한 곳으로 가 쉬고 싶다는 작은 소망으로 바뀌었다. 

세계테마기행을 열심히 봤던 아빠. 회사일로 바쁜 매일, 꿈을 꾸게 만듬과 동시에 유일하게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던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지금 와서 보면 그랬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은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가까움에 안주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도 필요하다. 아빠는 이제 그 일을 생각하지 않을 만큼 지친 게 아닐까.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는 작가님의 여행을 지켜보며, 아빠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걷고 먹고 자는 일의 반복인 이야기지만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꽤 귀중하다. 


반복되는 문장 형태와 정돈되지 않은 목차를 안고가더라도, 글에 담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걸음에만 집중하게 된다. 빠져들기 시작하면 금세 읽게 된다.


여행을 떠나지 않기 위한 이런저런 핑계는 집어치우고, 순례길을 완주해내고야 만 그 마인드가 기억에 남는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다른 순례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려 한 대목도 깊게 남는다.  


나는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아빠는 다시 여행을 생각할 수 있을까.    


고작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고 뭔가 큰 깨달음을 얻는다던가, 인생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퇴직 후 삶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루어낸 나는 적어도 산티아고 이전과 이후의 삶이 같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은 들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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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토지를 읽다
김민철 지음 / 한길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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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으로 토지를 읽다 』:: 소소한 일상을 문학으로 만나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꽃을 발견하는 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중 하나인 것 같다. 꽃 사진은 차곡차곡 쌓여도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건 소수에 불과한데, 「 꽃으로 토지를 읽다 」는 그러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나만의 꽃사전이자 문학 속 꽃이라는 배우들의 씬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21권(나남출판사 기준)이라는 장편의 묵직함에 읽을 용기가 나지 않던 <토지>. 색다르고 익숙한 매개체 '꽃'과 저자의 해석이 들어가면서 술술 읽히는 맛이 있다. 본 작품에서의 작가의 의도와 나라는 독자의 해석을 비교해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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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_ 양반꽃과 팜므파탈 

"환이 눈앞에 별안간 능소화꽃이 떠오른다. 능소화가 피어 있는 최참판댁 담장이 떠오른다. 비가 걷힌 뒤의 돌담장에는 이끼가 파랗게 살아나 있다."

::「 토지 」4권 272쪽


#수국 _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 유인실

"축축한 음지에서 흐드러지게 핀 수국, 병자 방에는 꽂지 않는다는 그 수국이 녹색으로 변했을 때, 찬하는 히비야 공원에서 녹색의 여인으로 착각한 인실의 모습을 연상했던 것이다."

::「 토지 」15권 294쪽


#무궁화 _ 태극무늬를 닮은 무궁화의 씨앗

"종을 치고 난 요장이 이들이 복도에 무리지어 있는 우스꽝스런 모습들을 보고 씩 웃는다. 앞마당에는 톱니 같은 모양의 무궁화 잎새가 환한 달빛 아래 꺼무꺼무해 보였고 그것은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곤 했다."


#쑥부쟁이 _ 가을을 장식하는 들국화

"돈암동 일대, 신설동까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두 사람은 다같이 죄인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군데군데 체면처럼 들국화가 한두 포기, 보라색 꽃이 피어 있었다." 

::「 토지 」19권 175 -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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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리아 - 플루타르코스에게 배우는 지혜 한길그레이트북스 170
플루타르코스 지음, 윤진 옮김 / 한길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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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그다지 친한 편은 아니다. 세상에는 윤리가 필요하고, 문과가 없어서는 안된다는 걸 알지만 그 이유를 명확히 답하지 못하는 건 이것 때문일테다. <유토피아>, <페스트> 로 철학을 연이어 접하며 느꼈던 점은 놀라울 정도로 지금의 현실과 닮아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상황과 그를 마주하는 이들의 태도는 마치 보이지 않는 굴레에 갇혀 벗어나지 않는 듯했다. 허구적인 요소가 일부 섞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모랄리아는 어떨까?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가득할 것 같은 표지를 넘어서면, 조금의 시간과 노력을 요할 뿐,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본 내용보다는 오히려 끊임없이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과 주석을 읽는 데 힘이 들어간다. 어릴 적 동화의 원형으로 사용된 전적이 있는 만큼, 짧지만 명확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꺼내 읽어도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그 시대만의 관점으로 바라본 세계 속 뜻하지 않은 유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모랄리아> 또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담론이다. 5개의 목차 중 첫번째인 '7현인의 저녁식사'는 가장 긴 호흡을 필요로 하면서도 시대를 막론한 질문을 던진다. '민주정치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본 결과 나에게는 '시민들의 비판을 두려워하는 공직자와 언론, 그리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 팩트를 찾아내는 시민'이 그것이었다.

때로는 현인들의 지혜를, 또는 장군들의 처세술과 스파르타 여성들의 용기를 지켜보며, 지금을 살아가는 시민이자 인간인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플루타르코스가 축적한 시간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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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4
우리는 누가 좋은 자리를 배정받았는지가 아니라, 같이 앉게 된 사람들이 우리와 잘 어울릴 만한 사람인지를 알아내려고 애써야 하네. 또 그 사람들이 친교를 나눌 만한지, 우정을 지속시킬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봐야 하지. 그리고 불만을 표시하기보다는 그런 이들과 자리를 같이하게 된 것을 드러내놓고 만족해하는 것이 더 나은 행동이라네. 항상 그렇듯이 식탁의 자리배치에 불만을 품은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옆에 앉은 이에게 불만을 품은 것이고, 그건 두 사람 모두에게 좋지 않아.

p. 237
사람을 명예롭게 하는 것은 자리가 아니고, 사람이 자리를 명예롭게 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어.

p. 243
그는 병사들이 어떤 일을 빨리했으면 하고 바랄 때면, 자신이 직접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솔선수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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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리아 - 플루타르코스에게 배우는 지혜 한길그레이트북스 170
플루타르코스 지음, 윤진 옮김 / 한길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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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분류의 벽을 넘어선다면 읽는 데 어려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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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 서점은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한밤의 별빛이다
김언호 지음 / 한길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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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다. 책으로 둘러싸인 곳이라면 어디든 좋지만, 독자적이고 상업적 성격을 띈 서점의 다양한 공간 구성과 큐레이션은 언제나 눈길을 끈다. 그러한 점에서 전세계 곳곳에 있는 서점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 책은 내게 선물 같은 것이다. 이곳은 마음껏 책을 향유하고 지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책은 폭력이 아니라 말과 글로 하자는 것이다.'
'책이 상대방의 지혜를 이끌어낸다면, 책을 부인하는 폭력은 상대방을 섬멸한다.'

책은 무작정 강요되어서도 안되지만 부인되어서도 안된다. 믿고 싶지 않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꽤 어둡다. 책과 서점, 나아가 출판계와 도서관의 역할이 부정되고, 권력에 의해 휩쓸리고 있다. 더욱이 서점은 이 혼란 틈에서 상업적 성격까지 띄고 있으니, 그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서점의 올바른 역할을 고민한다. 각각의 철학과 용기로 해답을 구한다. 그 속에서 위기를 벗어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권위란 무엇인가. 사유의 힘과 판단의 척도를 의미한다. 권위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인간들은 사유와 판단의 능력을 상실한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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