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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침묵을 깨고 독자 앞에 나타난
공지영 작가가 이번엔 「해리」라는 책으로
찾아왔다.
몇 년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놀람과 공포의 도가니로 안내했던 일을 잊을 수 없다.
소외된 지역에서
있었던 일,
다른 누구보다도
관심과 보호가 필요했던 대상을 상대로 장애인 학교에서 자행되었던 성폭력의 실체,
그것은 안개의
도시 무진에 있었던 일이 아닌가.
작가는 어딘지
익숙한 느낌의 도시,
안개가 자욱한
무진에서 이번엔 어떠한 현실의 부조리를 묘사해낼지 이 책 「해리」의 내용에 궁금증이
증폭된다.
20대 후반쯤 산악회를 따라 북한산 어느
지점으로 등반을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이른 아침
강가에 피어오르던 안개를 보며 참 푸근하단 생각을 했었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줬던 일을 기억한다.
알록달록한
자연의 색들의 펼쳐지는 곳에서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멋진 일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벅찼던 일이 있다.
적어도 그땐
어떤 일들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안개를 떠올리진 않았었는데,
공지영 작가의
무진이란 도시에서 피어나는 안갯속에서는 어떤 일이고 벌여서는 안 되지만,
또한 베일에
가릴만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악은 밝은
빛보다는 어둠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을의 모든 새벽마다 안개는 무진(霧津)의
바다로부터 육지로 상륙했다.
모든
아침들은 해가 떠오르기 전에 빛을 은폐하는 안개에 둘러싸였다.
안개는
모든 빛을 빛으로부터,
모든
사물을 사물로부터,
모든
풍경을 풍경으로부터 차단했다.
해가
아주 높이 솟아오르고 안개의 입자들이 하나하나 데워져 수증기로 휘발되기까지는 해조차도 제빛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날
새벽안개가 바다로부터 무진으로 상륙을 시작했을 때 그 남자는 어둠 속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팽개쳐져 있었다.
안개는
마치 이 지상에서는 천적을 가지지 못한 희고 긴 털을 가진 난폭한 짐승처럼,
혹은
오래되고 버려진 식민지에 상륙하는 점령군처럼 산만하고 무례하게 밀려들었다.
그
하얀 털에 점령당하듯 길이 사라지고 건물이 숨을 죽이고 가로등 빛이 힘을 잃었다.
땅에
이어 하늘이 그 거대한 짐승에게 가려지고 나자 세상은 완벽하게 안개의 것이 되었다.
-14쪽
암에 걸려 수술을 앞둔 엄마 간호
때문에 자신이 태어난 무진을 찾게 된 한이나,
그녀는 작은
인터넷 신문사에 다니고 있다.
고향을 찾은
한이나는 많은 기억들을 만나는데,
어쩌면 이나가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기억을 포함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이해리를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예쁜 아이는
아니었지만 늘 미니스커트와 핫팬츠를 자주 입는 아이,
해리는
술주정뱅이 아빠와 집 나간 오빠가 있는 환경에서 배겨내야 했다.
이나가 보기에
해리 주변에서는 모든 상식이 힘을 잃었다고 생각할 정도이니 해리는 열악한 환경 탓에 어쩌면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나는 엄마가 입원해있는 무진 카톨릭
대학병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하는 사람을 마주한다.
그것은 '무진
교구 백진우 신부를 징계'하라는 내용이었으며 그 신부 때문에 딸이 죽었다는 어머니의 처절한 외침이기도 했다.
딸이 좋은
대학을 다녔다는 최별라,
그녀의 딸은 왜
죽었을까?
이명박 대통령
시절,
나꼼수의
팟캐스트를 듣고,
정봉주 의원의
팬이 되고,
시위에 쫓겨
다녔던 그녀,
무진으로 내려가
백진우 신부를 도와야 한다고 했다는데....
팽목항에 가서
노란 리본도 만들고...
그랬는데
난데없는 가출에 그것도 자살을 했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일까?
목돈을 들고나간 딸을 찾아 무진에
도착한 엄마는 가까스로 딸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백진우 신부를 찾아갔지만 그 돈은 장애인 단체에 들어간 뒤라는 말만 듣게
된다.
카톨릭 집안의
그것도 순교자 집안의 신도가 백신부를 가리켜 ‘그놈의 신부
새끼’라고
한다.
“....
슨생님
딸아이는 임신 중이었어 예.”
그러나 이미 화장을 한 뒤라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알 수 없다는 것.
또한 신부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들이 더 있다는 것도.
사건을 조사하던
한이나는 백진우 신부의 사건을 따라가면서 의외의 장소에서 이해리란 이름을 듣게 된다.
도가니의 영화와
소설을 통해 봤던 무진의 인권 센터 서유진 센터장을 만나고 사건 자료들을 접하면서 베일을 벗는 사건의 진면모,
또다시 장애를
가진 아이들,
성의 소외지대에
있는 아이들이 이해리의 봉침에 노출되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신부의 강연
이어지는 초청강사 이해리의 불법적 봉침 의료 행위가 특별대우처럼 행해진다.
더 이상한 것은
봉침을 맞아본 장애인의 경우 엄마에게 떼쓰듯 졸라서 봉침을 맞으려고 대기하는 장애인의 수가 많다는 사실이다.
신부라는 직책을 가졌기에 그 어느
누구의 의심을 사지 않고 인권을 유린했다는 사실,
엄연하게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는데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고,
침묵을 지킬수록
궁지에 몰린 피해자만 속출하는 지경이 되고 만다.
무진 시의
경찰이나 검찰은 불법적 행위에 왜 침묵만 했을까?
작가는 책의 앞부분에서 해리성 인격
장애에 대한 정의를 확인하고 스토리를 시작한다.
이따금
드라마에서도 등장하는 해리성 인격 장애,
그렇다면 해리성
인격 장애란 무엇인가?
해리성 인격 장애는 각기 다른 정체감을
지닌 인격이 한 사람 안에 둘 이상 존재하며 행동을 지배하는 증상이다.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사람이 의식 위로 올라와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억상실증이
하나 이상의 인격에 나타나며,
인격이
소동적일수록 기억상실증이 심해진다.
과거에는
‘다중 인격 장애’로 불렀으나 지금은
‘해리성 인격 장애’라고 부른다.
인격이 여러
개라는 것보다 정체감이 불안정하다는 것에 중점을 두는데 이 증상을 설명하는데 더 알맞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백과사전에서 발췌 정리한
부분을 소개한 것이다.
“백진우와
이해리.....
그들은
영혼의 쌍둥이예요.
숨
쉬는 것까지 모두가 거짓말입니다.”
-<2권>171쪽
이
사회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작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 속에 담은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품 속에서
문제시되었던 소망원의 불법 감금과 살인은 종종 가상의 세계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에게 불편한 사람들을 감금하는 시설로 등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밥그릇을 빼앗아
기름을 채우는 성직자들에 대한 고발 또한 그렇다,
이 땅에서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
그들은 현실과
부조화된 사람들이며 그들의 행동은 한 가지 이상의 정신적 병리 현상을 수반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불의를 보고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얽매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팽목항,
최순실 태블릿
PC
사건,
갑자기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내가
'도가니 사건' 시위할 때 온 나라가 광우병 시위로 난리여서 아무도 우릴 바라보지 않았어. 그런데 이제 이해리 사건에서 최순실이 온 뉴스를
덮네. ..... 악인들은 누가 보호해주는 것 같아."
서유진은
혀를 찼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이해리의 아동학대 사실을 올렸지만 별 반향이 없었다. 최순실
이슈는 이해리뿐만 아니라 소망원까지 가리는 훌륭한 커튼이었다.
-<2권>
96쪽
사람이 사는 곳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는 언제쯤이면 뿌리가 뽑히게 될까?
안개의 도시
무진에서 있었던 혼란스러운 일들이 현재 상황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선을
외치지만 매일 아침 만나는 불편한 소식들은 끝날 기미를 안 보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불편한
소식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사회에 이를 바로 알릴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통감한다.
불의를 보고
침묵할 것인지 아니면 고발할 것인가에 대하여 결단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 그들을 위해 기도할 자신이 없었다면 고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울림을 준다.
도대체
왜 악이 역사 안에서
그렇게
열매를 많이 거두는가?
그것은
“역사를
지배하는 악의 힘이 더 강력한 것도,
악이
역사에서 더 현실적이어서가 아니라
선이
전통을 단지 보수적인 몽매와 관습으로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선이
삶에 대한 시험의 극복을
삶의
한복판에서가 아니라 그 주변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알프레드
델프의 「역사와
인간 중에서~」
-<2권>
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