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주론의 배경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에서 근대로 이행되는 패러다임 전환시대를 살았다.
중세 교회의 권위가 절정에 달한 1096년에 시작된 십자군전쟁이 1291년까지 200년에 걸쳐 계속되면서, 역설적으로 지중해를 중세의 죽어 있는 바다에서 고대 로마처럼 통상교역의 살아있는 바다로 재탄생시켰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고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시기에 마키아벨리의 조국인 피렌체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당시 피렌체 공화국은 르네상스 시대에 경제- 정치-외교의 전성기를 경험했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예술계 거장들이 와서 앞선 문화를 자랑했지만, 내부 분열이 극심해 정치적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고, 자체 군대도 없이 안보를 외교와 용병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때,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외교 실무를 담당하면서 사안에 따라 각국의 사절로 파견되었다.
《군주론》의 모델이 된 로마냐 공작 체사레 보르자와의 만남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대표작인 《군주론》을 비롯해 《로마사 논고》는 마키아벨리가 정치외교의 최전선에서 축적한 경험이 유감없이 발휘한 역작이다. 마키아벨리의 저작이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이 된 이유는 현실의 정치를 추상적 윤리와 분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