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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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지능이 개보다 높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채, 혹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로 금요일날이면 오천원에 냉동삼겹살을 무한제공하는 식당에 갔고, 가끔은 칠천원짜리 매콤한 제육볶음을 즐겼다.

겨우 6개월의 짧은 생을 살다가는 돼지들덕에, 무한 리필 삼겹살과 칠천원짜리 제육볶음이 가능했다. 99퍼센트의 돼지들은 도축장에 끌려가는 날 생의 처음으로 햇볕을 본다. 돈사들은 돼지의 삶보다는 생산성과 효율에 맞춰 창문없는 축사로 지어지기 때문이다.

돼지를 흙에서 기르고 싶었다. 우리나라 돼지의 99퍼센트는 평생 흙을 밟아보지 못한다. 사방이 막힌 시멘트 방에서 분말 사료만 먹으며 6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산다. 우리 법은 동물을 흙에서 기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동물의 똥오줌이 지하수나 하천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인간이 돼지를 길들인 1만년의 세월 동안 인간과 가축, 자연 사이에 오염은 없었다. 오염은 동물을 과도하게 밀집시켜 키우면서 생겨났다. 축사의 돼지는 자신들이 배설한 분뇨의 늪 위에 설치된 발판에서 서서, 고농도의 암모니아 가스와 분뇨 먼지 속에서 살아간다. 겨우 6개월을 살 뿐인데도 도축 시 반 이상이 폐 질환을 갖고 있다. p34

축산업과 낙농업의 이면에는 규모화된 산업으로서의, 인간들을 위해 소비되는 제품이 되기 위해 희생되는 수 많은 동물들이 있다. 정해진 생산량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가축은 불량품이 되고, 그 자리엔 어리고 건강한 동물로 대체된다.

지금의 동물은 경제 논리 안에 있다. 이 논리에 맞춰 인간은 동물을 살이 빨리 찌거나, 알을 많이 낳거나, 젖이 많이 나오는 품종으로 개량한다. 기준에 맞지 않는 동물은 불량품이다. 꼬리와 송곳니, 뿔과 부리를 자르고 거세를 한다. 햇볕을 쬐거나 흙을 밟거나 기지개 한번 제대로 켜지 못하는 틀 안에서 산다. 동물은 인간에게 값싼 고기만 제공하면 되는 공산품일까? 살아 있는 기쁨을 누릴 필요가 없는 기계일까? 이것을 그저 동물권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을까? p111

인간은 오랜 시간 수렵과 농경으로 삶을 이어왔다. 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시절에는 먹을 것이 없어 기르던 동물을 잡아먹기도 했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수렵으로 생을 이어갔다. 지구라는 생태계에서 서로 다른 종(種)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은 자연의 섭리였다. 그런데 자연의 섭리로 여겼던 가축의 사육이 언제부턴가 이윤의 대상이 되었다. 반려동물처럼 정을 나누는 관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집에서 기른다는 의미의 가축(家畜)이 인간과 나누었던 교감이 더는 없어졌다.

공장식 축산이 최악의 동물 학대라는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권이 아니라 인간 윤리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가축은 우리 사회의 이면이고 우리 자신이다. 생명에 대한 감각을 읽은 것,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185

내가 먹다 남긴 고기 한조각, 우유 한모금이 어느 생명체의 희생으로 만들어졌음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다. 바로 인지부조화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도 고기를 구워 먹으며, 내가 먹는 고기와 반려동물은 다르다고 애써 외면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고, 대다수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 지구의 환경이, 생태계가 망가져가고 있다.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잉생산과 낭비로부터 지구를 지켜내고자 한다면 육식을 줄이는 것 피할 수 없는 방향이 아닐까.

모두가 함께 고민을 해야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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