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430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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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환상의 빛>

긴 잠에서 깨어난 외할머니가
조용히 매실을 담그고 있다
긴 잠을 자고 있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나는 차를 너무 많이 마셨나
눈물에 휩쓸려 바다까지 떠내려 갔나
하루는 거대해지고
하루는 입자처럼 작아져 보이지 않는다

아픈 내 배를 천천히 문질러주듯
외할머니가 햇볕에 나를 가지런히 말린다
슬퍼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본 적 없는 신을 사랑해본 적도 있다
본 적 없는 신을 그리워해본 적도 있다

그저 외할머니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긴 겨울을 여행하고 싶었을 뿐인데

긴 잠에서 깨어난 내가 눈물을 참는 사이
밤하늘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이 내려오고 있다

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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