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도우 작가의 '잠옷을 입으렴'은 이종사촌 둘녕과 수안의 아련한 유년 시절의 추억들을 담담하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이다. 


엄마가 집을 떠난 후 어린 나이에 홀로 외가에 맡겨진 둘녕은 이종사촌인 수안과 모든 순간과 추억을 공유하는 단짝이 된다. 다만, 자신의 처지를 냉정하게 인지하고 살 길을 찾아 나서야 했던 둘녕은 이상을 동경하며 현실 세계에 좀처럼 마음을 붙이지 못하던 수안과 점차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게 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해야 했던 두 소녀의 성장통이 만들어 낸 엇갈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통은 모두에게 결코 쉽게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상처에 흉터는 남더라도 아픔은 옅어지는 법. 특히 상처를 알아봐 주고 다독여줄 누군가가 있다면 더욱 빠르게 아물 수 있는 게 상처다. 책에서도 결국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지난 아픔을 위로받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두 소녀의 이야기에는 유년의 한가로운 시간을 달래주던 많은 소설 속 세계와 글귀들이 스며들어 있다. 어른이 된 시점 속 둘녕의 이야기에도 자신의 몽유병이 만들어 낸 환상들이 중간중간 뒤섞이며 꽤나 서정적이며 몽환적인 서사를 보여준다. 말 그대로 꿈결처럼 아련한 느낌의 소설이다. 



기억에 남는 글귀 1_나침반과 풍향계

세상엔 나침반 같은 사람과 풍향계 같은 사람이 있어. 나침반 같은 사람은 길을 잃어도 자기가 찾아가야 할 곳을 알게 되지. 어디에 갖다놓아도 바늘은 정확한 방향을 알려주니까, 목표가 분명한 거야.


반면 풍향계 같은 사람은 바람이 불 때마다 목표를 놓쳐. 그 사람이 기준 삼았던 풍향계는 늘 변하니까. 난 여러분 인생에도 나침반이 하나쯤 있었으면 해._200

수안이 동경했던 선생님이 해주었던 나침반과 풍향계 이야기. 소설을 읽으면서 수안과 둘녕이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일지. 나는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일지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던 부분이다. 



기억에 남는 글귀 2_누군가의 위로가 된다는 것

어린 시절 나는 한때 만병통치약을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꿈을 잊어버렸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잘못이었을까요.


설령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어도, 함께였다면 좋았을지 모른다고 뒤늦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인가 해주어야 한다고, 사랑하니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는 내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습니다._424

가끔 지인들의 힘든 모습을 묵묵히 지켜봐야 할 때가 있다.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여건상 그렇지 못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내 자신의 쓸모없음에 괜히 자책하게 되는 날들. '내가 좀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정말 힘이 되는 한 마디라도 제대로 해 줄 수 있었더라면'


하지만 힘들 때 누군가 옆을 지키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힘든 일들을 마음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때때로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그저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다고 내 자신을 마냥 자책할 필요는 없겠구나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위로가 된다는 게 그렇게 거창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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