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회사 : 청년 편 - ‘자기다움, 톡톡 튀는 아이디어, 소자본’을 키워드로 하는
수희향 외 지음 / 북포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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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회사 청년편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처음엔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 했어요. 대출받을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는데 이때 처음 시도해봤어요. 그런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다음이 정부에서 청년 창업가들 대상으로 대출해주는 게 있는데, 시기가 겨울이다 보니까 이미 다 소진됐더라고요. 이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근데 그때 대학 선배 중 창업한 한 선배가 말해주길, 창업가들 전부 언젠가 한 번은 지금의 저처럼 '죽음의 계곡'을 지난다는 거예요. 돈은 떨어져 가고, 지금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밑바닥 일은 하나에거 열까지 혼자 다 해야 하고. 근데 이걸 잘 견뎌내는 사람은 살아남고,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라고요. 그리고 잘 견뎌서 비즈니스가 살아남으면, 이 모든 경험이 밑거름이 되는 거라고요. 사실 돈이라는 건 100~200만 원만 있어도 버틸 수 있는 거니까 어떻게든 구할 수 있는데 정작 힘들었던 건 마음이었어요. 그때는 신앙이나 주변의 좋은 분들의 격려가 많은 힘이 됐어요."

 

 

그렇다면 내 인생의 책은?

 

"이웃집 백만장자라는 책이에요. 한 줄로 말씀드리자면 결국 진짜 부자들은 검소함을 기반으로 부를 일궜다는 내용인데, 제겐 굉장히 감명 깊었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겉으로는 화려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실 있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하고 결심했거든요. 1인 기업가는 특히 더 그래요. 사실 회사가 어느 정도 커나갈 때까지는 대표가 전부나 마찬가지잖아요. 투자도 대표를 보고 들어오고, 수주도 대표를 보고 들어오고요. 대표가 곧 회사이다 보니까, 정말 중심 잘 잡고 가야겠다 싶은 거죠. 투자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차 바꾸고 하시던 분들 부도 맞던 거 주변에서 꽤 봤거든요."

 

 

"바가바드 기타라는 인도 경전이요. 마음이 힘들 때마다 읽으면 고요하게 해주요. 그렇잖아요. 마음이 힘들다는 건 그만큼 조급함이 있어서 그런 거고, 조급함이 생긴다는 건 결국 내 안의 욕망에 휘둘린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지 전 이 채긍늘 가까이하고 있어요. 그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나무를 깎는 그 자체가 마치 제겐 요기들의 수행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시작은 여유롭게, 그러나 일단 뛰어들면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린 시절 만약 자신만의 한 분야를 정해서 뛰어드는 거라면 너무 조바심내서 세상에 빨리 나를 드러내려 애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충분히 자신만의 분야에서 여유를 갖고 실력을 갈고닦은 뒤에 나아가도 늦지 않다는 거죠. 다만, 반대로 일단 세상에 뛰어든 후에는 강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것을 지키며 결코 뒤로 물러서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어쩌면 저 자신한테 늘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어요. 프리랜서의 길이라는 게 원래 굉장히 외로운 길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한편으론, 외로움이 아주 좋다고 느낄 정도의 정신력을 갖춰야 해요."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말은, 제일 많이 흥미가 가거나 끌리는 일을 두려움 없이 한번 해봤으면 싶은 거죠. 어릴 때는 잘못되거나 돌아가는 것도 다 경험인데, 너무 인생을 허비한다고만 생각들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만큼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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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기적의 논 - 농부, 버려진 땅에서 자연을 짓다
이와사와 노부오 지음, 김석기 옮김 / 살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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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을 바꾸는 기적의 논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가까스로 고안해 낸 '갈지 않고 옮겨 심는 재배법''겨울철 담수 농법'에 대해서 슬쩍 그 대강을 설명하겠습니다. 본문에서 상세히 말하겠지만 '갈지 않기'란 문자 그대로 논의 흙을 갈지 않고서 모를 심는 것입니다. 벼를 벤 뒤 그루를 그대로 남겨 두고, 그 벼의 그루와 그루 사이에 올해의 새로운 모를 심습니다. '옮겨 심기'란 미리 모를 키워 놓고서 모내기할 때 그것을 옮겨 심는 것입니다. 논에 직접 볍씨를 뿌리는 곧뿌림법(직파법)이 아닌, 일반적으로 행하는 것처럼 모를 따로 키워서 모내기할 때 옮겨 심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모를 기르는 방법이 일반적인 농법과는 다르게 어린모가 아닌 자란모로 하기 때문에 옮겨심기입니다.

 

'겨울철 담수'란 겨울 동안 논에 물을 채워 놓는 농법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가을에 벼를 벤 뒤 논을 그대로 놔두고, 봄에 모를 내기 전 논갈이를 하고 나서 물로 채워 모를 심습니다. 반면 겨울철 담수는 겨울에도 논에 물을 채워 놓고서 논의 광합성을 촉진시키고, 식물 플랑크톤이나 그것을 먹이로 하는 동물 플랑크톤의 발생을 도와 벼의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논에 공급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료 없이도 재배할 수 있습니다. 또 잡초의 발생도 억제하기 때문에 농약 없이도 재배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벼가 지닌 본래의 힘을 활용한 자연농법에 우리가 가까스로 도달하기까지는 오낼 세월이 걸렸습니다.

 

 

여기에서 잠시 후쿠오카 농법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해마다 11, 물을 뺀 갈지 않은 논의 그루와 그루 사이에 토끼풀과 벼의 씨를 이겨 넣은 진흙 경단을 뿌리고 발로 밟아 누릅니다. 이것이 씨뿌리기입니다. 먼저 저온에서 싹이 틀 수 있는 토끼풀이 싹을 내서 논은 토끼풀밭이 됩니다. 온통 토끼풀로 덮이면 잡초 생성이 억제됩니다. 이듬해 5월이 되면 토끼풀 사이로 벼가 고개를 내밉니다. 벼가 토끼풀보다 위로 자랐을 때, 논에 물을 확 넣습니다. 물에 잠긴 토끼풀은 죽어 버리지만 벼는 살아남습니다. 갈지 않고, 농약도 쓰지 않고, 비료도 쓸 필요 없는(뿌리혹박테리아가 천연 질소비료가 되기 때문에) 이 농법을 '갈지 않는 재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후쿠오카 농법을 지금의 말로 한다면, 갈지 않는 곧뿌림(직파) 재배입니다. 곧뿌림이라는 점이 우리가 제창하는 옮겨심기 재배와는 다른 부분입니다. 후쿠오카 농법은 합리적이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쌀을 둘러싼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후쿠오카 농법은 볍씨 한 알로도 많은 수확을 올리려고 한 당시의 상황(전쟁 이후)에서고안된 농법입니다. 더욱이 이 농법은 넓은 면적에는 알맞지 않고, 자기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직업으로서의 농업과도 맞지 않았습니다.

 

 

1996년 미국 농무부의 사라 라이트 박사는 글로말린을 발견하고 갈지 않는 재배를 장려했습니다. 균근을 만들어 식물과 공생하는 균류를 균근균이라 하는데, 글로말린은 균근균 가운데 진균이 배설하는 강력한 점착성 단백질입니다. 진균은 근권 미생물(뿌리 주변에 사는 미생물)이라 살아 있는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여 번식합니다. 논을 갈면 뿌리를 자르거나 부수어 진균이 말라 죽어 버립니다. 그래서 흙을 갈지 않고 재배하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모든 경작지의 50퍼센트 이상이 갈지 않는 재배로 대체되었고, 캐나다·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곡물 수출국도 갈지 않는 재배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밀의 산지로, 세계의 빵바구니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미국의 밀농사에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밀을 1톤 수출하면, 흙을 2톤 수출하는 셈리아고 합니다. 당을 갈면 흙이 바슬바슬해져, 바람이 불면 바람에 날리고 비가 오면 비에 쓸려 가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경작지의 겉흙이 사라져 밀을 재배할 수 없습니다. 그 대책이 갈지 않는 재배였습니다. 갈지 않는 흙은 비나 바람에도 강하여 겉흙이 무사합니다. 처음에는 갈지 않는 흙이 해마다 단단해져 밀을 수확할 수 없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반대로 흙이 부드러워져 떼알구조가 되면서 비옥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그래서 그 원인을 규명하니, 바로 글로말린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농업은 점차 갈지 않는 재배라는 농법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계의 곡물 수출국들이 이 농법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논은 갈지 않습니다. 벼의 뿌리는 이듬해 3월 하순까지 살아남습니다. 이 뿌리는 진균과 같은 구조를 가진 근균미생물이 번식하여 흙을 비옥하게 하며 맛있는 쌀을 생산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갈지 않는 논으로 바꾼 지 3년이 지나면 2배가 되고, 15년이 지나면 3배가 된다고 합니다.

 

 

흙에는 토양삼상이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흙은 40퍼센트의 고체, 30퍼센트의 기체, 30퍼센트의 액체가 이상적이라 하여, 농가에서는 유기물과 토양개량제를 넣어서 이상적인 흙을 만들려고 거듭 노력합니다. 또한 두엄을 넣으면 이 이상적인 삼상에 가까워집니다. 유기물은 틈을 만들어 공기가 들어오게 해 줍니다. 또 유기물은 보수력이 뛰어나 액체를 머금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유기물은 이윽고 박테리아에 분해되고 무기화되어 사라집니다. 이것이 해마다 두엄을 넣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반면에 라이트 박사의 글로말린은 균근균의 배설물이 토양입자를 끈끈하게 달라붙도록 하여 떼알구조를 만든다는 발견입니다. 이 발견으로 200년이나 내려온 정설, 곧 부식설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틀림없이 토양비료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권위가 실추될 테니까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갈지 않는 재배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당분간 계속 저항하겠지만, 세계의 추세에는 이길 수 없겠죠.

 

 

주변의 산을 이용하여 낙엽으로 두엄을 만들고 유기농버으로 농약을 치지 않는 채소를 생산하는 농원을 만들면, 논의 벼농사와 함께 새로운 운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채소 농사도 탄소순환 농법을 도입하여 농약 없이 재배하는 겁니다. 탄소순환 농법이란 산의 자연 순환 구조를 밭에 도입한 농법입니다. 산에서는 해마다 낙엽과 마른 가지가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땅거죽이 유기물로 덮여 보호되어 있습니다.

 

두메산골의 마을에는 풀과 낙엽이 무한합니다. 이를 이용하여 산의 순환을 그대로 재현하는 겁니다. 근처에 버섯을 재배하고 나오는 버섯배지가 있다면, 이미 이런 재배는 할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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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 農농 길라잡이 - 내 손으로 기르는 자연란·벼·보리·채소·과수·농가공품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36
나카시마 다다시 지음, 김소운 옮김 / 들녘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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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 농 길라잡이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자급 농사의 핵심은 바로 닭이다. 50마리만 있으면 150평의 땅에 거름을 공급할 수 있고, 그 정도 면적의 땅이면 4인 가족이 1년 동안 먹을 식량을 자급할 수 있다. 게다가 주곡인 벼와 보리를 땅을 갈지 않고 손으로만 농사지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며, 경운기를 쓰지 않고도 가능한 진정한 자급 농사의 표본을 보여준 점은 이 책의 가장 독보적인 장점이라고 할만하다.

 

 

'자기 밥벌이는 자기가 하는' 자급자족형 소농을 지향하는 - 이른바 인간 생존의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제창하고 싶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득히 먼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해온 방식의 복습일 뿐이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아무리 초보자여도 입에 풀칠할 만큼은 농사지을 수 있는 이른바 '농부'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소규모 양계는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고, 반년 후부터는 달걀을 낳으므로 하루 벌이는 된다. 또한 닭똥을 활용하기 때문에 화학 비료를 구입할 필요가 없으며, 1인당 500(150)만 있으면 벼와 보리, 채소를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돈이 궁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먹을거리는 자급할지언정 푼돈이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최소 50마리 규모의 양계를 추천한다. 50마리의 닭똥이면 1500의 농지에 쓸 거름으로 충분하며, 자급하고 남은 달걀을 팔면 하루에 1,000엔 남짓한 수입이 들어온다. 더 많은 수입을 원하면 마릿수를 늘리면 된다.

 

자연양게를 본업으로 삼기 위해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한 사람이 전국적으로 수천 명에 달하는데, 평균 500마리 규모의 양계로 생계를 꾸려 간다. 사치스럽게 생활하지만 않는다면 이 규모로도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하다.

 

 

어지간해서는 입맛에 맞는 땅을 찾기 힘들지만 기존 조건을 그대로 감수하고 인내해야 한다. 오래 살다보면 여러 모로 새로운 조건을 제시해 오기도 한다.

 

1인당 500(150)면 궁색하지 않게 살 수 있으니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자. 설사 체력이 남아돌아도 1인당 500(150)를 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 농지가 너무 넓으면 그 이상은 그냥 풀밭으로 남겨 둔다. 풀은 풀대로 닭이나 염소의 먹이, 퇴비의 재료로 유용하다.

 

자급용 농지 500가운데 200를 벼와 보리에 할당했으니, 남은 300는 잎채소, 열매채소, 뿌리채소 등의 자급용으로 할당한다. 아마 300분의 채소는 너무 많아 처치하기 힘들 것이다. 그럴 때는 배추, , 감자, 고구마, 호박도 닭의 먹이로 쓴다.

 

 

벼와 보리는 우리 조상들이 수백 년에 걸쳐 해마다 같은 땅에서 농사를 지었어도 한 번도 연작 피해를 입은 적이 없는 아주 좋은 작물이다. 60년 남짓 농사를 지은 나도 가장 진땀을 흘린 일이 논벼 농사였다. 그래서 논벼 대신 밭벼를 재배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꼬를 팔 곳에 황폐한 밭이 있으면 비닐 덮개르르 씌우고 물 없이 밭벼를 재배한다. 이 방법이라면 기계가 필요 없고, 벼는 심기만 하면 자연의 혜택을 입고 저절로 영근다. 설령 수확량이 적고 맛이 좀 떨어질지언정 고된 중노동으로 기진맥진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고 생각한다.

 

 

자급용으로 한두 포기만 있으면 충분한 채소는 종묘상에서 모종을 사다가 심는 편이 값도 싸고 간편하다. 가령 3인 가족이면 피망과 오이고추는 한 포기, 오이와 호박은 두 포기면 충분하다. 또한 토마토와 딸기는 세 포기면 적당하다. 자가 채종하려면 비록 한 포기라도 손수 모종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빡에 배추, 옥수수, , 감자의 재배량은 기호에 맞춰서 각자 알아서 결정한다. 그것이 자급 농부의 본분이다.

 

 

가지치기와 인공 재배, 적과는 고사하고 봉지 씌우기는 물론 농약조차 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방치해도 열매를 맺는 과일이라면, 내가 사는 고장에서는 감과 매실, 밤뿐이다. 그냥 내버려둬도 감은 한 해 걸러, 매실과 밤은 해마다 열매를 맺는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니 모두 거목으로 자란다. 조상들도 나와 같은 방법으로 키웠는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근처 집들의 처마 주위에는 커다란 감나무와 매실나무가 있었다.

 

 

감나무와 매실나무는 자급 농민에게 필요한 과수이므로 꼭 '방임 재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밖의 과수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말할 자격이 없으니 전문 서적을 참고로 도전해 보기 바란다.

 

자연 농법으로 성공한 양계 농가 중에는 과수원에 울타리를 치고 닭을 방목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사람도 있다. 닭에게 김매기와 거름주기를 맡기는 것이다. , 포도, 키위와는 환상의 궁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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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고쳐 살기 - 인생을 담은 맞춤형 생태주택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28
전희식 지음 / 들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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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고쳐 살기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시골에 가서 살려고 한 이상 가장 먼저 장만해야 하는 게 바로 집이다. 나는 귀농생활 16년 동안 집을 세 채나 지었다. 그래서인지 귀농 후보자를 만날 때마다 시골집을 구해서 고쳐 살라고 권한다. 한옥이라고 하면 흔히 유명한 서원이나 궁궐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옥에 대한 편협한 시각이다. 평범한 시골 살림집도 어엿한 한옥인 것을. 고대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민중이 생활해온 생활집이야말로 제대로 한옥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

 

집값을 치르느라 평생 빚쟁이로 사는 모습을 주면에서 흔히 볼 수 있으니까. 그들은 또 부동산 가격 등락에 일희일비한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생태적인 삶에 대한 추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지 않으면 ''에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시골 농가를 구해서 고쳐 사느 건 어떨까?

 

시골 농가엔 빚 내지 않고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장점이 많다. 시골 농가를 고쳐서 살면 뭐가 좋을까? 빚 안 내고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것 말고도 정말 좋은 점이 있는 걸까?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아주 중요한 이유가 분명 더 있다. 그것도 몇 가지나!

 

첫째, 집터 구하는 수고를 덜게 된다. 집터 구하는 수고를 던다는 것은 이른바 '풍수'라 일컫는 지세, 수맥, 방향, 바람, , 물 등의 문제가 저저라로 해결된다는 뜻이다. 물론 자연재해 문제도 포함된다.

 

둘째, 시골집 고치기를 시작하는 순간 진정한 동네 주민으로 편입된다. 집 고치기가 동네 주민으로 자리 잡는 지름길이 된다는 의미다.

 

셋째는 무엇일까? 죄를 짓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생태 주택의 기준은 이렇다. 에너지 부문이나 물, 소재의 천연성 등도 생태 주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만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집, 대자연 속으로 고스란히 돌아가는 집이 진정한 생태 주택이 아닐까 하고 한 마디 덧붙이자면 주변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짓는 집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생태 주택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눈 폭탄, 혹한, 폭우 등 자연재해가 극심해지는 때엔 극단에 가까운 생태적인 삶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시골집을 고쳐 살 때의 좋은 점은, 그 집과 집터에 살던 옛 사람들의 기운이 시골에 잘 정착하여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른바 '터줏대감(성주신)'이 도와준다.

 

 

왕겨의 단열효과는 친환경 건축자재로 쓰일 정도다. 작년 가을, 독을 땅속에 묻으면서 독 주위로 왕겨를 가득 넣었다. 그러고는 독 두 개에 무도 넣고 씨감자랑 당근이랑 고구마까지 넣었는데 모두 무사했다. 고구마가 무사한 것은 기적이었다. 고구마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얼어버리는데 왕겨가 얼마나 단열효과가 좋은지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사방 위아래 이중으로 된 1미터 두께의 왕겨 창고에 얼음을 보관했다가 여름에 거내 쓴 기록이 있다고 한다. 왕겨를 황토에 버무려 벽돌을 만든 다음 궈워내면 기가 막힌 단열 벽돌이 된다. 벽돌을 굽는 과정에서 왕겨가 혼탄으로 변하면서 수많은 기공을 만들기 때문이다.

 

 

동굴은 자연 냉장고가 되는 것이다. 동굴 만들기와 환기구 설치, 출입문 작업 등에 대해 조사를 다 마치고, 곡괭이를 가지고 파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만 우리 형님이 냉장고를 사가지고 왔다.

 

동굴처럼 음식을 화석 에너지를 이용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는 장치로 독을 땅에 묻고 독 둘레를 모래로 싼 뒤 거기에 물을 일정한 속도로 공급해서 기화열을 이용하는 장치가 있다. 이런 기술들을 '적당기술' 또는 '생활기술'이라 하여 많은 지식인과 생활인들이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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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회사 - 성공하는 1인 지식기업가로의 아홉 가지 로드맵
수희향 지음 / 생각의나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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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회사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윌리업 브리지스는 천직을 찾는 일을 '사막여행'에 비유했다. 그만큼 한동안 동서남북 전부 모래만 보이는 혼란함과 정체기를 겪어야 한다는 의이에서 그리 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고대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은 북극성과 별자를 이정표 삼아 사막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오아시스를 찾아내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당도했다고 하니, 천직을 찾고 그것을 현실세계로 끌어올리는데도 분명 길잡이가 되어줄 이정표가 있을 것이다. 여행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 밖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을 안쪽으로 돌려 내 안의 꿈을 바라보는 일이라 하는데, 우린 이미 그것을 시작하였으니 당신 또한 여행에 동참한 것이다.

 

 

피카소가 마침내 자석에 이끌리듯 모든 예술의 중심인 파리로 입성한 나이는 19살 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파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그의 나이 30살 때의 일이니, 거의 1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역사가 인정하는 위대한 천재조차도 말이다.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이 외국인 청년은 세계문화의 중심 파리에서 초창기 시절에 외로움과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고백한다. 처음엔 당연히 작품을 팔 수 없어 가난하였고, 심지어 감수성 예민한 천재는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30살까지 무명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작품활동을 하였고, 시간과 작품이 쌓여가는 만큼 세상과의 문도 조금씩 넓어졌다. 그리하여 역사는 피카소라는 이름에 미래에도 함께할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미술계에서 일대 전환점을 그리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최근에 발견된 피카소의 소장품 중에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 노트 8권이 발견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것은 미술계의 신동 피카소가 한때 반짝 스타가 아니라 길이 빛나는 거장이 될 수 있었던 연습과정으로서 중세시대의 선배 거장, 미켈란젤로가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세상이 안다면 그다지 존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게 하는 순간이다.

 

 

전문가를 향한 길은 안타깝게도 직선 코스가 아니다. 한순간 도약을 이루고 나면 길고 긴 정체기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다고 그 기간 동안 스킬이나 능력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식, 연습, 땀 그리고 모든 내적, 외적 어려움들이 어우러져 아주 더딘 걸음으로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이 축적되는 시기이다. 하지만 그 성장의 보폭이 너무도 작고 더뎌서 겉으로 보기엔 도약의 순간과 비교해 봤을 때 마치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삼국지는 매일을 처절하게 싸우는 그에게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교훈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자극이 되기도 하면서, 인간들의 욕망과 투쟁, 성공과 실패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현장으로 극한의 삶을 지나쳐온 그가 1인 지식기업가가 되려면 최소 2년은 바닥 생활을 할 각오를 하고 시작하라고 한다. 삼국지에서 영웅들이 영웅으로 등극하기 이전의 삶들처럼 말이다. 그가 1인 지식기업가의 길을 걸어보니, 삼국지가 그냥 소설이 아니라 인간들의 삶을 지독히도 바닥까지 처절히 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누구나 와신상담의 기간을 거치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삶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욕망경비라니, 언감생심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스승의 말을 중심으로 삼아 그 자신이 이미 유명한 작가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3년에 한 번씩 한 명의 작가를 연구하며 그들의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녹여낸 뒤 그것을 다시 소설로 발표했다.

 

칠순이 넘도록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는 노작가는 과연 언제 책을 쓰는 것일까? 겐자부로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시고, 오후 2시까지 꼬박 8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2시간 동안이나 책을 슬쩍이라도 볼 수 없어 영화관도 찾지 않는다는 노 작가는 글을 쓰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은 책을 읽는다고 한다. 특히 겐자부로는 스승이 일러준 대로 하나의 작가나 사상가에 대해 3년 정도 공부한 것이야말로 유명해진 이후 밀려오는 퇴폐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었고 다음 작품에 대한 길을 열어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드러커 교수가 3~4년에 걸쳐 하나의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나, 겐자부로가 3년에 걸펴 한 인물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나, 그 대상만 다를 뿐 대가들의 학습법은 모두 같음에 뼛속까지 깨우침이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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