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 세월호 생존학생, 청년이 되어 쓰는 다짐
유가영 지음 / 다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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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신의 벅찬 슬픔에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쓴 글.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생각하는 이의 글은 촉촉하고 단단하다.

저벅저벅 넉넉한 걸음으로 성큼 걷는 타인들을 바로 옆에 두고, 스스로 낮은 포복으로라도 조금씩 움직이기로 다짐한 사람. 작고 고된 걸음이라도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하며 ˝이제는 움직여야 한다˝ 고 다짐하는 사람. 작가는 자신의 상처를 깊이 끌어안고도 타인에게 끊임없는 기회를 주었다.

작가의 고통을 알아보고 공감하기 위해 폈던 책에서 위안을 찾은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살아내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여러 변주를 만들어 다양한 모양의 슬픔에 가닿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다가와 위로를 건네준 것처럼.

• 세월호 생존자라는 걸 말하고 상대의 반응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뭐라고 그런 말을 하며 다른 사람을 시험했나 싶기도 하지만 그때의 저는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필요했어요. 만약 상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고 날 부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곳에 존재해도 된다고 인정받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120) - P120

•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게 끝인데 노력해 봤자 뭐하나‘ 싶었고, ‘왠지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거 같아‘ 하는 불안이 항상 제 곁을 맴돌았습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들 때문에 저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쳤는지도 모릅니다.(96)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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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의 사랑 - 어느 가족 돌봄 공동체의 욕망과 붕괴의 연대기 이매진의 시선 17
김나은 지음 / 이매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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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낸 여자들의 이야기에 푹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가, 나의 엄마가 바로 떠오르니 그럴 수밖에. 책 속의 여성들과 나의 일상 속 그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독하게 삶을 견뎌냈다. 고문에 가까운 상황을 견뎌내면서도 마음껏 울지 못해 마음의 병을 오래간 지녀온 채 늙어버린 여자들. <세 여자의 사랑>의 할머니 임순이 그랬고, 엄마 도희가 그랬듯 나에게도 비슷하거나 다른 모양으로 얽힌 여자들이 있다.

<세 여자의 사랑>은 도저히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말문이 열리는 소중한 과정이 담긴 책이다. 김나은 작가는 할머니 임순과 대화를 나눈 시간과 장소 그리고 무엇을 먹었고 하는 등의 기록도 성실하게 남겨준다. 덕분에 읽는 이에게 구술 과정과 할머니 임순의 과거가 현재와 유기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마음 닫힌 이의 말을 길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평생 말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질문을 받아본 적 없는 이들의 언어는 자아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적이 없다. 대를 이어오던 것을 답습하고 인내하며 받아온 강요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며 그들은 말을 잃는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늙은 여성들은 자신의 언어를 찾아 투쟁하기에 가진 자원이 없었다. 생사 여탈권을 남성들에게 담보 잡힌 채 순치되어 노동을 강요받는다. 그렇게 짜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경우 생존하지 못한다는 것을 학습한 그들은. 몸과 머리를 욱여넣는다. 자연히 말을 잃고 생각을 빼앗긴다. 그런 그들이 ‘드디어’ 말한다는 것은 늦기 전에 ‘나’의 삶을 살아보겠다는 선언과 같다. 그 선언은 끊임없이 변주되어 여러 세대를 거친 여성들에게 흘러간다. 이제 이 이야기는 나에게 도착했다. 그리고 나의 언어가 되어 나의 늙은 여성들을 향해 흐른다.

임순은 내게 반성과 헌신을 원했고, 나는 임순의 진심과 이야기를 원했다.(41쪽)
- P41

- 한 가정이 겪어야 할 끝없는 상호 착취, 집이라는 문 안쪽에 네 명이 모여 있으려면 외면하고 참아야 하는 고통 때문이었다.(133쪽)
- P133

- "그래서 공부 안갈친 거라 허대. 나 주저앉힐려구. 배왔으믄 아주 나돌았을라나벼."(219쪽)
- P219

- 내가 고르게 해줄지는 몰르나, 헐 수만 있다믄,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나구 싶다."(246쪽)
- P246

- "네가 알아야 할 건 단 하나야. 사랑한다는 거. 할머니도, 나도, 아빠도, 모두 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 언제가 그걸 가지고 산다는 거."(258쪽)
- P258

- 상처 속에서도 뭔가를 건네는 일, 그러니까 이야기하는 행위가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탓에 내 인터뷰는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가 숨어 있었다. 나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었다.(259쪽)
- P259

-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일들은 이야기의 이면, 말로 전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진다.(263쪽)
- P263

- 정년에서 임순, 도희까지 똑똑한 여성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미친 여자’로 그 세월을 견뎌왔다.(271쪽)
- P271

- 인간의 생로병사라는 최전선을 몇 번이고 도맡아온 사람이다. 임순의 과거, 현재, 미래에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272쪽)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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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태도 - 15년 동안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운 삶의 의미
박지현 지음 / 메이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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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3일 팀이 취재한 고물상의 3일, 그중 야구르트를 마시는 할머니와 취재 중 카메라 뒤로 눈물을 훔치던 VJ가 화면에 함께 담겨있다. 2008년에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 3일, <인생 고물상-고물상 72시간>편의 한 장면이다. SNS에 돌아다니던 캡쳐본으로도 유명해진 이 장면은 어르신들의 고달픈 생활에 안타까워하는 마음들과 VJ의 눈물에 공감하는 마음들로 오랫동안 큰 관심을 받았다.

수년이 지난 후 화면 속 VJ는 책 <참 괜찮은 태도>의 박지현 작가로 나에게 다시 나타났다. 검색창에 ‘고물상 VJ 눈물’이라고 적어 넣고 결과창에 뜬 사진들을 본다. 모자를 쓰고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얼굴을 겨우 조금 떼어낸 체 급하게 눈물을 닦는 VJ. 오랜 시간이 지나도 따뜻한 마음으로 남아있는 장면 속 그녀가 쓴 글들을 만나게 되다니. 박지현 작가가 15년간 다큐멘터리 VJ와 디렉터로 일해오며 겪는 이야기가 모인 책을 앞에 두던 날, 나는 이미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열려버린 독자만큼 쉬운 상대가 또 있을까.

<참 괜찮은 태도>는 마음가짐대로 일하고, 또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의 성실한 기록이다. 직업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시작해도 막상 구질한 현실 앞에서 신념을 지키리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박지현 작가는 만났던 이들이 남겨준 이야기들을 잊지 않고 모아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나의 일이 중요한 만큼, 내가 만나는 사람의 인생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문장에서 평생 중요한게 무엇인지 잊지 않겠다는 단단한 다짐이 읽혔다.

이 책은 15년 동안의 업무일지와도 같다. 이 빼곡한 기록들이 그녀를 또 다른 15년으로 데려다줄 것 같았다. 뭔가를 써야 다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녀도 그런 마음으로 5년 동안 이 책을 잡고 쓰고 고치지 않았을까.

책을 넘기면서 눈물을 찍고 코를 훌쩍거렸다가 피식 웃었다가 감정이 이야기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했다.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을 10개로 추려보는 중 박지현 작가가 타인에게 던진 깊고 따뜻한 질문들과 놀라운 대답들의 흐름을 함께 담지 못해 아쉬웠다. 작가가 이야기 속에 끼워둔 책들의 인용 부분들도 나와 결이 맞아 읽을수록 안심되는 책이었다.

그녀는 이제 어떤 이야기들을 듣고 어떤 질문을 건네며 살아갈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오던 많은 것들에 그녀의 온기가 묻어있었다고 생각하니 허투로 보고 지나칠 수 있는 화면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루하루가 괴로운 분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억지로 힘내라고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옆에 앉아있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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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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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것도, 저것도 혼자 다 해냈어.”라고 숨 쉬듯 잘난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찾아볼 수 없는 겸손이다.

이슬아 작가의 책 <끝내주는 인생>은 나에게 ‘이슬아를 구성하고 있는 타인들’로 읽혔다. 현존하는 작가를 이루고 있는 여러겹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겉에서 보기엔 그냥 마냥 짱짱해 보이는 작가에게 타인들은 끊임없이 ‘그냥 너로 살아도 암시랑토 안해’라고 말해준다. 작가는 그들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 안에 넣어둔다. 그리울 때 언제든 꺼내보려는 듯이.

책의 부제가 ‘슬아를 살린 사람들’이라고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니 괜히 코끝이 시큰해진다. 나를 살아보고 싶게 만들어줬던, 나를 살린 사람들의 얼굴이 마구 달려든다. 내 앞에 뒤엉킨 그들은 나의 눈물을 닦아주고, 궁둥이를 팡팡 때려 달래주고, 꼭 안아주거나 먹을 것을 사서 입에 넣어준다. 나도 타인 덕분에 살고 있구나. 다시 깨닫는다.

이 책은 “나에게나 남에게나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한 나다움”은 바깥에서부터 온다고 말하는 책이다. 물론 “영원히 멋진 타인 같은 건 없을 테지만”, “우리가 좋은 이야기 속에 있었다는 사실만은 잘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슬아 작가의 귀한 타인들을 잔뜩 소개받은 지금, 갑자기 내 배에 힘이 빡 들어간다. 나도 ‘나의 타인들’에게 사랑을 한 겹 덮어주고 싶어져 마음이 급해진다.

그렇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시작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계속 달라지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싶어요."(28쪽) - P28

사랑과 용기에 취했을 때는 한 사람이라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결코 알수가 없었다.(60쪽) - P60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더 멀리 가라는, 네가 가고 싶은 곳까지 멀리멀리 가보라는 말뿐이다.(90쪽) - P90

못 본 사이 미세하게 나이 들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은 비밀 때문에 전보다 더 아름다워져 있다.(102쪽)
- P102

✏️ 사랑한다면 그 모든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부지런해지고 강해져야 해.(131쪽) - P131


✏️ 나에게나 남에게나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한 나다움,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건지 모르겠는 그 자기다움을 지니는 것이 얼마나 도달하기 힘든 경지인지 다들 안다.(133쪽)
- P133

✏️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도 어여삐 여기지도 않는채로 기억해야 할 일이란 게 있다.(136쪽)
- P136

✏️ 자신의 안팎을 오로지 혼자서 가꿔온 사람도 있을까.(137쪽)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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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친구 - 그들이 뿜어내는 빛과 그늘에 가려지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 아무튼 시리즈 57
양다솔 지음 / 위고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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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을 주는 것만큼이나 받는 것도 엄연히 능력에 속함을 그제야 알았다.(42쪽)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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