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 말씀으로 돌아갈 용기
김관선 지음 / 두란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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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년의 어려움은 굳이 멀리할 일이 아니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어렸을 땐 왜 어려움을 자처하라는 말인지 의아했었는데요. 나이 들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 되어보니 너무 풍족해서 부족함을 모르고 살 경우 생활에서 감사를 찾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민족이 수난을 당하던 시절에도 신앙의 위인을 배출한 산정현교회를 직접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산정현 교회를 시무하는 김관선 목사님은 이 시대의 예배자들을 걱정하며 교회의 참된 위상을 확립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리셋을 발간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의 신앙생활이 핵심을 벗어난 것은 없는지 성찰해보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서 전반적인 부분들을 리셋할 수 있게 도움을 줍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성경구절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 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37:25-26)’입니다.

고 주기철 목사님의 부인인 오정모 사모님이 유방암을 선고받고 수술을 앞 둔 시점에서 인민군들이 찾아와 인민 화폐와 지주들에게서 빼앗은 집과 땅문서 그리고 김일성 표창장을 가지고 와서 전달하려고 할 때, 그들이 내민 것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어려운 형편에 자칫 서운해 할지모를 장남에게 직접 읽어준 말씀구절인데요. 믿는 자의 유산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은혜이며 의인의 자손이 걸식함을 당하지 않는다는 약속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큰 수술을 앞 둔 시점이라 한 푼이 새로울 때, 마치 기도 응답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을 기회를 오정모 사모님은 무엇이 선인지 분별하고 뿌리쳤던 것이지요. 저희 집안에서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어 할 때 시아버님께서 이 성경 구절을 강조하시곤 했던 기억에 너무나 은혜가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생활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소망이 되고 위안이 되었던 성경 말씀이었거든요. 하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 바로 예배가 먼저인지 봉사가 먼저인지 헷갈린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 책에서는 예배가 당연히 먼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럴 때 봉사하는 자리보다 늘 예배의 자리를 찾았던 저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가끔 찬양예배 대신 교회 행사를 진행하는 교회들이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는데요. 봉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라고 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거역하기도 난감할 것 같아요. 일단 하나님께 정한 시간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교인들의 바쁜 스케줄을 고려하여 교회의 예배시간이 바뀌는 것을 반대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처음 믿음을 화복하는 역사가 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 되다보니 자녀의 거울이 되어야 할 부모의 행동으로 적합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성보다는 혈기가 먼저 올라올 때 자제심을 잃고 그만 실수하게 된다는 것....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렇다고 내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데 구경만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본문에서 저자는 불이익을 받더라도 바른 말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선함임을 일깨워 줍니다. 항상 주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우리의 일상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압니다. 남들의 시선이 따가워서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무엇이 선인지 알면서 잠자코 있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선을 분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인지 고민될 때, 이 책에 소개된 본문을 참고하면 행할 바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에게도 착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착함은 하나님 보시기에 착함입니다. 악을 동조한 대가로 사람들이 나를 착하다고 하는 것은 착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착함은 악을 악이라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더라도 바른말을 해주는 것이 착함입니다. 그리고 바른말을 하는 이유가 내가 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P. 71 

 

이렇듯 이 책 리셋에서는 일일이 누가 알려주지 않았던 일들까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행해야 할지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시설이 편리해지다보니 이젠 성경을 지참하지 않는 교인들도 상당수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자라는 모터 무척 좋지만 일단은 성경이 주일날만이라도 내 손안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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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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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체면보다 개성을 중요시하는 세상이 열렸다.

선인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체면이나 전통이 아닌 남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배짱과 명분을 찾는다고 해야 할까?

공동체적인 것에서 지극히 사적인 색채가 짙어진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마다 삶을 유지시키는 신조가 있고 가문마다 가훈이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같은 환경에서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세 자매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이 책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생소한 이야기 같고 이질감을 일게 하지만 이 세대가 갖는 결혼에 대한 가치와 현재 모습을 그린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같은 말이라고 해도 말하는 사람의 어감과 어조에 따라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전적으로 이야기에 돌입하기 전, 한 집안의 가훈이 잠시 스쳐간다.

이누야마 집안에는 가훈이 있다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그때를 모르니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라고.

이 가훈의 의미를 세 자매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녀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신조 삼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자매가 살아가는 모습이 이어진다.

 

폭력 남편을 견디며 살아가는 큰 딸, 가정주부 아사코,

사랑의 존재 유무를 떠나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폭력인데,

매일매일을 불안에 떨면서도 습관처럼 반복되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아사코의 모습이 매우 안타깝다.

 

둘째 딸, 하루코는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다.

꽤 괜찮은 남자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그녀가 남자에게 원하는 것은 결혼이 아닌 그저 사랑일 뿐이다.

그녀의 삶은 열애 모드.... 매일 열애 중인 하루코다.

 

셋째 딸, 이쿠코는 현모양처를 꿈꾸지만,

그녀는 한 남자와 하룻밤 자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감정이나 성적인 욕구에 너무나도 솔직하고 과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생일사는 사람에게 정한 불변의 법칙이다. 때문에 단 한번 태어나고 죽는 삶에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최고가 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었다. 반면에 또 한 부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기에 고민 없이 살겠다며 결과나 행동에 대한 책임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좋을데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적잖게 당황된다. 어쨌든 각자 삶의 선택은 본인들이 하는 것이니까....

고민일랑 훌훌 날려버리고 인생은 그냥 즐겁게 사는 거야.....

 

현실성이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머리 아픈 고민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표현은 달콤한 유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처음 받고 펼쳐 읽으면서 뭐 이런 책도 다 있네...라고 생각했었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과연 그럴까? 이미 세상은 우리가 인정하건 하기 싫건 이 책의 저자 에코니 가오리가 그린 이 책의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동물과 구분되는 것이 있다고 우리는 배우고 학습했다. 인간적인 것? 아니면 본능에 충실 한 것? 이 둘 중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순전히 각자의 몫이다.

 

세상 시선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살자는 표현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할 것인가?

이누야마 집안의 세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나 연애 그리고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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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의 내적 전쟁 - 죄의 유혹을 극복하고 세상을 이기는 힘
제이 E. 아담스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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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적 전쟁?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두 개의 세력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피조물 사탄의 세력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좀 더 숙고해야 할 내용인 것 같다.

 

 

이 책 죄와의 내적 전쟁의 저자는 회심한 후부터 그리스도인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의 목차를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저자가 어떤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짐작게 한다.

매일 매 순간이 선택의 상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상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취할 자세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초에 세상은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던 세상이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아담과 하와로 인해 신의 형상이 깨어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죄와의 내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가.

 

 

전쟁이 왜 일어난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쟁이란 말이 왜 나왔을까?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이 인간의 범죄 이후

사탄의 공격을 받아야 하고 끊임없이 죄와의 내적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성경에서는 세상의 본질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우리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주관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외면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예수님께서 이기신 싸움이기에...

그리스도인은 불같은 고난을 참고 이기면 영원한 영광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오늘의 고난을 지혜롭게 견딜 수 있는 소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강력한 세력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성경을 상고하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책을 찾아 읽으면서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생활이 이어져야 함을 확인케 해주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창세기 315절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전쟁 선포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책은 책의 중간중간에 개인적으로 갈등을 겪어야 했던 사례를 소개하고

갈등의 순간에 대하여 상황을 제시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어

좀 더 핵심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앙적, 그리고 개인적인 갈등 상황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 외에 그 어느 누구도 판단해서는 안된다.

어떤 의도에서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일의 궁극적인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임을 기억한다면

우리 각자는 남을 탓해서도 안 되고 누구를 정죄해서도 안 된다.

다만 우리 각 자가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할 존재임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이 책 죄와의 내적 전쟁

어느 한순간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각자가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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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끝에서 믿음을 찾다 - 이성은 왜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가?
라비 재커라이어스 지음, 송동민 옮김 / 에센티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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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인가 아니면 유신론인가?

이 팽팽한 대립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끝날까라는 궁금증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과학적으로 그리고 수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기독교가 옳은 종교인지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이니 어떻게든 준비하면 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질문이나 도전에 시원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불편함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면 피하고 싶을 정도로

기독교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 함구하는 경향을 모른다 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서서 답답한 마음을 시원케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21세기 최고의 기독교 석학 라비 재커라이어스가 이번에는 이성의 끝에서 믿음을 찾다라는 책으로

무신론의 끈질기고 무모한 공격에 답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무신론의 도덕적, 종교적, 그리고 학문적, , 본질 등 무수히 많은 거침없는 질문과 의문점에 대해

한 가지씩 접근하여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를 설명한다.

어떻게든 하나님을 공격하고 불신을 조장하려는 무신론의 주장에

라비 재커라이어스의 대응이 궁금하다.

 

이 책 이성의 끝에서 믿음을 찾다라는 책을 통해 응답을 쓰는 ''에 대해 저자는 소개한다.

1946년 인도에서 출생한 라비 재커라이어스

힌두교 브라만 계급이었던 그가 어떻게 기독교 변증가가 되어 활약하게 되었는지....

저자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가 찾고자 했던 하나님을 확실하게 체험하고

기독교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고 믿게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라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확립이 있어야 그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의 베스트셀러인

샘 해리스라는 사람이 쓴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를 본 후

비록 가상의 것이지만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고 여기고

이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한 질문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해리스의 주장에 그의 응답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어느 특정인을 위한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더더욱 이 책을 읽고 무신론이 어떤 도전장을 내미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만반의 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상생활 가운데 우리가 가끔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천재지변이나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무신론은 이렇게 공격한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냐는...

왜 고통의 상황을 내버려 두는가라는 유의 말을 하곤 한다.

항상 그리스도인들은 참아야 하고 바르게 행동해야 하지만 자신들은 어떻게 행동해도 된다는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문화적으로 학문적으로 종교적으로 무수한 방편으로 공격하는 무신론의 무례함에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성경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하지만

해석은 각자 입장에 맞게 바꾸는 무신론자들이다.

 

언제나 성경이 먼저라는 사실....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각자 어떻게 행할 바를 확립해야 한다.

너무 난해한 질문들에 대해 함구했던 부분이 있다면...

혹시 친척 중에 있을지도 모를 무신론자에게 이제는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성경이 먼저 적용되어야 함을 잊지 말고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 책이성의 끝에서 믿음을 찾다을 참고하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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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 남인숙의 여자마음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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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한 살씩 증가하는 것이니 비교적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유년시절 청년 시절을 지날 때만 해도 사람 나이 마흔이라고 하면 그 나이가 매우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런데 정작 내 나이가 마흔이 되니 그 연령은 늙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젊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마흔이 되기 전에는 이 연령 때의 나이라면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통달한 사람이라고 여길 만큼

모든 면에서 넓은 시야를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인생 목표의 절반 이상은 이루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인생 선배들의 연륜이란 것은 본받을 점도 많고 그들은 이미 일찍이 철이 들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정작 내 나이 사십 대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상당 부분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 당혹스럽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수록 가까이 찾아오는 불안감이다.

아니 상실감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집안에만 있어서 그런 것일까?

우리가 학습한 것처럼 예전 우리 어머니들께서 살아온 삶이란 것이

가족, 그리고 자녀에 대한 헌신이어서 남편이나 자녀들의 성장을 확인하며 반대로 찾아오는 상실감에

우울하고 고독한 중년 부인들의 고뇌를 그렸던 영화 장면이 연상된다.

이 책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란 제목만 보면 뭐지?

한께 살고 있는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뭔가 비장한 선언을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 속으로 들어갈수록

나이 듦이 편안하고 일상적이며 공감할 여지가 많은 책이라는 것에 안도했고

공공장소에서도 책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이따금씩 웃음을 웃게 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시선을 다른데 두었다면 오해받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이 안정모드로 전환되고 나니 이제는 학창시절 그 꽃 같은 계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그립다.

그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떤 모양으로 살아갈지.....

너무 가정생활에 충실하느라 좋아하던 친구들도 만날 수 없었다니...

그래서 이웃에 있는 사람들과 편하게 지내고 있는데

저자가 내 생활의 단면을 잘 정리해 주는 대목이 있다.

우정이란? 친구란? 이 단어들에 대해 나름의 정리를 내려보겠다고 했던 때가 있었는데...

남인숙 작가가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성인이 되고 꽤 철이 들고 나서야 나는 친구라는 것이 고통을 참아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언제부터인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게 생각되어 일주일에 몇 번은 지하철을 이용한다.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은 상황이라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가끔은 나이 먹는 것이 두렵게 여겨진다.

 

 

거북한 모습을 떨쳐내려 애쓰겠지만 혹시 미래의 내 모습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겉 세포만 노화되는 것이 아니라 신경회로

그리고 뇌의 기능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 계신 친정엄마의 하루하루 달라지는 상태와 모습을 보며 그곳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나이 먹어서 결국이 이런 모습이라면 하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다.

나이는 나만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

가끔 튀어나오려고 하는 오지랖이라는 것을 억누르며 자신을 다독거렸는데....

알 수 없는 미래, 불안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저자의 나이 듦에 대한 생활의 모습들을 보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개인적인 일인 것 같은데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사회적은 경향이라고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시대와 우리가 살아온 시대 그리고 지금 처한 시대적인 상황이 다르다.

근면하고 인내하며 살아야 했던 시대에 태어났고, 그때는 불편을 감수하고 남을 배려했었다.

그러나 현대는 어떤가?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다.

그러니 어른 된 우리가 자라나는 젊은이들을 보고 이해하는 것도 예전과는 차이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올바른 것이라고 지적질 하다가는 어떤 변을 당할지도 모르는 세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생활수칙처럼 되었다.

 

 

예전 노인들은 대중교통 안에서 자리를 양보해 드리면 극구 사양하거나 미안함이 얼굴에서 보였었는데...

요즘 어른들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자신들이 먼저 다가가서 양보하지 않는다고 기분 나쁜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도 적잖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노약자 지정석을 만들었던 것 같은데...

그분들은 왜 다른 좌석에 앉으려는 것일까?

노인으로 분류되는 것은 싫은 것인가 보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나는 나중에 이렇게 하지 말자고...

 

친구가 필요한 나이 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나이 듦으로 불안하고 위축되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좋은 지침과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자존감이 결여된 뻔뻔함으로 진상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이 들어가는 이들을 한꺼번에 욕보이는 중년들이 있는데, 아니 사실은 많은데, 그런 이들 때문에 나이 드는 게 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좋은 뻔뻔함은 오히려 멋스럽고 품위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한국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일을 오글거리고 형식적인 매너라고 부끄러워하지만 그 수줍음을 이기고 매너를 지키는 사람은 세련되고 배려 깊어 보인다. 좋은 뻔뻔함을 수치를 모르는 것과 혼동하면 안 된다. 그건 나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저 사람됨을 잃어가는 것일 뿐이다.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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