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 트래블러 - 조현병과 투쟁한 어느 아름다운 정신에의 회고
W. J. T. 미첼 지음, 김유경 옮김 / 에디스코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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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책이 있다. 쓰고 싶은 책과 써야만 하는 책이다. 나는 첫 번째 종류의 책은 꽤 많이 썼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았다.-서문 중에서"

이 문장을 읽은 순간 <멘탈 트래블러>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21세의 나이에 조현병 진단을 받고, 18년 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들 가브리엘에 대한 아버지의 기록. 가브리엘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죽은 아들의 삶을 되짚어보며 모든 기록을 찾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은 아니었다.
"나는 왜 사람들이 늘 자식의 죽음에 대해 상상할 수 없다는 표현을 쓰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내 느낌은 정반대였다. 그 죽음은 너무나도 상상 가능했다. "는 저자의 말처럼 , 책을 알게 된 순간부터 가브리엘의 죽음을 애도하고, 아이때문에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고통받는 삶을 살았던 부모의 마음에 절절하게 통감했다.때문에 더욱더 이 책이 씌여진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가브리엘은 우리가 그저 스치듯만 하는 세계의 경계에서 살았다. 그곳은 자신의 과대망상적 판타지에 안주하는 동시에 늘 분노하고 고통받고 산산이 무너지는 세계였다. 가브리엘은 그러한 판타지를 작동하게 하는 동시에 폐허로부터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격렬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가브리엘은 진정 정신의 여행자였던 것이다."

가브리엘은 조현병과 사투하며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고민하고 방법을 찾던 멘탈 트래블러였고, 저자는 가브리엘이 남긴 기록을 더듬어가며 그것이 결국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는 멘탈 트래블러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 가브리엘의 전반적인 삶을 이야기한다면, 후반부에는 가브리엘이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그의 정신을 들여다보고 그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조현병이라는 이름이 환자에게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자 "추방" 선고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그 추방은 환자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인 직계가족에 의해 행해진다."
"사람들은 혼자 미치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들을 정신질환의 세계로 함께 데려간다. "
가브리엘의 고통은 단지 그 혼자만의 고통은 아니었다.아들의 진단을 알게 되자 부모는 당혹스러워하고 비통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절망하고 멈춰서지 않았다. 이 책은 내내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하는 그 답도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그리고 정해진 답은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는 부모가 나온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그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와 예술적인 시간을 함께 한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이들을 위해 정신병원이 아닌 공동 레지던스가 존재하고 사회적인 지원과 일자리 마련이 가능한 부분은 다소 놀라웠는데, 제도적인 부분과 실제 적용되는 현실의 간극으로 인해 불합리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니 역시나 사회 보장은 무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루틴과 일자리가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가브리엘은 "정상인"의 세계에서 아웃사이더 장애인이라는 지위로 정의되는 소수자로서 삶을 살기로 확고히 결심했다."
하지만 가브리엘과 가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브리엘은 스스로도 예측할 수 없었던 죽음을 선택하고 만다. 저자는 가브리엘의 기록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이 행위의 목적에 대해 고민한다.
"거울로 무한한 깊이를 반사하는 유한한 상자인 <무한 큐브>처럼 영혼은 하나의 우주이다. 가족, 공동체, 그리고 심지어 더 큰 역사적 세계가 모두 그 사례 안에 반영되어 있다."
가브리엘에게 조현병은 개인적인 고통이 아니었다. 그는 역사 속에서 광기의 사례를 발견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를 파악했다.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선택했다. 그의 이미지에 함축된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의 아버지가 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으리라. 그렇게 조현병과 더불어 예술의 언어적 특성과 효과에 대해서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멘탈 트래블러>는 정신 장애가 있는 이와 그의 삶을 지속시키기위해 함께 노력한 가족의 이야기다. 비록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자신의 정신과 투쟁하던 시간의 결과물들은 살아남았다.책을 읽는 내내 한국에서 정신 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과 가족들을 떠올렸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에겐 스스로를 이해할 기회와 시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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