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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 남인숙의 여자마음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4월
평점 :

나이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한 살씩 증가하는 것이니 비교적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유년시절 청년 시절을 지날 때만 해도 사람 나이 마흔이라고 하면 그 나이가
매우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런데 정작 내 나이가 마흔이 되니 그 연령은 늙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젊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마흔이 되기 전에는 이 연령 때의 나이라면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통달한 사람이라고 여길 만큼
모든 면에서 넓은 시야를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인생 목표의 절반 이상은 이루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인생 선배들의 연륜이란 것은 본받을 점도 많고 그들은 이미 일찍이 철이
들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정작 내 나이 사십 대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상당 부분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 당혹스럽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수록 가까이 찾아오는
불안감이다.
아니 상실감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집안에만 있어서 그런 것일까?
우리가 학습한 것처럼 예전 우리 어머니들께서 살아온 삶이란
것이
가족,
그리고 자녀에 대한 헌신이어서 남편이나 자녀들의
성장을 확인하며 반대로 찾아오는 상실감에
우울하고 고독한 중년 부인들의 고뇌를 그렸던 영화 장면이
연상된다.
이 책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란 제목만 보면 뭐지?
한께 살고 있는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뭔가 비장한 선언을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 속으로 들어갈수록
나이 듦이 편안하고 일상적이며 공감할 여지가 많은 책이라는 것에
안도했고
공공장소에서도 책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이따금씩 웃음을 웃게 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시선을 다른데 두었다면 오해받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이 안정모드로 전환되고 나니 이제는 학창시절 그 꽃 같은 계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그립다.
그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떤 모양으로 살아갈지.....
너무 가정생활에 충실하느라 좋아하던 친구들도 만날 수
없었다니...
그래서 이웃에 있는 사람들과 편하게 지내고 있는데
저자가 내 생활의 단면을 잘 정리해 주는 대목이 있다.
우정이란?
친구란?
이 단어들에 대해 나름의 정리를 내려보겠다고 했던
때가 있었는데...
남인숙 작가가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성인이 되고 꽤 철이 들고 나서야 나는 친구라는 것이 고통을 참아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언제부터인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게 생각되어 일주일에 몇 번은
지하철을 이용한다.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은 상황이라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가끔은 나이 먹는 것이 두렵게 여겨진다.

거북한 모습을 떨쳐내려 애쓰겠지만 혹시 미래의 내 모습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겉 세포만 노화되는 것이 아니라 신경회로
그리고 뇌의 기능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 계신 친정엄마의 하루하루 달라지는 상태와 모습을 보며 그곳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나이 먹어서 결국이 이런 모습이라면 하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다.
나이는 나만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
가끔 튀어나오려고 하는 오지랖이라는 것을 억누르며 자신을
다독거렸는데....
알 수 없는 미래,
불안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저자의 나이 듦에 대한 생활의 모습들을 보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개인적인 일인 것 같은데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사회적은
경향이라고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시대와 우리가 살아온 시대 그리고 지금 처한 시대적인 상황이
다르다.
근면하고 인내하며 살아야 했던 시대에 태어났고,
그때는 불편을 감수하고 남을
배려했었다.
그러나 현대는 어떤가?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다.
그러니 어른 된 우리가 자라나는 젊은이들을 보고 이해하는 것도 예전과는
차이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올바른 것이라고 지적질 하다가는 어떤 변을 당할지도 모르는 세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생활수칙처럼 되었다.

예전 노인들은 대중교통 안에서 자리를 양보해 드리면 극구 사양하거나
미안함이 얼굴에서 보였었는데...
요즘 어른들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자신들이 먼저 다가가서 양보하지 않는다고 기분 나쁜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도 적잖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노약자 지정석을 만들었던 것 같은데...
그분들은 왜 다른 좌석에 앉으려는 것일까?
노인으로 분류되는 것은 싫은 것인가 보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나는 나중에 이렇게 하지 말자고...
친구가 필요한 나이 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나이 듦으로 불안하고 위축되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좋은 지침과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자존감이 결여된 뻔뻔함으로 ‘진상’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이 들어가는 이들을 한꺼번에 욕보이는 중년들이
있는데,
아니 사실은 많은데,
그런 이들 때문에 나이 드는 게 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좋은 뻔뻔함은 오히려 멋스럽고 품위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한국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일을 오글거리고 형식적인 매너라고 부끄러워하지만 그 수줍음을 이기고 매너를 지키는 사람은 세련되고 배려 깊어
보인다.
좋은 뻔뻔함을 수치를 모르는 것과 혼동하면 안
된다.
그건 나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저 사람됨을
잃어가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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