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은 그 자체로도 어여쁘지만 햇빛을 받으면 더욱 아름다워진다.유리병이 아름다운 것은 섬세하고 연약한 물성을 지녔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견고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그것은 구겨졌다 펴지는 대신 차라리 산산이 부서지는 성질을 지녔고,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도도하고 관능적이다. - P53
하지만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P59
슬픔이 단 한 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는 좁고 긴 터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 P132
미래를 알려준다고 써 붙여놓고는 볼 때마다 부재중인 점집을 지나면서 미래는 역시나 영영 알 수 없는 것인가 보군, 생각했다. - P139
리외는 ˝인간의 구원은 저에게는 너무 거창한 단어입니다. 제가 관심 있는 것은 인간의 건강입니다.˝라고 말했다. 까뮈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인간이 보아야 할 것은 내 삶의 사랑하는 것들과 오늘 해야 할 일. 즉 지금-여기-우리라는 말을 리외의 입을 빌려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https://tobe.aladin.co.kr/n/423459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서투르게나마 연대의식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음성은 연대의식을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고통을 나눌 수 없다는 끔찍한 무력감을 증명하듯 보여주고 있었다 - P165
누군가가 그에게 "인정이 없군요"라고 말했다. 천만에, 그는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 인정 때문에, 살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죽는 광경을 매일 스무 시간 씩 참아낼 수 있었다. - P225
인간을 초월해 자기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지향했던 사람들은 결국 아무 대답도 얻지 못했다(.....)온 힘을 다해 서로를 껴안은 채 황홀하게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이 바라던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속한 것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 P351
그래서일까, 매미가 쐐-하고 한꺼번에 울기 시작하면 그 소리는 수백 개의 흔들리는 나뭇잎틈으로 새는 빛 같다. 우주의 빛을 소리로 변환하는 기술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다. 여름의 빛이 매미 소리로 변신했다고 상상한 그날로부터, 그 소리가 환호성으로 들리고 있다. 반짝이는 소리. 여름을 호위하는 소리. - P43
그 말에 나는 다 들통난 기분. 그래, 나는 나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사람들을 통틀어 제일 지긋지긋한 사람은 바로 나인 것이다. 먼 데서 유토피아를 찾는 것이다.아무리 멀리멀리 가도 나를 벗어날 수는 없는데. 나의 유토피아는 나의 폐허에 있는데. - P118
밝은 빛이 스며들고 정갈한 책상 하나로 이루어진 당신만의 서재를 가지는 일이 당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P139
문장이 풍성한 책을 보면 사고 싶다.어휘와 내용이 유려한,그러면서도 외국어 문장을 오래 보아온 탓에 거기에 물들어버린 어투에서 상당한 매력이 느껴진다.나쁘게 말하면 나열과 반점이 너무 많다는 것인데 저자가 이를 인정하는 바람에 위트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책을 도중에 덮어버리고 ‘이건 사다놓고 오래오래 봐야겠다‘라고 생각한 건 그러한 매력 때문도 있지만,실은 대출 기간 내에 다 못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