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정치인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대략의 내용을 듣고 별 관심없이 휙 지나쳤습니다.
그랬던 책을 새삼 찾아 읽게 된 계기는 한 주 전 일어난 예비군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 그 사건이 준 충격은 꽤 컸던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가 예비군훈련조차 안심하고 받을 수 없는 위험한 곳이 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불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군시절에 따돌림과 가혹행위를 당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것이 제대 후 사회부적응으로 이어졌다가, 결국 예비군훈련장에서 불특정인에 대한 살인을 감행하고 자신도 자살하고만 한 젊은이의 모습이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병들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여준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갑자기 이 책이 떠올랐고, 그래서 철지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한 정신의학자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자인 제임스 길리건은 미국의 살인율과 자살률이 몇 년을 주기로 두드러지게 널뛰기를 하며 증감하는 것을 보고 그 원인을 찾아내고자 노력하던 중에 그 주기가 각각 공화당,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의 집권시기의 변화와 절묘하게 맞아들어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발견에서 시작된 연구를 통해서 저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책이 실업률의 증감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살인율과 자살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축소하고 줄창 민영화를 외쳐대며, 경쟁을 부추겨 실업과 실직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붙이는 정권 하에서는 그렇지 않은 정권일 때보다 사회구성원들이 겪는 스트레스 수준이 매우 높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취약계층의 사람들이 구직실패와 실직 등의 현실에 맞닥뜨리게 될 때, 그로 인해 생계비관형 자살이나 묻지마폭력, 살인 등의 빈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자살/살인은 복지규모/실업률과만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다수가 추구하는 가치관과도 매우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즉, 약자를 향한 관용이 없고, 강함만을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관이 팽배할 때, 그 사회의 자살/살인률은 올라갑니다(오늘날 한국사회가 그러한 시기인 것이 분명합니다). 
문화인류학의 아이디어인 '수치심의 윤리'와 '죄의식의 윤리' 개념을 통해 이것을 설명해낸 4장 '수치심이 사람을 죽인다'는 이 책의 백미입니다.

이 책에 대한 몇몇 비판을 들었습니다.
"단지 미국의 사례일 뿐이고, 한국상황에서는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 "우리의 제1야당은 무능하여 미국의 민주당처럼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 두 가지가 주된 반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득불평등과 자살/살인의 높은 상관관계는 한국사회에서도 이미 데이터로 검증된 바입니다.
현재 어느 당이 더욱 소등불평등을 키우는 정책을 펴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당의 집권시기와 실업률 및 자살/살인률이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는가를 확인하기에는 우리의 데이터가 빈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은 공화당/민주당의 양당체제가 오래도록 확립되어 온데 비해, 우리는 현 여당의 독점에 가까운 정치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의 논지를 회의할 이유가 아니라, 데이터 검증이 가능할 정도의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은 우리의 정치현실을 안타까워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의 짧은 우리 정치역사에서도 이 책의 논지가 확인되는 지점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실직과 자살로 이끈 IMF시대를 오게 한 정부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것을 비교적 충격을 최소화하며 빠른 시간 안에 정상화시킨 정부가 어디인지 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열악한 경제지표를 공화당으로부터 물려받아 정상화시킨 후에 다시 정치논리에 밀려 공화당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마는 민주당의 사례와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우리의 짧은 정권교체의 역사 속에서도 현 여당과 제1야당 사이에는 양비론으로 뭉개버릴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간단히 폐기해버릴 수 없는 묵직한 주장과 수많은 유익한 통찰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주저없이 별 다섯 개입니다.
이명박근혜 시대 10년, 도처에서 들려오는 세상의 신음소리가 크고도 아픕니다.
많은 분들께 이 책 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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