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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이야기 - 플라스틱 여신의 탄생과 성장
스티븐 C. 더빈 외 지음, 요나 젤디스 맥도너 엮음, 김숙 옮김 / 새움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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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이야기》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플라스틱 인형
현대판 '여신'이 던지는 흥미로운 에피소드


바비인형에 하나의 완결된 입장을 제시하기란 쉬우면서도, 어렵다. 바비인형이 표상하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는 명백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장난감(애착의 대상)이자, 당대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바비인형의 무게감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비인형이 소녀들의 수많은 장난감들 가운데서 단연코 압도적인 매력을 과시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엄청난 자본을 끌어 모은 이유는, 바비인형이 미국 사회의 '성인여성'을 체현하기 때문이다. 《바비 이야기》(새움)는 그간 바비인형에 대해 쓰여진 논문 및 에세이 23개를 엮은 책이다. 이 글들은 하나의 입장으로 모이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바비의 심장에 말뚝을 꽂거나 케이크 몇 조각을 더 먹이자"라고, 다소 격하게 바비가 상징하는 '날씬한 몸매'를 비판하는 글 바로 뒤에 바비인형에 대한 향수어린 에세이가 딸려 있는 식이다.


바비인형은 당대 여성들을 반영한다

바비인형은 기존의 성차별적 사회에 순응적인 여성상을 주입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는 바비인형이 등장한 195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문화사적 해석에 의해 뒷받침된다. 1950년대는 전후 보수적 정치가 불어닥치고 텔레비전을 통해 중산층 가정의 '스위트 홈' 가치관이 설파되는 와중에도,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고 있었으며 전업주부의 권태로움이 여성잡지 등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는 등 여성의 삶이 그 이전과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던 시기였다.

딸들은 어머니들을 바라보며 '전업주부'에 대한 양가 감정을 느낀다. 소녀들은 기존의 성도덕을 지키면서도 좀더 사회적인 이니셔티브를 얻기 위해서는 권력이나 특권에 있어서 남녀간 불균형에 도전하지 말고 섹시함을 무기로 소비사회를 즐기는 것이 가장 온건하다는 것을 배운다. 한편 1950년대의 풍요로운 경제력은 역사상 처음으로 수중에 돈을 가지고 소비하는 소년, 소녀 소비자들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파티 걸' 같은 바비인형이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바비인형의 옷과 액세서리들이 오늘날 소녀들이 행하는 '보디 프로젝트'에 딱 들어맞는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즉 오늘날의 소녀들은 과거의 젊은여성들과 다르게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체형과 피부, 옷, 머리, 성적매력을 가꾼다. 바비는 소녀들처럼 매일 옷을 갈아입고 다른 직업을 가진다. 바비의 가게는 몸을 꾸미기 위해 들르는 '옷가게'와 몸에 대한 소비를 수행하는 '수퍼마켓'이다. 그리고 옷가게와 수퍼마켓은 의미심장하게도 섭식장애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가장 자주 찾는 곳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비인형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이 있어왔다. "수학이 어려워" 사건은 대표적 에피소드. 1992년 마텔사가 출시한 《틴 토크 바비》는 270여 문장을 반복할 줄 아는 인형이다. 그런데 그 문장 중 하나가 "수학은 어려워"였다. 전미대학여성협회까지 가담한 비판의 물결에, 마텔사는 고개를 숙였다.

재미있는 것은, 바비인형을 만든 사람이 루스 핸들러라는 여성이라는 점. 그녀는 신문 인기만화에서 따온 '외설적' 인형에서 착안하여 딸 바브라를 위해 성인 여성인형을 만들었다. 그녀가 창출한 바비인형의 몸매는 '섹스 없는 섹슈얼리티'. 즉 유두를 제거하는 등 '섹스'적 요소를 제거한 것. 캐롤 오코먼은 바비인형의 몸매에 대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는 거대한 유방과 이를 부인하는 듯한 가는 몸통을 가진 일종의 정신 분열증적 신체"라고 표현했다.

한편 성인인형이다 보니, 바비인형을 생산하는 마텔사에서는 아이들에게 '성차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는 바비의 남자친구 켄의 성기 표현 여부를 둘러싸고 가시화 되는데, 결국 마텔사에서는 켄의 성기를 '거세'하고 짧은 팬츠로 대체 하기로 결정 내렸다. 소녀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직설적인 '성' 표현을 자제하면서도 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신체를 조형한 결과, 바비와 켄의 기형적인 몸이 탄생한 것이다.


바비인형에 얽힌 수많은 에피소드

한편 장난감이라는 특징상 아이들은 바비를 통해 성장에 필요한 다양한 사건을 경험한다.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은 특별한 정서적 애착 대상이다. 대상관계이론가 중 한 명인 위니캇은 아이가 자신이 아닌 타자와 관계를 맺기 전 '중간 대상'을 거친다고 주장한다. 이 '중간 대상'은 인형, 담요처럼 아이 자신이 투사된, 아이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닌 대상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책에 실린 몇 편의 에세이는 바비인형과 자신 사이에 일어난, 정서적으로 충격을 안긴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렸던 한 소녀는, '여성스러움=병' 으로 생각하고 캔의 바지를 벗겨 바비에게 입힌다. 옷을 갈아 입혀, 여성스러움을 숨기고 싶었던 것. 어떤 소녀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바비인형에게 '핀업 걸' 포즈를 취하게 했다. 특히 사춘기 소녀들의 성적인 성장에 대한 관심은, 바비 시리즈 가운데 《그로잉 업 스키퍼》로 표현된다. 스키퍼는 바비의 자매로, 소녀 같은 몸매를 하고 있지만 왼팔을 돌리면 가슴이 솟아나는 인형. 스키퍼는 발랄한 바비 가족이 내면에 품고 있을 유방과 신체에 가진 강박관념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

바비와 관련된 사건은 소녀 시절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비 컬렉터들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 망을 형성하고 있다. 마텔사는 바비인형 덕분에 의상업계 매출 4위를 차지했다.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패러디한 BLO(바비해방기구)는 바비가 소녀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이유로, 바비가 '총알 먹어'라는 욕을 하게 하고 대신 그 옆의 병사 인형이 '쇼핑 가자'라고 말하도록 몇백 개의 인형을 조작하는 프로젝트을 연출했다. 귀고리를 낀 《이어링 매직 켄》 시리즈는 흔히 '게이 패션'이라 불리는 것을 모방한 것으로, 어느 게이 잡지에서는 켄을 화보로 사용하기도 했다.

바비인형은 현재 140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1959년 이후 제작된 바비인형을 일열로 놓으면 지구 4바퀴를 도는 길이라고 한다. 1초마다 바비인형은 2개씩 판매되고 있으며, 미국 소녀들은 바비인형을 평균 잡아 10개씩 소유하고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바비의 '미모'와 바비에 얽힌 개인사적인 기억 때문에 바비인형을 사랑하고 싶겠지만, 바비인형이 표상 하는 여성상이 여성들에게 페티시즘을 상품화하고, 성별을 고정시키며, 이성애의 절대적 우위를 가르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혹자는 바비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미국 중산층 틴에이저의 이성애 의례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인간은 외부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수용하는 존재가 아니므로 바비인형만을 무조건 마녀사냥 할 이유는 없다(책에서는 이를 "바비는 (사회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바비 이야기》는 단순한 긍정과 열광도, 무조건적인 부정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이 복잡한 존재가, 현대의 '플라스틱 여신'으로 오래도록 그 신화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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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뻐?
도리스 되리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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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대 여성들 삶의 단면 포착
도리스 되리 단편집 《나 이뻐?》 서평


젊은 날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지금 눈앞에는 늙고 추하게 변한 옛 애인이 기다리고 있다. 가난한 외국인을 도와주겠다고 마음먹은 착한 선진국(독일) 주부는 어느새 자신에게 매달리는 외국인 여성과 그녀의 가족에 대해 귀찮게 여기게 된다. 행복하리라 기대했던 결혼생활은 괴물처럼 징그럽게 다가오며, 그 같은 단조로움을 알면서도 여자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혼식을 올려 정해진 라이프 스타일을 따르겠다고 마음먹는다. 초심은 일상이라는 거대한 시계바퀴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같은 모든 사건과 일상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억과 경험, 관계들은 그 흔적이 남아서 사람들의 일상을 감싸고 어떻게든 변화를 안겨준다.

도리스 되리의 《나 이뻐?》는 애교 가득한 제목에서 기대하기 힘든 여성의 삶과 일상에 대한 담담한 관찰이 녹아있다. 주로 지치고 자신감 없는 삼사십대 여성들의 삶의 한 단면을 갑자기 일상에 파고든 사건들을 통해 예리하게 포착해낸 그녀의 소설집은 마치 10분짜리 단편영화를 연속으로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 《파니핑크》의 감독이라는 전적 때문일까. 그녀는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나 장황한 묘사를 사용하지 않으며 독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그녀는 바로 사건과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로 들어가서 빠르게 사건을 진행하며, 진부하지 않은 결말로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여운을 가져다준다.

《나 이뻐?》의 여주인공들은 여성들의 경험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도리스 되리의 여성주의적 시선을 잘 드러낸다. 남편과 아이에 매인 주부들은 “오래되어 말라비틀어진 빵 같은 결혼생활”에 질려 낯선 만남을 열망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정으로 돌아와 일상의 감각에 익숙해지려고 애쓴다. 《금붕어》의 루시는 남편과의 애정을 회복하기 위해 떠난 뉴욕으로의 여행에서 남편을 멀리한 채 자극적인 경험을 찾는다. 그러나 이미 습관화된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남편에 대한 생각은 그녀를 잠식하고, 이는 아무 이유 없이 죽어버리는 금붕어로 형상화된다. 《만나》의 ‘나'는 딸 릴리를 키우다, 아이 때문에 광기에 사로잡혀 ‘괴물’이 된 자신을 상상한다. 이처럼 괴물로 형상화되는 모성애는 가정과 양육에 대한 도리스 되리의 이해가 매우 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편 성장하는 딸들은 나이가 든 엄마를 부정하고, 자신의 젊은 몸매를 과시하며 자신이 성장했음을 깨닫는다. 《나 이뻐?》에서 루시의 딸 앙겔리나는 비텍스 썬글라스를 엄마 몰래 사고, 처음 만난 남자와의 데이트를 통해 변하는 자신을 느낀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삶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아직 젊디젊은 그녀들은 예측 불가능한 거친 삶을 열망하며 살지만, 사랑 때문에 늘 휘둘리고 고생한다. 《쉭세》의 우나는 머리칼이 아름다운 남자 데이브에게 늘 모자람을 느끼며 그에게 복종하지만 데이브는 우나에게 결코 확신을 주지 않는다. 《원더나이프》의 화자는 질투와 의심이 강한 남자 헤르만과의 결혼생활에서 남편과 섹스를 할 때만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편의 성기를 잘라버리고 만다.

관계중심적이고, 끊임없이 관계에서 확신을 얻고 싶어하는 여성들. 그녀들은 사랑에 확신을 주지 않는 남성들 때문에 끊임없이 그들의 시선을 맞추려하고, 정해진 삶을 따라가려고 애쓰다가 어느 순간 일상을 박차고 나온다. 도리스 되리는 여성들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여성들을 만남으로서 서로 간의 처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자각하게 하는 방식을 택한다. 물론 이같은 자각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으며, 고통과 눈물을 통해 비로소 여성 중심적 공감을 얻어낸다.

《신부》의 주인공은 거친 삶을 열망하며 젊은 날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정해진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고정된 삶의 시간표를 짜야겠다고 생각하고 거금을 들여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사지만 좀처럼 젊은 날의 열정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녀는 우연히 애인이 죽은 여인을 만나 그녀에게 자신의 웨딩드레스를 입혀주면서 자신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한편 애인이 죽은 그 여자는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공중 화장실에서 뜨거운 물을 틀어 김 서린 거울을 통해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린다.

《누구세요》에서 생일을 맞은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는 애인과 하릴없이 수다를 떠는 엄마로 대표되는 답답한 일상에서 도로에 버려진 할머니를 만난다. 생일파티에 할머니를 데려온 그녀는 자신과 할머니의 위치가 비슷하다고 느끼며 할머니의 팔을 쓰다듬는다. 《감각의 제국》에서 연하와 사귀는 여자는 애인과 비교해서 이미 늙어버린 자신의 몸에 위축감을 느끼다가 까페에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 든 여자를 만난다. 그녀와의 수다에서 일종의 좌절과 해방감을 느낀 그녀는 애인과의 약속을 포기하고 까페에서 만난 여자와 함께 기름기 가득한 음식을 주문한다.

이같은 자각은 변하지 않는 답답한 일상에 대한 차분한 수용으로 이어진다. 수용은 씁쓸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작가는 결말을 결코 비극적으로 조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애써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여자, 죽은 애인을 잊지 못해 자동차 위에서 뛰는 여자, 떠난 남편 때문에 무너진 여자 -이 모든 여자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포착함으로서 그녀들이 어떻게든 기억과 관계가 남긴 흔적을 안고 어떻게든 살아갈 것임을 이야기해준다.

《나 이뻐?》는 사건 전개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며, 친절한 설명과 담백한 묘사로 쉽게 읽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삶에 대한 작가의 만만치 않은 이해 덕에 상당한 감동을 전해준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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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스케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2
도리스 레싱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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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한 순간포착의 묘미
도리스 레싱 단편집 《런던 스케치》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런던 스케치》가 출간됐다. 도리스 레싱은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로 1950년 등단 이후 줄곧 페미니즘적 경향이 강하게 엿보이는 소설들을 발표해왔다. 주요 작품으로 《풀잎은 노래한다》 《폭력의 아이들》 《황금노트북》등이 있으며 그 가운데 《황금노트북》 《생존자의 회고록》 《다섯째아이》등은 한국에도 출간됐다.

도리스 레싱은 결혼과 이혼, 임신과 출산, 양육, 성장과 독립 등 가족(여성)에게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이 돋보이는 이유는, 단지 주제(혹은 소재)가 여성 문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작품 속 화자를 끊임없이 바꾸면서, 화자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풍부하게 서술한다. 그래서 결혼과 연애, 아이와 직업 등 상대방(특히 가족 구성원)에 대해 신경을 놓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쉬운 여자들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이 같은 섬세한 시각은 고양이에 대한 소설 《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에서 돋보인다. 고양이를 키우는 화자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으며, 그녀가 키운 고양이들의 행태에 대한 기록 보고서와도 같은 이 소설은 고양이를 키우면서 고양이와 끊임없이 맞춰가는 화자(인간)의 행동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을 대하는 ‘여성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심리의 흐름에 충실하게 서술하는 만큼, 그녀의 소설에서는 외부와 내면, 과거와 현재,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는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개인의 기억을 재생시키고, 지우고 싶은 상처에 대면하게 한다. SF소설 《생존자의 회고록》은 이 같은 모호함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소설이다. 여자는 벽을 드나들며 자신이 우연히 키우게 된 아이의 과거와 대면하고, 현실로 돌아와 그녀를 관찰하고 그녀를 키우면서 서서히 관계를 맺는다. 종말론적 세계관, 소녀의 성장과 어머니의 양육, 가족 내 외상의 ‘원형’이 그려졌다.

레싱이 바라본 가족 그리고 여성

이 같은 장편들에 비하면 《런던 스케치》는 소품이다. 런던 어느 곳에서도 마주칠 법한 상황들을 포착한 이 단편집은 그림으로 치자면, 커다란 사이즈의 유화를 그리기 위해 수없이 쏟아낸 습작같다. 각 단편소설들은 상황에 대한 묘사나, 개인에게 일어난 기막힌 사건만을 보여주고 끝난다. 그래서 단편소설만이 지닌, 순간포착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반면 미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첫 번째 단편 《데비와 줄리》는 출산할 때가 되어 두터운 옷을 입고 생리대와 휴지를 준비하여 텅 빈 창고로 걸어가는 소년 줄리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한번의 성관계로 덜컥 임신한 줄리는 집을 나와 여자친구 데비와 함께 산다. 데비는 건전한 삶을 살아온 줄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여자다. 그녀는 자유롭게 애인들과 만나고 자신을 괴롭히는 애인들을 쳐낸다.

줄리는 커다란 개가 짖는 창고로 가서 혼자 아이를 낳고, 흐르는 피를 천으로 받아내고, 개는 남은 핏덩어리를 먹어 치운다. 아이가 무사히 경찰서에 신고되는 모습을 확인하고, 생리대를 갈아가면서 줄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 뉴스에 그녀가 버린 아이가 등장하자, 줄리의 부모는 줄리의 이모 역시 lovechild(‘사생아’)을 낳아, 그 아이를 기르면서 살아왔다고 말해준다. 줄리만이, 혼자서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었던 것. 줄리는 아이에 대한 생각을 억누른 채 “이제 난 세상을 알아. 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를 외치면서 잠이 든다. 《줄리와 데비》는 또래 여자친구와의 미묘한 감정선, 아이를 낳은 여자만이 알 수 있는 처절한 경험, 부모와의 단절 등 사춘기 소녀가 ‘어른’이라는 다른 세계로 들어설 때 으레 겪는 외로운 상황에 대한 스케치다.

혼자 자라나는 딸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자식을 제 손으로 키우는 어머니들도 있다. 도리스 레싱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키우게 된 어머니들의 아이러니한 상황 묘사를 통해 신화화된 모성애를 부정한다. 《장애아의 어머니》에는 딸이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사회복지사는 임무를 다하기 위해 어머니를 설득하나, 가족 속에서 ‘정상’으로 살고 있는 딸을 굳이 꺼내서 특수교육학교에 집어넣겠다는 요구는 어머니에게 부당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승인이 있어야만 특수교육학교에 입학 가능한 가부장적 조건을 이용하여, 사회복지사가 방문할 때마다 남편을 몰아내고 아이를 지킨다. 어쩌면 ‘괴물’같은 모성애다. 《참새들》은 자식을 가족에서 내보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서서히 아이를 독립시키려는 어머니의 대립이 참새떼에 대한 비유로 표현된다. 이는 여성과 남성의 시각차이자 되도록 온전하게 사람을 세워주려는 ‘여성적인’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편 《사회 복지부》에서는 사회 복지부의 파업으로 굶어 죽기 직전에 이르러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여자와, 그녀를 돕는 사회 복지부를 그만 둔 남자의 날카로운 대립이 그려진다. 구걸하면서도 남자를 비난하는 여자와 행정조직 내에서는 제대로 사람들의 복지를 챙길 수 없음을 한탄하는 남자. 둘의 대립은 절대 해소될 수 없고, 이는 남자와의 화해를 거부하는 여자의 태도를 통해 표현된다.

연인, 부부관계에 대한 적나라한 포착

《진실》, 《흙구덩이》는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은 오랫동안 결혼한 사이였던 안젤라와 헨리, 그리고 안젤라의 새 애인 세바스천의 ‘합리적인’ 친구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헨리의 새 애인 조디의 이야기다. 안젤라와 헨리 사이를 질투하는 조디는 ‘영국적인’ 세바스천의 눈에는, 흥분한 상태에서 늘 미숙한 판단을 내리는 여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네 명의 주말 여행에서 안젤라와 헨리가 완벽하게 헤어진 것이 아님을, 그리고 세바스천 역시 그 사실과 자신의 질투를 덮은 채 합리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조디와 세바스천의 대립을 통해 드러나는 두 종류의 관계-‘애증어린 관계’와 ‘완벽하고 합리적인 관계’는 손바닥 뒤집듯이 가깝다.

《흙구덩이》에서는 10년 전에 헤어진 남편과 남편의 현 부인 로즈 때문에 또 다시 헤어지는 사라의 사연이 그려진다. 그런데 이 헤어짐은, 여자인 로즈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남편은 자신과 너무도 닮았기에 사라를 사랑한 반면, 전형적인 ‘팜므파탈’ 로즈는 자신과 너무 달라서 사랑하게 됐고, 그래서 사라와 헤어졌다. 사라는 서서히 기억을 더듬으며 헨리와 자신을 병적으로 질투하는 로즈를 떠올린다. 흙구덩이와 같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자를 잡은 여자, 로즈. 사라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어느 새 로즈로 바뀌는 것을 바라보며, 로즈의 삶에 공감하게 되고 그녀의 요란한 질투에 대항하기 보다는 자신이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레싱의 여성들

작가는 가족과 여성 문제를 개인 대 개인의 관계 차원으로 확장해서 그려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여성의 삶에 대해 깊은 공감과 연민을 부여한다. 《런던 스케치》 속 여자들의 삶은, 얼핏 보기에 참으로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녀들은 특수기관에 맡겨도 괜찮은 아이를 자신이 기르겠다고 고집부리고(사회 복지부), 얼떨결에 임신하고서 전전긍긍하다가 텅 빈 창고에서 혼자 힘으로 출산하고(데비와 줄리), 10년 전에 헤어진 남편을 다시 만나도 남편의 현재 부인이 두려워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흙구덩이). 그러나 이처럼 쉽게 헤어지지 못하고, 쉽게 버리지 못해 파괴적이기까지 한 관계들은 일상다반사다. 일상다반사니만큼,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녀들도 상황이 아이러니하고 기가 막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실천하기란 어려운 법.

어려운 이유는, 결혼이나 양육 등이 누군가 대체 가능한 ‘사건’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관계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연민이 있는 한, 책임감이 생겨나고 이는 쉽게 잘라내기 어렵다. 여기서 레싱이 그려내는 ‘상대’는 남성이 아닌, 여성과 어린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거나, 자신이 낳은 존재와의 관계는 단칼에 정리되지 않는 것. 물론 그녀의 소설은 ‘어쩔 수 없는’ 여성의 삶이 ‘사는 건 다 그런 것’이라는 식의 감상주의로 빠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관계의 문제와 더불어 개인의 트라우마와 기억을 집요하게 다룸으로써,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삶에서 이 같은 좌절의 경험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임을 말해준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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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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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현실과 공모하는 여자들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 서평


이 소설, 유쾌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살아야 맞는 건지 내심 고민하며 사는 나에게 이 소설이 유쾌하다니,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자 그 기묘함은 울적함으로 바뀌었다.

유쾌함이 기묘함으로 바뀐 이유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지독히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주의자의 고민과는 반대인데, 왜 유쾌한 것인지.

자신을 완벽하게 위장하는 여자

책의 서두를 장식하는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주인공은 중산층 끄트머리에 매달린 자신의 계층을 벗어나려면 여자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신분 상승 의지는 '삼 년 동안 줄기차게 입어온, 양은솥에 넣고 푹푹 삶아댄, 누리끼리하게 변색된 낡은 팬티'로 대변된다. 그녀는 "팬티를 사수하는 것은 세상을 사수하는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즉 모든 조건이 만족스러운 남자가 아니면 관계를 가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누런 면 팬티를 입고 남자들과 데이트하는 것이다. 상황이 위급해질 경우, 그녀는 오랄 섹스로 대체한다.

그녀는 외친다. '낭만적 사랑' 같은 건 없다고. 사랑과 결혼은 부유한 삶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그녀는 남자 앞에서는 끽연이 금물이고, 낙태 수술하면 의대생과는 결혼할 수 없으며, 키스 후 일사천리로 '진도' 나가려는 남자를 잘 다루어야 성공한다고 열심히 강연한다. 그녀의 강연은 부유하고 교양 있게 보이려는 강남 중심의 문화풍속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책제목도 교양서 같은데, 작가는 능청스럽게 소설에 각주까지 달아놨다. 다이어리 같은 데다 써서 외우기라도 해야 될 것 같다. 이 여자의 100% 이기적인 마인드, 속 시원한 구석도 있다. 그녀는 이기적이기 때문에 여자친구 임신시키고 아기만 불쌍하다고 우는 남자 욕할 줄 알고 "사랑한다"는 말을 외치면서 한번 자보겠다고 애쓰는 남자들 비웃을 줄 안다.

아무튼, 나 같은 독자의 경우 약간의 냉소를 띠게 된다. 그녀가 말하는 적나라한 '값나가는 여자 되기' 규칙들에 웃고 감탄하면서도,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나는 그 규칙들에 하나도 들어맞지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를 끊임없이 규제하는 현실에서 완벽하게 도피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누구나 현실과 적당히 공모하고 자신을 위장하면서 살아가니까.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을 완벽하게 위장하는 이 여자, 그 같은 공모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극단이 꽤 괴롭다는 것도 알려준다. 진짜 괜찮은 남자 만나서 호텔에 들어간 그녀, 첫 번째 관계니까 마땅히 처녀막 파열로 피가 나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침대에 타월까지 깔아뒀는데 세상에! 아무 흔적이 없다. 그녀는 허둥지둥 타월을 뒤지며 흔적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핏자국은 없다. 기막히고 아프기만 했던 섹스가 끝난 후 그녀는 남자에게 루이비통 가방을 선물 받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한다.

21세기에도 당하는 여자는 계속 당한다

완벽하게 욕망의 충족을 꿈꾼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 현실의 빈틈으로 미끄러졌다. 현실은 원칙과는 어긋난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그녀들은 일어선다. 그녀들은 소녀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승진을 노리는 차장일 수도 있다. ‘소녀시대’의 주인공은 어서 한국을 벗어나는 것이 소원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불륜 관계에 빠진 '채팅녀'의 낙태 수술비를 벌기 위해 미소녀 헤어 누드를 찍고 자작 납치극을 연출한다. 그녀는 '채팅녀'가 임신하자 순수한 사랑 타령 접고 관계를 끊어버린 교수 아버지나, 껍데기에 불과한 교양을 찾아 이것저것 배우는 어머니 모두를 경멸한다. ‘트렁크’의 그녀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강간까지 한 남자를 태연히 죽이고 회사 CEO와 길을 떠난다. 어차피 속물적인 인간 가득한 세상, 그녀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최고라고 믿는다.

그녀들이 처음부터 자신을 '완벽한 여자'로 위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후반부 단편들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증명한다. ‘무궁화’에 등장하는 여자는 결혼한 여자를 사랑한다. 그녀들은 말 그대로 '순수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상대방은 증발하고, 여자는 애타게 그녀를 찾지만 가족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들킬까봐 걱정되어 그 어떤 수단도 취할 수 없다. 사랑은 사랑하는 순간에만 진실일 뿐, 제도와 사회가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 같은 좌절은 ‘홈드라마’의 폭식증을 앓는 여자를 통해서도 형상화된다. 뚱뚱한 몸에 대한 콤플렉스, 떠나는 사랑에 대한 허기가 고스란히 음식에 대한 폭식 증상으로 이어지는 것.

‘이십세기 모단걸’에는 기생의 딸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까지 가지만 한국 남자 유학생들의 졸렬함에 실망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남자 유학생의 교제 신청을 거부하고 억지로 덤비는 그를 물리치지만, 오히려 못되고 방탕한 여자로 몰리고 만다. 그녀는 '모든 걸 끊고, 모질게 끊고' 사라진다. 작가는 과거를 추적해서 순수하고 삶에 대한 정열이 넘치는 여자들이 결국 매장됐다는 것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더 이상 당해서는 안 된다는 굳은 각오를 다진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여자를 뒷받침하는 듯하다.

내가 울적해진 이유는, '이십세기 모단 걸'의 여자나, '무궁화'의 여자, '홈드라마'의 여자들이 지금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21세기에도 당하는 여자는 계속 당한다. 단지 당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가부장적 현실과 공모하는 여자들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것이 변화다. 그러나 그녀들 역시 어느 순간 미끄러져 처녀막의 흔적을 찾고, 심한 경우 살인하거나 자작 납치극까지 벌여야 한다. 사는 건 어떻게 하든 만만치 않다는 것일까. 나로서는 그런 삶의 방식 감히(!) 채택할 수는 없지만, 21세기 한국 여성들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증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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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 금지된 소설들에 대한 회고
아자르 나피시 지음, 이소영.정정호 옮김 / 한숲출판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문학으로 저항하기, 소설로 살아내기
아자르 나피쉬의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서평


문학의 위상은 시대마다 다르다. 문학만이 그럴까? 모든 예술 분야들은 특정 시대에 그 시대와 함께 호흡하면서 왕성하게 작품들을 생산해내고, 이어서 다른 영역에 그 주도권을 넘긴다. 아마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예술의 영역은 확장되니, 한 시대와 호흡하는 데 적절한 예술양식 역시 변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작금의 경우, 문학은 영상 분야에 비해 날카롭게 현실을 조망하거나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뒤쳐진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자조적인 질문 속에 갇힐 필요는 없다. 세계 그 어딘가에서 문학으로 세상을 읽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영문학을 전공한 이란의 여성교수 아자르 나피쉬가 쓴 《금지된 소설에 대한 회고-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는 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자조적인 질문에 원칙적이고도 힘있는 대답을 제공한다. 그녀는 격동의 이란 정치사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이란은 20세기 초반부터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하는 왕조와 이를 반대하는 민족주의 세력 및 이슬람주의 간 갈등이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결국 1979년 이란의 팔라비 국왕은 국외로 추방되고 근본주의자이자 ‘반미의 화신’으로 유명한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신정통치를 하게 된다. 호메이니가 추진한, 이슬람 원리주의 사회를 향한 종교 혁명은 이란인 육만 명 이상을 희생시켰으며,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가차없이 체포, 처벌됐다. 또한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지속된 이라크와의 전쟁은 이란 사회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이슬람 원리주의는 단 하나의 ‘올바른’ 이데올로기로서 여타 사상을 배제하고 탄압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혁명 이후 이십여 년에 걸쳐 테헤란 거리는 전투지역으로 변했다. 규율에 순종하지 않는 여성들은 마구잡이로 끌려가 감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해야 했다. 이란의 급변한 정치사는 혁명 이전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기억의 단절과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원리주의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좌절을 안겨주었다.

이 같은 억압적인 분위기에 아자르가 몸담은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여학생들은 강의시간에 늦어서 층계를 뛰어올라갔다거나 복도에서 웃었다거나 남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고 해서 처벌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아자르는 문학작품을 현실의 복사판으로 바라보고 일면적인 잣대만을 들이대는 원리주의자들에 맞서 힘겹게 문학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턱수염을 기르지 않는다거나 이성과 악수를 한다거나 공적인 모임에서 손뼉을 친다거나 휘파람을 부는 행위도 서구적이어서 퇴폐적이라고 간주되었으며,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문화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꾸민 음모의 일부였다.” 아자르는 《위대한 개츠비》가 간통과 물질주의를 전파하는 소설이 아니라, 부로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한 남자의 좌절을 그린 소설임을 알리기 위해 《위대한 개츠비》를 피고로 설정하여 모의재판을 열기도 했다.

서구 문학작품들의 판금 조치, 날마다 행해지는 시위로 인한 휴강, 원리주의자 교수, 학생과의 투쟁의 연속이었던 그녀의 교수 생활은 결국 약 2년 만에 끝난다. 대학을 그만둔 후 그녀는 자신이 만난 소수의 여학생들과 함께 비밀리에 독서모임을 꾸린다. 독서모임 자리에서 그녀들은 차도르를 벗고 머리카락을 내보이면서, 실로 인간으로 살기 위한 자유지대를 만들었다. 일상과 전쟁이 구분되지 않는, 실로 절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문학은 자신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그 때문에 독서모임에 채택된 텍스트들은 ‘고전’의 무거운 벽을 깨고 이란 사람들의 현실로 내려왔다.

《롤리타》는 중년 남성을 매혹하는 ‘사악한’ 소녀(일명 롤리타 컴플렉스)에 대한 이야기에서,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를 자신의 애인으로 만들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한 남자 험버트에 의해 과거가 전유된 불행한 소녀의 이야기로 해석된다. 험버트의 시선으로 그려진 롤리타를 통해 독자들은 그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으며, 단지 그녀가 비극적인 역사를 살아왔음을 희미하게 알아챌 수 있을 뿐이다. 독서모임 여성들은 이란의 현실에 빗대 롤리타의 과거가 험버트에게 보잘것없듯, 한때 자유로웠던 이란의 과거는 새롭게 종교적 과거를 되살리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는 하찮을 것이라고 논한다. 또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남성에 비해 결혼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란 여성들의 삶을 읽어내는 텍스트로 재배치된다.

고전만이 현실로 내려와 현실과 얽힌 것이 아니다. 토론을 하는 여성들 역시 서로 얽히면서 변화를 거친다. 이질적인 배경 때문에 처음에는 서먹했던 독서모임 여성들은 억압적인 현실에서 유리된, ‘마법의 공간’ 같은 독서 모임의 공간에서 자신들의 비밀과 고민을 털어놓으며 친해진다. 아자르는 회고록에 자신이 기억하는 그녀들과 그녀들의 대화를 성실하게 기록함으로써 각각의 인물들이 골고루 자기 목소리를 내는 민주적인 텍스트를 완성해냈다.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는 문학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문학의 효용성에 효과적으로 답하는 책이자, 급변하는 정치사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균형있는 스케치이기도 하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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