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전쟁 잔혹사 - 학벌과 밥줄을 건 한판 승부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다작하는 저자로 알려진 강준만은 또한 지독한 자료수집광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많은 책을 쓰면서도 대체로 내용이 충실한 책들을 써낼 수 있는 비결을 저는 자료수집광으로서의 그의 면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던지, 그 주제에 관련된 사건과 인물에 대해 방대한 팩트(?)를 체계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능력, 바로 이것이 강준만의 책이 읽을 가치와 소장가치를 얻는 지점입니다.


<입시전쟁 잔혹사> 역시 이러한 강준만식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무려 조선시대부터 2008년까지의 입시전쟁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입신양명'이라는 출세지향적 가치관이 강하게 작동하는 유교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토양에서 일제강점기와 분단, 한국전쟁 등의 비극을 겪으며 태어난 한국사회는 공동체의식이 미천하고, 지배층에 편입되려는 욕망이 각개약진의 형태로 나타나는 개인주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영역이 대학입시입니다. 소위 SKY대학에 입성하여 지배계급을 획득/유지하려는 경쟁은 한국사회를 국민 전체가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과열된 입시경쟁을 완화하려는 역대정부들의 교육정책이 모두 실패한 것은 이 문제를 입시정책의 변화만으로 단기에 해결해보려는 조급함과 좁은 안목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입시정책의 변화는 대부분 그 정책에 담긴 좋은 의도를 무색하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경쟁을 유발해 왔습니다. 따라서 입시정책의 잦은 변화는 학생과 학부모의 피로도만 증가시켰을 뿐,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대학입시는 계급전쟁’이라는 문제의 본질이 건드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의 학벌시스템을 좁게는 서울대 중심, 조금 더 넓게는 SKY 중심의 1극체제로 정의하며, 이것을 다극화하는 것만이 입시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본질적 해법이라 주장합니다. 거기에 대해 저자가 내놓은 제안은 SKY대학의 정원감축(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소수정예화’)입니다. 

저자는 이것이 한국사회의 공고한 학벌체계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명문대학의 다극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제안이 정말 그런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여 나름 실제적인 해법을 제시하려고 하는 저자의 노력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저자는 학벌사회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층도 비판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진보주의자들도 인정사정없이 비판합니다. 저자가 보기에 그들은 학벌사회에 대한 거부가 너무 강해서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를 ‘진보적 근본주의’라고 비판합니다. 


“학벌주의 완화에 대해 ‘하향평준화’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주문을 열심히 외워대는 사람들이 한국의 전형적인 엘리트로 행세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슬픈 건 변화를 염원하는 진보적 근본주의자들이 역사의 구조를 뛰어넘어 이론적 근본에 집착함으로써 사실상 그들의 동맹세력으로 기능하면서 변화의 길을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 <입시전쟁 잔혹사>, p321 


저자의 입장은, 변화는 현실과 괴리된 이상을 고수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실현가능한 변화를 조금씩 일으키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학벌폐지’보다는 ‘학벌완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학벌폐지론자들을 진보적 근본주의자라고까지 혹평한 것은 다소 지나치다고 느껴지지만, 이상과 현실을 모두 감안하여 변화의 노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저자의 관점에는 매우 공감하게 됩니다.

저도 제가 속한 단체를 통해 대학생들과 대학사회에 좋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통해 변화를 고민하는 이에게 필요한 좋은 태도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어 참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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