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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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리얼리티를 찾아내어 수집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했다. 세상에 완전한 허구 소설은 존재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으며, 그 땅 위에는 갖가지 인간 군상이 있다. 작가 자신, 작가가 보는 사람, 작가가 볼 수 없는 사람과 그들의 생활 양식까지. 어쩌면 작가의 의무는 그 ‘리얼리티‘들을 빠짐없이 포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보영 작가는 김초엽의 글이 ‘모든 것을 감싸안는다‘고 했다. 작가 자신, 다수의 사람, 소수의 사람 모두를 감싸안는다. 딱 한 사람이어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이 땅에 ‘리얼리티‘로 존재하기에 김초엽은 그 모두를 쓴다. 대신에 타자의 눈으로 그들을 평가하거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그들의 입으로 말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에, 이야기는 한없이 따뜻한 것이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주인공이 누구든지간에 완벽하게 그가 된다는 것-처음부터 그들이었던 사람처럼 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래서 나는 김초엽 작가가 좋다.

https://tobe.aladin.co.kr/n/542351

어쩌면 영원히 모르는 것들의 경계가 있고, 그 경계를 알아내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슬픔.
<달고 미지근한 슬픔> - P293

멀리멀리 가거라. 가서 이 바다에 고래들이 가득 돌아올 때까지, 인간과 고래가 함께 사는 날이 올 때까지 오래 살고 멀리 헤엄쳐서 그날들을 꼭 지켜보거라(…)
그리고 가끔은 돌아와 바닷속을 증언해주렴.
<소금물 주파수> - P174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곳. 내가 어떤 존재인지 신경 쓰지 않는 곳. 아무도 나에게 너는 왜 그런 존재냐고 묻지 않는 곳(…..)그런 곳이어서. 그 사실이 편안해서
<양면의 조개껍데기>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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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동물들 -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시작해야 할 이야기들
최태규 지음, 이지양 사진 / 사계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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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시대다. 동네 방범에 반려동물을 활용하고, 반려동물 산업은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있으며, 개고기는 거의 퇴출되었으며 아기 판다 한 마리가 전국을 들썩거리게 하기도 한다.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문구가 늘 보이는가 하면 강아지를 사고파는 가게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다가 이웃과 싸움이 나기도 한다. 한때 국가 장려 산업이었던 곰 사육이 이제는 곰 해방 운동으로 넘어갔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수없이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인간과 함께해 온 동물. 인간에게 사랑받거나 멸시받아 온 동물. 인간이 차지하는 땅의 면적이 점점 더 넓어지면서 동물과의 공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동물 복지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저자는 과연 이 복지가 누구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너를 위한 것이라면서 실은 우리를 위한 게 아닐까?

https://tobe.aladin.co.kr/n/540117

인간이 동물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 동물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인간만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 P251

판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결국 대상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동물의 온전한 존엄성을 이해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96

인간은 동물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을지 모르나, 동물의 입장에서 이는 전혀 다른 사건이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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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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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잔에 빠뜨린 각설탕처럼 내 사적인 삶이 막 부스러지기 시작하던 지난해의 여름 - P25

압도적인 성량으로 끊임없이 세계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던 여름이 갔다 - P28

카메라 렌즈를 꿰뚫고 그 뒤에 서 있었을 인선의 눈까지 관통해 날아온 그 눈의 빛이 내 눈을 찔렀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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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은 그 자체로도 어여쁘지만 햇빛을 받으면 더욱 아름다워진다.
유리병이 아름다운 것은 섬세하고 연약한 물성을 지녔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견고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겨졌다 펴지는 대신 차라리 산산이 부서지는 성질을 지녔고,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도도하고 관능적이다. - P53

하지만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P59

슬픔이 단 한 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는 좁고 긴 터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 P132

미래를 알려준다고 써 붙여놓고는 볼 때마다 부재중인 점집을 지나면서 미래는 역시나 영영 알 수 없는 것인가 보군, 생각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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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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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외는 ˝인간의 구원은 저에게는 너무 거창한 단어입니다. 제가 관심 있는 것은 인간의 건강입니다.˝라고 말했다. 까뮈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인간이 보아야 할 것은 내 삶의 사랑하는 것들과 오늘 해야 할 일. 즉 지금-여기-우리라는 말을 리외의 입을 빌려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https://tobe.aladin.co.kr/n/423459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서투르게나마 연대의식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음성은 연대의식을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고통을 나눌 수 없다는 끔찍한 무력감을 증명하듯 보여주고 있었다 - P165

누군가가 그에게 "인정이 없군요"라고 말했다. 천만에, 그는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 인정 때문에, 살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죽는 광경을 매일 스무 시간 씩 참아낼 수 있었다. - P225

인간을 초월해 자기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지향했던 사람들은 결국 아무 대답도 얻지 못했다(.....)온 힘을 다해 서로를 껴안은 채 황홀하게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이 바라던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속한 것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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