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아이 (양장) -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홍종락 옮김 / IVP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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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아이>, 스탠리 하우어워스, IVP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약학자가 톰 라이트라면, 가장 좋아하는 기독교윤리학자는 스탠리 하우어워스다. 
이렇게 단언하기엔 하우어워스의 책을 그리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그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잘 이해한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을 시작으로 읽게 된 몇 권의 책들과, 신대원에서 그를 간략히 다룬 윤리학 수업을 들은 것 만으로도 하우어워스에게 매료되기는 충분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우어워스의 사상에 매료된 것이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나의 아이>의 출간을 통해 하우어워스라는 사람 자체를 알아갈 수 있는 멋진 기회가 나에게 찾아왔다.


이 책은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주는 회고록 형식의 책이다.
양극성 장애를 앓았던 아내 앤과의 결혼생활, 그 속에서 피어난 아들과의 우정, 앤과의 이혼, 폴라와의 재혼, 앤의 비극적인 죽음 등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삶의 이야기를 그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우리 시대의 기독교가 믿음이라는 명목으로 "예수성공 불신실패"의 단순화된 인생이해를 신자들에게 주입하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그 도식화된 구도에 들어맞지 않는 수많은 복잡다단한 인생들이 '믿음없는 삶', '실패한 삶'으로 규정되어 비난받거나 교화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소위 믿음이 좋다고 하는 신자들 중에 오히려 인생사의 복잡미묘함을 깨닫는 능력이나 타인의 삶의 무게를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은 것을 종종 본다.
우리는 이 책에서 우리 시대 최고의 신학자라 불리는 이가 살아온, 고통과 슬픔과 기쁨과 은혜가 촘촘히 엮여 형성된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유익은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좁은 안목이 넓어지기를 바래본다.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직접 한글로 책을 써낸 듯 느껴질 정도의 유려한 번역은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책의 성격상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부정확하고 어색한 번역이 방해하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한 과제인데, 역자는 그 일을 정말 완벽하게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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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
톰 라이트 지음, 안종희 옮김 / IVP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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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 톰 라이트, IVP

회가 직면한 여러 이슈들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존 스토트의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책이다.


존 스토트가 자신의 강점을 따라 각각의 이슈들을 다소 교의학적인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면, 신약학자인 톰 라이트는 성경의 전체이야기와 특정본문들을 넘나들면서 좀 더 자유분방하게 썼다.


해당 주제에 대해 복음주의 기독교가 보여 온 주요한 입장들을 정리하는 면에서는 존의 책이 더 우위에 있고, 성경이 이 시대의 문제에 적실한 답을 준다는 확신과 격려를 얻는데는 톰의 책에 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존의 책이 강의를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톰의 책은 설교를 듣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둘 다 읽으면 좋다는 뜻
이다.^^*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다.
모든 챕터가 각각 다른 곳에서 했던 강연이나 설교를 발전시킨 것이다보니 챕터끼리 내용이 비슷하게 겹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이 군데군데에서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지루함을 유발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저자가 박학다식하긴 하지만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영역을 언급할 때는 다소 전문성이 떨어지는 진술을 하기도 한다(예를 들면, 좌뇌/우뇌 이론).
그리고 번역이 좀 아쉽다.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 부정확한 문장이 간간히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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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 상처 입은 자들과 일구는 복음의 공동체
이재영 지음 / IVP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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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은 이재영 대표가 들려주는 오두막공동체 이야기입니다. 
(구매할 때 저자를 확인하세요. 윌리엄 영이 쓴 동명의 소설도 있습니다.^^)

대표 부부의 삶과 이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주는 울림이 어마어마합니다. 책을 덮고나도 이들의 삶이 주는 여운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좋은 간증집 한 권 읽은 것으로 넘겨버리지 말고 책이 주는 도전에 치열하게 응답해야겠다 마음 먹어보지만, 어느새 그간 살아오던 방식에 익숙해져서 상식선을 뛰어넘어 더 깊이 사랑하며 사는 삶에 대한 도전 앞에 막막해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 부끄러움 위에 작은 변화가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함께 부끄러워 하고 함께 고민해보자고 초청하고 싶습니다.
오두막.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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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 - 바울은 칭의에 대해 정말로 무엇을 말했는가?
박영돈 지음 / IVP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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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름 톰라이트빠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국내에 출간된 톰 라이트 책을 대부분 읽었고그를 비판하는 책이나 글도 꽤 읽어보았습니다.

그래서 박영돈 교수의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의 출간은 저를 매우 설레게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짧은 소감은제가 지금까지 접해본 톰 라이트 비평글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반부에서 톰 라이트의 바울 신학을 ‘E. P. 샌더스에게서 받은 영향’, ‘제임스 던에게서 받은 영향’, ‘톰 라이트의 고유한 주장으로 나누어 분석/정리한 부분은톰 라이트 본인보다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을 더 명료하게 정리했다고 느껴질만큼 탁월합니다.

에피타이저인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에 대한 요약 부분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게다가 메인디시인 톰 라이트 비평 파트 역시 매우 훌륭합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저자가 조직신학자인지라 성서주해보다는 교리논쟁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그런 방식으로는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신약성서학자를 상대할 수 없음을 존 파이퍼가 이미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본문에 대한 주해를 통해 톰 라이트의 칭의론을 요목조목 비판하는 저자의 논리는 매우 예리하고 설득력 있습니다.

 

톰 라이트의 기획은 역사적예수와 바울신학으로 구분해서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역사적예수 분과에 있어서는 그의 주장에 거의 전부 동의합니다하지만 바울신학에 있어서는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에 입각한 자신의 신학적 전제들과 일관성 있게 짜맞추려다보니 그가 일부 본문에서 다소 억지스런 주해를 하고 있다고 느껴왔습니다.

몇몇 본문의 주해에서 느껴지는 뭐랄까 좀 과하다는 느낌저자는 그런 부분들을 매우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박영돈 교수의 주장대로바울의 글 중에는 새관점으로는 제대로 읽어낼 수 없고 옛관점으로 읽을 때에만 더 자연스럽게 읽어낼 수 있는 본문들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 텍스트에 대한 옛관점과 새관점 사이의 양자택일식 논쟁은 이제는 다소 소모적으로 느껴지는게 사실입니다.

최근 많은 신약학자들이 인정하듯이, 1세기 유대교에는 언약적 신율주의와 율법주의의 요소가 공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적 위선과 공로사상그리고 배타적 민족주의 둘 다에 대항해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 텍스트는 옛관점과 새관점을 함께 가지고 읽을 때에 가장 잘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김세윤 박사도 그의 책 <칭의와 성화>에서 힘있게 주장한 바 있고,근래엔 톰 라이트 역시 옛관점과 새관점의 통합의 필요성을 깊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느 것이 주가 되어야 하는가에 있어서 김세윤 박사는 옛관점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톰 라이트는 새관점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차이점이 있습니다톰 라이트의 바울 해석에서 나타나는 몇몇 억지스러움은 그가 대부분의 텍스트를 새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박영돈 교수도 이 책에서 바울해석에 있어서 주된 것은 옛관점이라는 전제 하에 새관점의 필요성도 부차적으로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톰 라이트가 옛관점과 새관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입니다.

저자는 톰 라이트가 옛관점에 대해 그토록 부정적이면서 왜 몇몇 주해에서는 옛관점을 들여오는지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톰 라이트는 옛관점만으로’ 바울 텍스트를 읽어서 개인구원에만 매몰되어버리는 태도를 비판한 것이지옛관점 자체에 대해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가 톰 라이트가 옛관점과 새관점을 아우르며 바울을 해석하는 것을필요할 때만 옛관점을 슬그머니 들여오는 비겁한 행동인 듯 말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비난입니다.

톰 라이트는 최근 저작으로 올수록 더욱 옛관점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여줍니다.

(최근에 그가 자신의 바울신학 안에 옛관점을 얼마나 많이 수용해냈는지는<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철지난 떡밥 같은 이 옛관점/새관점 논쟁보다톰 라이트의 바울신학에서 가장 논란이 될만한 지점은 미래의 칭의에 관한 부분일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신자가 의롭다는 판결이 예수의 의를 힘입어 내려질 것인가성령과 동행하여 실제로 의로워진 그의 생애를 통해서 내려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안 그래도 톰 라이트를 달가워하지 않는 보수교회들이 그를 철저히 외면하게 할만큼 매우 민감하고 폭발력 있는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이 미래의 칭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 역시 쉽게 반박할 말을 찾기 어려울만치 설득력 있습니다.

본론인 비평 파트를 읽으면서당대 최고의 신약학자의 주장을 이렇게 얇은 책으로 효과적으로 반박해낸 저자의 내공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바울신학을 제시하고 있는데여기서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가 마구 쏟아져나옵니다.

개혁주의 공동체에게 이 부분은 교리공부하는 텍스트로도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반부는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 요약중반부는 톰 라이트의 바울신학 비평,후반부는 개혁신학 교리정리...

얇은 책이 이처럼 다양한 면모와 쓰임새를 가질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몇 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톰 라이트가 1세기 유대교가 언약적 신율주의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전제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비판하면서전문학자들이나 알만한 배경지식이 성서해석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성서는 학자나 무학자나 모두 올바르게 해석해낼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자 해석학적 유산이라는 것이지요.

주장의 취지는 일부 동의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찌되었든 신약성서는 1세기의 문서입니다. 1세기의 저자와 독자에게는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현대 독자에게는 가려진 지식가치관사고방식전제문화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 부분이 드러나 성서해석에 반영될 때 우리의 해석은 변화되고 수정되면서 성서에 대한 더 바른 이해로 나아갑니다.

성서신학자의 역할이 무엇입니까그러한 배경을 연구하고 대중에게 알려서 우리가 성경을 더욱 올바르게 읽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물론 성서의 배경연구를 통해 우리가 당시의 시대상을 완벽히 복원할 수 없고, 잘못된 배경지식이 해석의 오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배경연구를 너무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문신학자만이 제시할 수 있는 해석은 바른 해석이 아니라는 주장은 성서연구분과에 있어서 자칫 신학 무용론으로 오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톰 라이트가 하나님나라의 큰 그림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개인구원의 중요성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전 세계를 새롭게 하시려는 위대한 구원 계획을 신실하게 성취하신다는 일관된 관점으로 바울의 복음을 해석하려는 라이트의 야심찬 기획에서하나님은 한 죄인을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시는 개인의 구원자라는 측면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 박영돈,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 p171

 

저는 이런 비판을 톰 라이트가 듣는다면 많이 억울해하리라고 봅니다톰 라이트가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그의 바울신학만이 아니라 역사적예수 연구를 포함한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바울 텍스트에 대한 몇몇 주해만을 바탕으로 그가 개인구원의 중요성에 대해 평가절하한다고 평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저는 톰 라이트의 방대한 저작들을 힘에 부치게 따라갔던 그 여정에서하나님나라의 큰 그림뿐만 아니라 죄의 노예로 사는 우리 각 사람에게 자유와 새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과 희생에 대해 깊이 깨닫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톰 라이트가 개인 구원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몇가지 아쉬움을 밝혔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정말 뛰어난 톰 라이트 비판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저자가 후기에서 보여준 겸손하고 개방적인 태도 역시 인상깊었습니다.

이러이러해서 톰 라이트 위험해그러니 읽지마.” 이 아니라이러한 비평과 상호대화를 통해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잘 알게 되고 하나님나라가 진보해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 책이 그렇게 쓰이면 좋겠습니다.

신학했다는 이들 중에도 학자의 원전과 씨름해보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소위 안전한 학자들과 위험한 학자들의 목록만 잔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이 역시 톰 라이트는 위험해’ 라는 선입견을 확증하는 근거로 손쉽게 쓰이지 않길 바랍니다.

톰 라이트의 칭의론 일부분에 동의하지 않더라도그가 보여준 바울신학의 전체 그림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역사적예수 연구의 영역에서 역사비평이 해체해버린 복음서의 역사성을 수호해낸 톰 라이트의 위대한 업적은 지금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톰 라이트에게 스스로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비판서 한두권 읽고 쉽게 제껴버리는 건 참으로 아쉬운 선택입니다그는 아직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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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 상처 입은 자들과 일구는 복음의 공동체
이재영 지음 / IVP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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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은 이재영 대표가 들려주는 오두막공동체 이야기입니다. 

(구매할 때 저자를 확인하세요. 윌리엄 영이 쓴 동명의 소설도 있습니다.^^)

대표 부부의 삶과 이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주는 울림이 어마어마합니다. 책을 덮고나도 이들의 삶이 주는 여운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좋은 간증집 한 권 읽은 것으로 넘겨버리지 말고 책이 주는 도전에 치열하게 응답해야겠다 마음 먹어보지만, 어느새 그간 살아오던 방식에 익숙해져서 상식선을 뛰어넘어 더 깊이 사랑하며 사는 삶에 대한 도전 앞에 막막해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 부끄러움 위에 작은 변화가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함께 부끄러워 하고 함께 고민해보자고 초청하고 싶습니다.

오두막.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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