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으로 원피스를 입었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거울 앞에 서서도 내가 나를 못 알아보겠다는 거야. 4년 동안 바지를 벗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부상당한 몸이라고 누구한테 털어놓겠어? 말했다가, 나중에 직장도 못 구하면 어떡하라고. 결혼은? 우리는 물고기처럼 입을 다물었어. 전선에 나가 싸웠다는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지.(221쪽,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 우리는 과거를 숨기며 살았어. 훈장도 내놓지 못했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221쪽,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오늘의 이야기요즘 내 업을 스스로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이 커졌다. 왜 이 일을 지속해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다시 옮겨볼까. 그만두는 것은 어떤가. 자주 깊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그럴수록 아프고 슬프고 나에게 버거운 이야기들을 자주 집어들어 읽는다. 타인의 어려움을 눈 뜨고 보기로 했던 내가 그 다짐을 실천하는 것인지. "그래도 내가 이분들 보다 더 나은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깨닫고 싶은 것인지. 그 이유를 깊이 사유하고 싶은데 곱씹고 곱씹다 결국 포기한다. 더 생각하고 싶은데 자꾸 생각이 턱에 걸려 넘어진다. 문지방에 찍힌 새끼발가락처럼 아프다.
• 어쩌면 나의 조상은 수렵 채집인지도 몰랐다. ..... 오늘의 먹을거리와 머물 곳을 찾아다니며, 매일 하루를 마치 하나의 삶처럼 살아내던 이들. 스스로 서 있는 곳을 장악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을 지배하는 능력이 삶의 질을 좌우하던 시간들. 당장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살아 있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던 수만 년 역사의 주인공들. 나는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질 때면 그들을 떠올려보곤 했다. 회사 사무실에 앉아있는 영혼 없는 표정의 내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수만 년 전 내가 사는 이곳에서 누구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었을 그들과, 집 안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자전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46쪽,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양다솔)• 등 아래쪽에서 찌르르 진동하는 감각이 느껴져왔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악수를 하고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는 것만 같았다.(45쪽,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양다솔)🙏 오늘의 이야기월요일이 시작되면 걸음이 느린 금요일을 탓한다. 금요일이 되면 보폭이 넓은 주말을 원망한다. 매주 미운 마음을 쌓다 보면 시간도 흐르고 금세 새 달력을 편다. 비 오는 날 친구가 말했다. "다른 일을 해보는 게 어때." 나는 대답했다. "10년은 채워야 연금이 나온데. 나는 이제 5년 남았어." 친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커피를 홀짝홀짝 마셔댔다.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자신이 없었다. 지난 5년의 잘잘못을 따지는 한 달을 보냈다.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했던 다짐과 확신은 다시 길을 잃었다. 양다솔 작가의 글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춘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오늘의 나를 살린다. 힘들 때는 울게 하고 기쁠 때는 웃게 하는 신기한 그녀의 책이 너무 반가운 이유다.
•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된다. 이 책은 하나의 글이 문장이 되고, 그들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글과 같다. 주어와 목적어를 읽으면 서술어가 궁금해지듯이 홀린듯 읽어버렸다.(책의 앞부분은 읽으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항상 타인의 기준으로 정상 범위에 들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나는 이 책 덕분에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