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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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었다.

장르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장르적 구성에 치우친 나머지 문학적 서사가 약하기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스테리 장르가 가져야할 장르적 구성과 문학적 서사가 매우 훌륭했다. 작가의 데뷔작인 <콘크리트>를 읽어보지 않았으나 벌써부터 그 내용이 기대된다.

600페이지의 분량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가져오려는지 예상하지 못하도록 곳곳에 등장하는 인물의 서사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의 서사를 따라가다가, 어느새 소설 속 묵진의 비릿한 항구 도시를 헤매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넷플릭스나 OCN 수사드라마로 만들어도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 시리즈 물 특유의, 다음 회가 궁금해지는 마지막 장면을 흘려놓을 법한 장치들이 소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끊임없이 등장한다.

다만, 교정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는지 곳곳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잘못표기된 부분들이 눈에 띄는 것이 흠이라면 흠. 이것을 빼고 본다면 올해 읽은 소설 중에서 재미로만 따진다면 최고의 소설이었다할 수 있겠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땅을 파고 있었다. 묵묵히. 젖은 흙에 삽을 꽂아 한 덩이를 떼내고, 다시 한 삽. 다시 한 삽.

..... 지아는 메스꺼운 두통과 함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냉기가 혈관을 휘젖고 입술 밖으로 빠져나갔다. p127

19년만에 의식을 되찾은 염지아. 땅을 파고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된 지아는 자신의 또다른 인격인 윤혜수의 19년간의 행적을 쫓게되고, 선악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인물들과 얽힌 복잡한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간다.

이런 소설들은 긴 말이 필요없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시작된 비극의 결말이 어디를 향할지 궁금하다면, 모두 묵진행 버스에 오르길!

어둠 속에서 누군가 땅을 파고 있었다. 묵묵히. 젖은 흙에 삽을 꽂아 한 덩이를 떼내고, 다시 한 삽. 다시 한 삽.

..... 지아는 메스꺼운 두통과 함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냉기가 혈관을 휘젖고 입술 밖으로 빠져나갔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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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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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페이지의 분량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가져오려는지 예상하지 못하도록 곳곳에 등장하는 인물의 서사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의 서사를 따라가다가, 어느새 소설 속 묵진의 비릿한 항구 도시를 헤매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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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
토마 피케티 지음, 이민주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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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심화되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단순히 부동산 규제와 소득세율 같은 직접적인 대책만으로 해결이 될까? 피케티는 이러한 물음에 '새로운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 대안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를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공산주의 경제하의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민주적이고 친환경적이며 다양한 문화가 혼종되어 있고 여성사상주의를 담은 새로운 체제로써의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토마 피케티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간 기고해온 칼럼을 엮은 책이 왜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읽히는 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식민지배를 벗어난지 7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겉으로 보이는 풍요는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개인들은 점점 소외되어 간다. 능력본위의 자본주의는 사회의 구성원들을 각자도생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개인간 단절로 연대의 힘을 잃은 사회는 결국 무너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을 고민하는데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이제는 없다.

내부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허황된 서사를 동반하는 건 어떤 사회에서든 필요한 일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능력 본위의 서사가 통한다. 즉, 동등한 기회를 지닌 상태에서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발생하는 근대사회의 불평등은 정당하다는 논리다. 다만 당국이 말하는 능력주의와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는 게 문제다. - P213

사회적인 불평등을 전반적으로 강력하게 통제하는 조치들 없이 기후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건 이제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규모를 볼 때 에너지 조절 정책을 추구한다는 건 헛된 소망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선 탄소배출이 가장 부유한 계층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 P304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전례는 1918년에서 1920년 사이에 벌어진 스폐인독감 사태다. 우리는 당시 전염병이 스폐인에서만 발생했던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시 세계 인구의 2%에 달하는 희생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다. 호적 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 연구자들은 2%라는 평균 사망률 뒤에 엄청난 불균형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0.5에서 1%의 사망율을 보인 반면 인도네시아와 남아프리카에서는 3% 정도였고, 인도에서는 5%를 넘겼다. - P360

과거의 불의에 대한 배상 문제를 둘러싼 까다롭지만 꼭 필요한 토론을 넘어 우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의 폐해로부터 벗어나려면 경제체제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불평등 축소라는 가치가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하며, 모두가 교육을 받거나 일자리를 얻거나 자산을 소유하는 데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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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
토마 피케티 지음, 이민주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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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심화되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단순히 부동산 규제와 소득세율 같은 직접적인 대책만으로 해결이 될까? 피케티는 이러한 물음에 ‘새로운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 대안이 바로 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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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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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지능이 개보다 높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채, 혹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로 금요일날이면 오천원에 냉동삼겹살을 무한제공하는 식당에 갔고, 가끔은 칠천원짜리 매콤한 제육볶음을 즐겼다.

겨우 6개월의 짧은 생을 살다가는 돼지들덕에, 무한 리필 삼겹살과 칠천원짜리 제육볶음이 가능했다. 99퍼센트의 돼지들은 도축장에 끌려가는 날 생의 처음으로 햇볕을 본다. 돈사들은 돼지의 삶보다는 생산성과 효율에 맞춰 창문없는 축사로 지어지기 때문이다.

돼지를 흙에서 기르고 싶었다. 우리나라 돼지의 99퍼센트는 평생 흙을 밟아보지 못한다. 사방이 막힌 시멘트 방에서 분말 사료만 먹으며 6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산다. 우리 법은 동물을 흙에서 기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동물의 똥오줌이 지하수나 하천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인간이 돼지를 길들인 1만년의 세월 동안 인간과 가축, 자연 사이에 오염은 없었다. 오염은 동물을 과도하게 밀집시켜 키우면서 생겨났다. 축사의 돼지는 자신들이 배설한 분뇨의 늪 위에 설치된 발판에서 서서, 고농도의 암모니아 가스와 분뇨 먼지 속에서 살아간다. 겨우 6개월을 살 뿐인데도 도축 시 반 이상이 폐 질환을 갖고 있다. p34

축산업과 낙농업의 이면에는 규모화된 산업으로서의, 인간들을 위해 소비되는 제품이 되기 위해 희생되는 수 많은 동물들이 있다. 정해진 생산량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가축은 불량품이 되고, 그 자리엔 어리고 건강한 동물로 대체된다.

지금의 동물은 경제 논리 안에 있다. 이 논리에 맞춰 인간은 동물을 살이 빨리 찌거나, 알을 많이 낳거나, 젖이 많이 나오는 품종으로 개량한다. 기준에 맞지 않는 동물은 불량품이다. 꼬리와 송곳니, 뿔과 부리를 자르고 거세를 한다. 햇볕을 쬐거나 흙을 밟거나 기지개 한번 제대로 켜지 못하는 틀 안에서 산다. 동물은 인간에게 값싼 고기만 제공하면 되는 공산품일까? 살아 있는 기쁨을 누릴 필요가 없는 기계일까? 이것을 그저 동물권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을까? p111

인간은 오랜 시간 수렵과 농경으로 삶을 이어왔다. 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시절에는 먹을 것이 없어 기르던 동물을 잡아먹기도 했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수렵으로 생을 이어갔다. 지구라는 생태계에서 서로 다른 종(種)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은 자연의 섭리였다. 그런데 자연의 섭리로 여겼던 가축의 사육이 언제부턴가 이윤의 대상이 되었다. 반려동물처럼 정을 나누는 관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집에서 기른다는 의미의 가축(家畜)이 인간과 나누었던 교감이 더는 없어졌다.

공장식 축산이 최악의 동물 학대라는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권이 아니라 인간 윤리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가축은 우리 사회의 이면이고 우리 자신이다. 생명에 대한 감각을 읽은 것,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185

내가 먹다 남긴 고기 한조각, 우유 한모금이 어느 생명체의 희생으로 만들어졌음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다. 바로 인지부조화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도 고기를 구워 먹으며, 내가 먹는 고기와 반려동물은 다르다고 애써 외면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고, 대다수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 지구의 환경이, 생태계가 망가져가고 있다.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잉생산과 낭비로부터 지구를 지켜내고자 한다면 육식을 줄이는 것 피할 수 없는 방향이 아닐까.

모두가 함께 고민을 해야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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