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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로 읽는 한국사 - 한 권으로 독파하는 우리 도시 속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ㅣ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함규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7월
평점 :
30개 도시로 읽는
한국사
한 권으로 독파하는
우리 도시 속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남한부터 북한까지 한반도 30개 도시를 통해 한국사 흐름을 펼쳐낸 도서로 30개 도시로 떠나는 한국여행지도 목차를 보기만 해도 궁금해지고 어떤 도시에 어떤 역사이야기가 깃들어 있을지 기대가 가득한 채로 이 책을 읽어보았다.
목차를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대구가 궁금해 대구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대구는 평균 해발 49미터로 시 전체가 분지 지형이다.
원래의 이름이 달구와 마찬가지로 높은 언덕을 뜻한다. 높은 언덕에 큰 평야가 있으니 달구벌이며, 그 평야에 오래전부터 사람이 모여 살아왔다.
달서구 월성동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로 미뤄볼 때 아마 2만년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으리라 여겨진다.
기원전에는 부족국가가 세워졌고,
108년 신라에 병합되어 달구화현 그 후로부터 달불성, 달구벌 등으로 표기
757년 경덕왕의 지명 환화조치로 대구가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졌지만
천년 뒤, 1750년에 구丘는 공자님의 함자와 겹치므로 외람된다주장이 있어 대구大邱로 한자명이 바뀌었다.
대구의 가장 북쪽에는 팔공산이 있다.
신라는 삼한을 통일한 뒤 중국을 본 떠 5악 숭배체제를 세웠는데 토함산. 지리산, 태백산. 계룡산. 팔공산이 그 다섯산이 었고 임금이 오악에 직접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국가와 왕조의 복을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이 만들어졌다.
양식을 볼 때 신라시대 불상인 것만 확실할 뿐 정확히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
이 불상의 전설에 따르면 의현법사가 입적을 지켜본 뒤, 집에 돌아가니 그 사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원광법사와 어머니 넋을 달래고자 혼자 망치를 끌고 팔공산에 올라 바위를 깎고 또 깎아 부처님을 이루어냈다.
6주동안 그리했는데, 학들이 날아와 굶어 죽지 않게 해주었고, 원광법사가 입적한 때가 640년이니, 전설이 맞다면 이 불상은 삼한 통일이 이루어지기 직전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왕건이 파군재를 거쳐 달아나다 동화사근처까지 왔고 동화사 승려가 안전하게 길을 가르쳐 주어 왕건이 무사히 달아날 수 있었다.
팔공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왕건이 패했던 파군재가 있고 파군재에서 남쪽으로 2킬로미터쯤 더 내려가면 불로동고분군이 나온답니다. 이 고분들은 5세기에서 6세기의 것들로 추정된다.
1601년부터 경상도 행정의 중심지인 감영이다.
감영공원은 선화당과 정청각이 남아 옛 감영의 흔적을 보여준다.
1862년 진주를 비롯한 농민들이 삼정의 문란 등에 분노해 임술민란을 일으켰는데 경상감영을 총본부로 삼고, 영남 일대우 민란운 수습했다고 한다.
1864년에는 동학교주 최제우가 처형
1906년에는 친일파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독단으로 허물고 경상감영 옆 측우기를 일본인에게 선물로 넘겨주고, 감영의 일부였던 포정문도 뜯어내어 달성공원에 장식물로 세워놓았다.
1946년 10월 1일사건 발반 좌익을 관용하는데서 탄압하는 쪽으로 바뀐 미군정의 태도와 그에 반발한 남한 좌익의 극렬투쟁 등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1950년 7월 16일에 대한민국 수도가 되었다. 다만 북한군의 공세로 한달만에 수도는 더 남쪽으로 내려가고,
대구는 치열한 전쟁터로 바뀐다.
조선시대 경상감영 주변에 타지에서 드나드는 이들을 위한 시장 형성되었고 그 시장이 약령시장이다.
대구가 한양과 영남을 잇는 물류와 낙동강을 활용하는 영남 물류의 요지로 발전하면서 시장은 규모가 더 커졌다.
지금은 약전골목이 남아 있으며 한우원들과 한약재들을 파는 곳이다.
1893년 영남최초 개신교 교회인 대구제일교회가 세워졌고,
1899년 부속 서양병원 제중원이 세워졌다.
1899년 한옥성당인 계산성당이 세워졌고 이 성당은 프랑스와 수교 이후 오랜 박해의 멍에를 벗은 천주교에서 국내에서 4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1907년 서상돈. 감광제 등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
1960년 2.28운동은 대선을 앞두고 일요일인데 등교하라고 해서 경찰과 몸싸움을 한 운동이다. 이 2.28 학생 의거는 대구로서는 일제강점기의 학생운동과 10.1사건의 맥을 잇는 것이었고, 전국적으로 정부수립이후 처음 벌어자 민주화 운동이면서 4.19혁명의 선구였다.
대구의 남쪽 끝이자 신천의 발원지가 나온다.
비슬산이디. 높이 1035미터로 꼭대기에 대견사가 있다
9세기 초 신라 홍덕왕대에 창건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두차례 중건되었다가 일제가 1917년 절 건물을 모두 허물고 삼층석탑만 남겨두었다
이유는 이 절의 대웅전이 대마도를 마주하고 있어 일본 땅의 기운을 빨아들인다는 하여 없앴다고 한다.
2013년 중창되어 팔공산 동화사 부속절로 운영되고 있다. 대견사뒤에 비슬산 참꽃군락지가 있고 마치 산 위에 꽃바다가 펼쳐진 듯 하다. 산 아래 두고 온 온갖 복잡한 근심걱정을 잊어버리고 천국의 정원에서 노닐게 된다.
이제껏 대구역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알고 있었던 내용을 정리하기도 했다.
대구의 역사가 2만년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서 놀라긴 했다.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대구역사를 알게 되니 대구가 더 멋있어 보였다.
대구 다음으로 알고 싶은 지역은 제주도였다
제주도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지 궁금해졌다.
제주도는 삼다도로 잘 알려져 있다.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가 많은 섬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역사를 훑어보면 또 다른 삼다도라고도 할 수 있다.
첫째, 특산물이 많았다.
둘째. 이방인이 많았다.
셋째, 반란이 많았다.
제주에는 약 1만년전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하지만 출발은 신화에 의존한다. 고조선. 고구려 신라 가야 등 한반도 고대국가들의 건국신화는 하나같이 하늘에서 사람이 내려온 이야기인데. 제주는 거꾸로다 땅에서 사람이 솟아났다니 말이다
고을나.부을나. 양을나라는 세 선인이 솟아났다는 풀 밭 위 세군데 구멍과 그 성역을 감싸고 있는 크고 묘하게 구불거리는 나무들은 사뭇 신비스럽다. 작은 신들의 정원처럼 산책하기 좋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 선인은 활을 쏘아 자신들의 터전을 정하고, 동쪽에서 바다를 건너온 여인들과 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탐라를 가장 먼저 세력권에 넣은 본토의 나라는 백제였다.
고구려도 400년에 백제-가야-왜의 연합군에게서 신라를 구원해준 뒤 신라 영토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신라를 통해 탐라와 연결했다. 그래서 탐라국은 삼국 사이를 저울질하여 복잡한 외교를 펼쳤을 것으로 보인다
탐라. 제주의 첫번째 귀한 선물은 진주였다.
두번째는 귤. 세번째는 말이었다.
제주 조랑말은 제주 삼성이나 포세이돈의 신마처럼 땅에서 솟아나온 게 아니다.1277년 몽골이 고려를 무릎 끊리고 제주를 자기네 땅으로 삼은 다음 몽골 말을 대거 들여와 제주 초원을 목장으로 만들고 동서양속이라는 관리기구를 설치하면서 비로소 특산품이 되었다.
대구와 제주 이외에도 다양한 도시에 얽힌 역사이야기가 흥미롭다. 도시마다 위치나 상황에 맞는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이 이야기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루 한 도시
가볍게 여행 떠나듯 우리가 몰랐던 도시의 과거와 미래를 이해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전
여행하는 도시의 역사이야기를 알고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역사가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면
《30개 도시로 읽는 한국사》를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새로운 도시 역사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