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자네에게 할 말이 있어!" 로고진은 갑자기 활기를 띠고 두 눈을 번쩍이기 시작했다. "어째서 자네는 나한테 그렇게 양보하려고 들지? 나는 그걸 모르겠어. 그 여자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식은 건가? 전에는 그토록 애타하더니 나도 봤단 말이야. 대체 이번엔 뭐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 이 페테르부르크로 달려왔나? 연민 때문인가? (로고진의얼굴은 심술궂은 냉소로 일그러졌다.) 헤헤!" "내가 자네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나?" 공작이 물었다. "아니, 자네를 믿어, 하지만 뭐가 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 가장 확실한 건, 자네의 연민이 나의 사랑보다 훨씬 강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지!" - P384
당장이라도 터져나올 듯한 어떤 증오감이 그의 얼굴에서 활활 타올랐다. "그런데 자네의 사랑은 증오와 다를 바 없어." 공작은 빙긋이 웃었다. 그 사랑이 사라져버린다면, 그때는 사태가 더 불행해질지도 모르지. 파르폰 형제, 자네한테 말해두고 싶은 건......" 내가 칼부림이라도 할 거라고?" 공작은 몸을 흠칫 떨었다. ‘자네는 지금의 이 사랑 때문에, 지금 자네가 받고 있는 이 모든 고통때문에, 그녀를 몹시 증오하게 될 걸세. 내가 제일 이상하게 여기는 점은 어떻게 그녀가 또다시 자네와 혼인하려 하느냐는 거야. 어제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차마 믿어지지 않았고 마음이 몹시 무거웠어. 그녀는 혼례를 눈앞에 두고 이미 두 번이나 자네를 마다하고 달아나지 않았나. 그러니 그녀에게 어떤 예감이 있다는 얘기야!.. 그런 그녀가지금 자네한테서 뭘 바라는 걸까? 자네의 돈? 그건 얼토당토않은 소리지. 게다가 돈이라면 자네가 이미 웬만큼 낭비해버렸을 테니까. 그럼그저 남편이 필요해서? 하지만 남편 될 사람은 자네 말고도 얼마든지구할 수 있어. 누구든 자네보다야 낫겠지. 왜냐하면 자네는 반드시 찔러 죽이고야 말 테니까. 아마 그녀도 이젠 그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걸세. 아니면 자네가 그녀를 너무나 열렬히 사랑하기 때문에? 하긴 그바로 그런 사랑을 원하는 여자들이 있다고게 이유일 수도 있겠지.. 들었으니까.... 다만......" - P385
이온 마음을 다해 기도드리는 것을 하느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기뻐하시는 것과 언제나 똑같으니까요‘라고 하는 거야. 이게 그 아낙이내게 한 말이라네. 거의 글자 그대로 그렇게 말했어. 이건 너무나 심오하고 너무나 섬세하고 진정으로 종교적인 사상이야, 그리스도교의 모든 본질이 한데 표현된 그런 사상이란 말일세. 다시 말해, 하느님을 우리의 친아버지로 여기는 해석과, 아버지가 친자식에게 느끼는 기쁨을하느님도 인간에게 느끼고 계시다는 인식이 남김없이 표현된그야말로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지! 그런데 이걸 말한 게 단순한아낙이었어! 물론, 어머니이지…………… 그리고 누가 알겠나. 어쩌면 이 아낙이 아까 그 병사의 아내인지 말일세. 들어보게, 파르푠, 자넨 아까 나한테 물었지, 이게 내 대답일세, 종교적 감정의 본질은 그 어떤 논증과도 그 어떤 과실이나 범죄와도, 그 어떤 무신론과도 아무 관계가 없네. 여기엔 그런 것들과는 다른 무엇, 그리고 영원히 다를 무엇이 있어. 여기엔 무신론 따위가 영원히 건드릴 수 없으며 영원히 엉뚱한 소리만 하게될 그런 무엇이 있는 거야.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것이 러시아인의가슴속에서 가장 분명하고 가장 쉽게 발견된다는 사실이라네, 이게 바로 나의 결론이야! 이것이야말로 내가 우리 러시아에서 얻고 있는 가장중요한 신념의 하나지. 해야 할 일이 있네, 파르푠! 우리 러시아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내 말을 믿어주게! 우리가 모스크바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곤 했던 시절을 떠올려보게.. 나는 이번에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네! 이런 식으로 자네와 만나리라곤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뭐, 하지만 어쩌겠나!...... 이만 가보겠네. 잘 있게나! 부디 하느님께서 자넬 버리지 않으시길!" - P3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