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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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과 왕자님은 결혼을 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와 “박상영 작가님은 퇴사를 했고 꿈꾸던 전업작가가 되었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야식도 안 먹어요.” 는 닮아있다. 다른 점은 공주님과 왕자님은 옛날 옛날에 죽어없어져서 그 현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우리의 박상영 작가님은 우리 옆에 현존하고 있다. 나는 두루뭉술하고 급한 동화 속 마무리보다 작가님의 살아있는 증언을 더 믿고 싶다.

물론 우리는 자주 마음먹고 그 마음을 바꿔 먹기도 하고 또 다잡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실패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안다. “다만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하루만큼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을.

당시에 나는 내가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으며, 언젠가 ‘정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62쪽)

- P62

- 그 후 나는 취직을 하고, 등단을 하고, 책도 내며 인생의 여러 성과를 이뤄냈으나, 아주 오랫동안 나 자신이 게으르고 한심하며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는, 개선되어야 할 존재라고 믿어왔다.(71쪽)

- P71


- 남을 바라보며,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시작했던 행위라고 생각했던 글쓰기가, 실은 나 자신을 향해 나 있던 길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거였다.(203쪽)

- P203


-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257쪽)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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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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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감정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좋았다. ˝추를 달 때 풍선을 기억하고, 풍선을 달 때 추를 잊지 않˝는 엄숙한과 웃음을 가뿐히 뛰어넘고 그 사이를 춤을 추며 오가는 시인의 몸짓이 좋았다.

시인은 말한다. ˝이후 저는 누구를 기다릴 때면 그 잠잠한 시선을 떠올리며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펄럭이지 말자, 다짐하면서요.˝ 나는 안다. 시인의 글을 읽은 그 누구도 펄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 좋은 펄럭임을 만끽하며 그의 책을 덮었다.

-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25쪽)
- P25

-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30쪽)
- P30

- 이후 저는 누구를 기다릴 때면 그 잠잠한 시선을 떠올리며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펄럭이지 말자, 다짐하면서요.(167쪽)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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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하루는 없다 - 아픈 몸과 성장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희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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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질병으로 스스로를 탓하고 미워하는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에세이 <당연한 하루는 없다>는 작가 희우의 루푸스 신염을 투병하며 써 내려 묵묵한 기록이다. 그녀는 자신을 "울면서도 뚜벅뚜벅 어두운 터널을 걷는 사람"이라고 작가 소개에 적어두었는데. 나 또한 그녀를 '울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읽었다.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인 루푸스 신염은 자가면역질환인 전신홍반 루푸스 환자에게 발생하는 치명적인 합병증이라고 한다. 희우 작가는 열여덟의 나이에 처음 루푸스 신염을 경험했고 이후 10년간 신장 투석과 신장 이식을 경험하는 투병 또는 치병의 시간을 견뎠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주체할 수 없는 '젊음'과 다리를 붙잡는 것 같은 '질병' 사이를 쉬지 않고 왕복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길러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체력과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달아났는데도 끊임없이 자신을 탓하기도 하며.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로 다짐을 하기도 한다.

또한 질병을 통과하며 변화를 맞이한 외모에 대해서 털어놓는다. 복용하는 약의 부작용으로 몸이 붓는 증상을 겪은 그녀는 세상의 무례한 질문들에 맞서며 정체성을 확립해나간다. 그리고 솔직하게 마음의 부대낌을 고백한다.
작가는 자신에게, 자신의 병에게 참을성 있는 귀가 되어주길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독자인 나에게 그는 이렇게 읽혔다. 또 다른 질병을 갖고 자주 불안해하고 있는 나에게 다른 모양의 위로를 건네주었다.
물론, 아직 우리는 엔딩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계속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자주 부닥치는 현실의 가혹함을 인정하고 나를 추스려야 한다.

"현실을 아픈 사람에게 자주 가혹"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대로 "이대로 사라지고 싶으면서도 한없이 살고 싶어지는 곳이, 바로 병원"이니까.
젊은이가 병원에 머물게 되면 자주 눈치를 보게 된다. 저 사람은 이곳에 있기에는 너무 젊다던지, 저 나이에 어쩌다 병이... 하는 시선을 스스로 가공하고 자신을 공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시선을 만드는 것도 나, 공격하는 것도 나, 지금의 나를 실제 아프게 하는 것도 나(자가면역질환) 이기 때문에. 몸처럼 마음을 내가 힘들게 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그렇구나. 내가 나를 공격하는 병이 맞구나. 하면서.

작가는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건강한 미래는 주어질까?(165쪽)

"물론이죠 작가님!" 하고 마음속으로 즉답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실 이 질문은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진 것 같기도 하다. 듣고 싶은 대답은 "물론이지!" 였을 것이다.

건강하지 않은 미래여도 몸을 달래주며 나아가는 일은 한번 해봤으니 더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물론 다시는 아프고 싶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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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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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과 왕자님은 결혼을 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와 “박상영 작가님은 퇴사를 했고 꿈꾸던 전업작가가 되었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야식도 안 먹어요.” 는 닮아있다. 다른 점은 공주님과 왕자님은 옛날 옛날에 죽어없어져서 그 현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우리의 박상영 작가님은 우리 옆에 현존하고 있다. 나는 두루뭉술하고 급한 동화 속 마무리보다 작가님의 살아있는 증언을 더 믿고 싶다.

물론 우리는 자주 마음먹고 그 마음을 바꿔 먹기도 하고 또 다잡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실패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안다. “다만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하루만큼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을.

- 남을 바라보며,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시작했던 행위라고 생각했던 글쓰기가, 실은 나 자신을 향해 나 있던 길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거였다.(203쪽)

- P203


- 내게 있어서 회사 생활과 글쓰기는 마치 세트상품 같은 일이었다는 것을.(204쪽)

- P204

- 항상 현실이 아닌 과거의 어느 시점이나, 미래의 어느 시점만을 생각하고 사는 그런 사람.(252쪽)

- P252

- 때때로 나는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어떤 순간은 나 자신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게을렀지만 마음속은 언제나 전쟁터처럼 치열했다.(253쪽)

- P253

-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257쪽)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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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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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듯 쓰고, 그래야 살 수 있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서 거죽을 뒤집어 속을 몽땅 내놓고 보여주는 이의 내장을 본 듯하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자신이 품었던 질문들을 통과하는 과정을 타인을 위해 내놓은 일이라 생각한다. 이건 마치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망태를 이고 지고 다니던 이가 ‘너는 이렇게까지 무겁게 지고 다니지 말라’며 숨기고 싶은 살림살이까지 기꺼이 보여주는 일 같았다. 망설임 없이 줄줄 엮여 나오는 그의 이야기들에 아직 젊은 나는 실속을 차릴 생각부터 했다. 꼼꼼하게 그의 시행착오를 기억하려는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책 속의 그는 머리도 몸도 쉴 새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생각을 벼리고 처절하게 여러 갈래로 찢어발겨 생각해 내고 써낸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마음속 작은 불편함들, 타인의 시선과 표정, 얽히는 감정과 상황들을 놓치지 않으려 촉수를 내민다. 생각과 단어를 고르며 ‘게으르지 않은’ 생각과 글쓰기로 매일 길을 터간다.

노년에 막 발을 들여놓은 그의 길은 돌아보면 쭉 뻗고 깨끗한 길이 아닐 것이다. 누가 봐도 길이 없는 맨바닥을 비집고 그 아래로 들어가며 바득바득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빛과 길이 없는데도 손으로라도 길을 파내며 들어가고 또 밖으로 나와서는 다른 길을 파들어가고 있는 사람. 그와 그의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바깥에서 대충 살핀 후 ‘여기에 길이 없네’하고 돌아서겠지만 그는 ‘그러든지 말던지’하며 오늘도 내일도 손으로 파내가며 길을 만들 것이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를 읽고, 그의 첫말이 내 안에서 움트는 것을 느낀다. 그의 시행착오가 나에게 큰 ‘쓸모’가 된 것 같다. ˝살아내느라 생긴 힘˝으로 나도 잘 살아보고 싶어졌다.

먼저 늙어본 언니의 가방 털이가 이렇게 유용하다.

그럼에도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전 생애를 바쳐도 부족한가보다.(8쪽)
- P8

느리고 집요하게 뒤지며 기록하자.(34쪽)
- P34

나는 누구이고, 내 길은 무엇인가?(35쪽)
- P35

🏷 피해든 욕망이든 혹은 비정상이든, 할머니들은 자기 성의 담지자이자 실천자이며 싸우고 전략하는 주체로 서고 있다. 인생 말년이어서 더 신나고 단호하다. 그래도 싫어 죽겠는 사람들은 그러라고 하고.(212쪽)
- P212

지지받지 못한 열정과 영리함 탓에 엄마들과 할머니들과 내 또래 여자들은 주변과 불화했고, 아픈 여자이자 미쳐버릴 것 같은 여자인 채로도 열나게 자신과 세상을 살아냈다.(221쪽)

- P221

🏷 나는 짧게 살든 병에 걸리든 나답게 사는 삶을 원하며, 나다움이라는 욕망의 연장선에서 동물들 역시 자신답게 살다 죽는 것이 가장 나으리라 가늠할 뿐이다.(235쪽)
- P235

🏷 ‘몸소’는 나의 한계일 수 있지만, 나의 방식이다.(268쪽)
- P268

🏷 사람에 대한 내 관심은 죽음까지다.(315쪽)
- P315

🔖 빈곤을 바라보는 빈곤하지 않은/덜 빈곤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과 느낌과 해석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빈곤을 밑천으로 전략하며 몸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말을 얻어듣는 일은 개인적으론 ‘더 추락해도 살아지겠구나’ 하는 안심을 얻고, 사회 속 저력(밑바닥 힘)을 확인하는 탐문이기도 하다.(334쪽)
- P334

🏷 살아내느라 생긴 힘으로 여태껏 살아왔다.(353쪽)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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