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없는 사람들 - 우리 시대 무신론의 오만과 편견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이철민 옮김 / IVP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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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대니엘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그의 추종자들로 대표되는 소위 "새로운 무신론" 운동에 대한 맥그라스의 비판서입니다. 
맥그라스는 기독교역사학자,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본격적으로 신학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옥스퍼드에서 분자생물물리학을 연구하여 스물넷에 이미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력이 있습니다(리처드 도킨스가 동물행동학을 공부한 곳 역시 옥스퍼드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맥그래스는 최근의 전투적인 무신론 운동에 대해 가장 잘 답변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을 출간한 시기를 전후하여, 이미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신>, <도킨스의 망상>이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 도킨스와 논쟁을 한 차례 주고받은 바 있습니다(출간순서로 보면, 도킨스의 신 - 만들어진 신 - 도킨스의 망상의 순서입니다). 이 책들을 통해 두 사람의 논쟁을 따라가 본 제 개인적 소감은, 맥그래스가 말하는 바를 도킨스가 전혀 알아듣지 못함으로 인해서 의미있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도킨스는 자신의 책에서 극단적이고 편협한 실증주의(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현재 입증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실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와 종교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주위에서 아무리 말해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무신론에 대한 철처히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마구 뒤섞어가며 현란한 칼춤을 춥니다. 
그러나 그는 맥그래스가 제기하는 ‘과학철학’의 문제, 즉 과학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답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답변은 고사하고 무슨 말인지조차 못 알아들으므로). 이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쏟아낼 수 있는 과학 지식의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과 상대방의 관점과 논지에 깔려 있는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는 지식의 폭과 깊이의 차이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른바 ‘과학 제국주의자’인 도킨스는 과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맥그래스의 문제 제기에 적절히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 도킨스 자신이 그것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만들어진 신>에서 도킨스는 그간 맥그래스가 제기해온 심도 깊은 논점들을 고압적인 태도로 간단히 무시하며 조소합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상대방의 논지를 전혀 못 알아들은 이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는 순수한 용기를 느꼈습니다-.-; 도킨스를 비롯한 이런 전투적 무신론자들과의 논쟁을 계속해나가는 것은 맥그래스에게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일 것이라 생각됩니다(이러다 나중에 맥그래스에게서 사리가 나올지도...).

이 책 <신없는 사람들>에서 맥그래스는 ‘새로운 무신론’ 운동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그 운동의 기수들의 주장을 간략히 살펴본 후, 이 운동이 가지는 한계와 맹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얇은 책이니만큼 논지 전개의 속도가 빠르고 분명합니다. <도킨스의 신>, <도킨스의 망상>에서보다 글의 수준을 더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었으며 시원시원하고 명쾌합니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무신론과 최근의 전투적 무신론을 분명히 구분하며 무신론 전체를 조소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은 것에서 저자의 성숙함이 느껴집니다(저는 이 이슈에 대한 맥그래스의 저작을 읽을 때마다 왜 그가 저 정도에서 멈출까 아쉬운 적이 많았습니다. 이게 바로 성숙의 차이인 거 같습니다).
얇지만 내용은 알찹니다.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책입니다. 최근의 전투적 무신론 운동과 그에 대한 적절한 응답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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