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세월을 자꾸 생각해서 뭐해. 오래전 일에 머물러봐야 너만 손해야. 얼른 잊어. 시간은 지나가지 않아요. 나는 여기 있는 게 아니라 갈기갈기 찢겨 과거들 속에 흩뿌려져 있어요.
아이슬란드는 공백이 많은 나라다. 국토 면적은 남한과 비슷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북단에 붙어 있기 때문에 가끔 세계지도에서도 생략된다고 했다. 평화롭게 말줄임표처럼 생략되는 땅, 두 대륙판이 만나는 곳이어서 가끔 화산이 폭죽처럼 터지는 땅, 바이킹의 욕심으로 실제보다 못한 이름을 얻은 땅, 그곳에 가면 나 역시 발자국만 말줄임표처럼 남기고 생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 작은 방을 하나 만든다. 그 방에 불안이나 외로움 또는 우울 같은 감정들을 넣는다. 외출할 때는 그 방의 문을 단단히 잠근다. 외출이니까. 외출에는 적당한 햇빛과 소음, 목적지 같은 것만 있으면 되니까. 돌아온 뒤에는 문을 따고 방으로 혼자 들어간다. 방은 여전히 불안이나 외로움 또는 우울 같은 것으로 가득하다. 그것들과 살을 맞대고 잔다. 잠에서 깬다. 다시 잔다. 잠에서 깬다. 그렇게 그 방에서 며칠을 지낸다. 그러면 어느 아침, 빈방에 혼자 누워 있는 나를 문득 발견하게 된다. 방에는 나 자신 외에 아무것도 없다. 벽지도 깨끗하고, 창문을 열 수도 있다. 창문을 열면 신선하고 상큼한 바람이 흘러 들어온다. 이윽고 머릿속의 방에서 나온다. 방에서 나오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가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긴 잠에서 깨어난 외할머니가조용히 매실을 담그고 있다긴 잠을 자고 있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나는 차를 너무 많이 마셨나눈물에 휩쓸려 바다까지 떠내려 갔나하루는 거대해지고하루는 입자처럼 작아져 보이지 않는다아픈 내 배를 천천히 문질러주듯외할머니가 햇볕에 나를 가지런히 말린다슬퍼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본 적 없는 신을 사랑해본 적도 있다본 적 없는 신을 그리워해본 적도 있다그저 외할머니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긴 겨울을 여행하고 싶었을 뿐인데긴 잠에서 깨어난 내가 눈물을 참는 사이밤하늘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이 내려오고 있다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