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숲속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
김영희 지음 / 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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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속 몇 미터나 걸을 수 있을까? 100미터? 200미터? 추측건대 하루종일 걷는다 해도 이 골짜기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올해부터 식물 수집을 시작했다. 나의 식물 수집은 집 근처 작은 숲을 걸으며 식물의 이름을 알아가는 것, 그 식물의 꽃과 열매와 변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위치를 기억해두는 일.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식물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과 무심히 지나치던 나무와 풀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안다고 생각했던 존재를 새로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몇 걸음 걸을 때마다 쭈그려앉아 주변을 뒤지며 남들보다 훨씬 느리게 숲을 통과하는 날들을 보낸 나에게 책 속의 저 문장은 인상깊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매력적이다.<가끔은 숲속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는 어린 시절부터 풀과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즐기며 숲에서 걷는 것을 좋아하던 작가의 편안한 에세이다. 천천히 걷고 주변을 둘러보고 남들보다 더 많은 풍경을 기억에 담고 풀어내는 사람의 이야기. 숲 가까이에서 숲의 변화를 눈치채며 자란 작가의 예민하고 따뜻한 시선과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내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숲속에서 비목나무는 특별하지도 않은 흔한 나무이다. 그러나 내가 비목나무를 모를 때 이 숲에 비목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었다."
늘 지나던 초록색 길에서 이름을 찾기 시작하면 풍경이 달라진다.무심히 지나치는 풀들과 그늘을 드리운 무성한 나무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들 투성이라 마치 낯이 익지만 이름도 모르고 지나치는 타인과도 같다. 그들이 궁금하고 알고 싶어진다.

이야기 속의  꽃과 풀과 나무들이 정리된 책 뒷부분의 사진들을 찾아보며, 더위 때문에 한동안 멈췄던 숲산책이 하고 싶어졌다.숲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작가님과 함께 숲산책을 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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