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황경신 지음, 김원 사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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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신간 소식을 들으면 맨발로 달려가 만나고 싶었던 황경신 작가의 신간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를 만났다. 이번에 만나게 될 책 내용이 궁금하여 펼친 곳에는 작가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사색이란 단어를 함축한 가을이라서 그런 것일까? 책 속에서 목격되는 감성적인 사진들과 작가가 알알이 엮어 놓은 수공예를 만나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어쩜 보이지 않고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속내를 마치 그림처럼 그려내는 것일까 신기하기만 하다. 책 페이지가 더해질수록 사랑이 눈물 나도록 아름답기까지 하게 전해진다.

사랑, 이별, 기다림, 그리고 기도...

사랑, 그 무모한 이름만으로 갈 수 없는 길들을 위하여란 대목에선 마음이 먹먹하여지더라는 것.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보고 싶은데 만날 수 없다면 차라리 눈 감고 잠을 청하기도 하더라는 말이 떠오른다. 행여나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는 까닭이라고.

 

나에겐 그런 마음이 있어

흐리고 어두운 날을 골라 네게로 흘러가려는 마음

너의 따뜻한 미소에 닿으면 화들짝 놀라

무성한 꽃으로 피어나겠지만

그건 너무 아름다운 세상이어서

네게 보여줄 수가 없어

눈물을 삼키듯 마음을 삼키면

내 꿈속에 몰래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 희망들

-p. 103 <네게로 흘러가려는 마음>

 

 

생로병사, 희로애락, 인생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이 아니겠는가?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며 그 붉은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이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남들은 붉게 물든 단풍이 예쁘다고 할 때에도 그 나무의 잎사귀들이 차가운 날씨에 하나둘씩 옷을 벗을 것을 염려했던 적도, 꽁꽁 언 계곡에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만 들어도 눈시울을 적시며 숨소리를 죽여야 했던 지난 일들이 떠오른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계절을 발견하려 했고 만나려 했던 어릴 적 기억이 비록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오래된 노트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것에 반갑고 남이 봤을까 봐 새색시처럼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표현이 미숙하여 글로 그릴 수 없고, 혹시 발견한 메모에서는 누군가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것처럼 노트를 덮어야 했지만, 인생이 무엇인지 이제쯤이면 윤곽을 그릴 수 있어야 할 나이가 되어보니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뭐 남다를 게 없더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더라는 것이다.

 

황경신 작가의 특별한 마음과 감성을 만난 것 같아 더욱 친근함이 느껴지는 책,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이다. 인생들의 마음이 아픈 기억들로만 가득 차 있다면?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는 어려운 일이리라. 인간의 소중한 감정, 상처, 아픔들을 승화시켜줄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이라도 언젠가는 지나가게 마련이라는 것을 터득한다면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스피드를 요구하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살지만 때로는 느림의 미학이 있음을 행운으로 여기며 가을의 끝자락에서 무미건조해진 감성을 깨워준 조그만 책 한 권에 감사한다. 감정 다툼으로 서먹해진 남편, 그런데 책에 소개된 시가 가슴속에 잠자던 설렘을 깨운다. 공감하고 반성하며 다시 도약하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서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된다면

그 하늘은 평화롭게 푸를까

그 마음은 무엇도 거스르지 않을까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을 사랑한 게 내가 아니면

-p. 249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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