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되어갑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어떤 분이 뭘 원하는지, 거기에 뜻는 책은 무엇인지 척 보면 알게 되었지요‘
‘이보시오‘ 내가 말했소 ‘그래도 난 내가 찾는 책이 어떤 건지 그렇게 쉽게 설명할 수가 없소!‘
이 말에 노인이 뭐라고 한 줄 아시오? 노인은 겸손하게 나를 바라보.
•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소. 외람된 말씀이오나, 장군님, 문득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장군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 장군님께서도 아시는 분일 듯합니다. 외무성에 근무하시는 투치 국장님의 부인이시죠‘
자, 이제 뭐라 하시겠소? 나는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소.
노인도 그걸 눈치챘는지, 디오티마가 예약해둔 책을 모두 가져다주었소. 내가 이제 도서관에 가게 되면 우리 둘은 남들이 모르는 정신적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소? 나는 가끔 책장 가장자리에연필로 조심스럽게 어떤 신호나 말을 써둘 거요. 그러면 디오티마가 다음날 그걸 보겠죠. 그게 무슨 뜻인지 고민하는 동안 누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말이오."
장군은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잠시 말을 쉬고는 곧 다시 힘을 냈다. 얼굴에서 씁쓰레한 진지함이 흘러나왔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한테 물어볼 게 있으니, 최대한 집중해서 들어주시오. 우리 시대가역사적으로 가장 질서정연한 시대라는 점에 대해선 다들 꽤 확신하고있소. 언젠가 난 디오티마 앞에서 그런 생각을 선입견이라고 했소. 물론 나도 그런 선입견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런데 정말 믿을 만한정신적 질서가 유일하게 도서관 하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 P204
었다. "당신의 친구, 장군이에요! 대체 그 인간은 원하는 게 뭐죠? 여긴왜 나타나는 거죠? 게다가 왜 항상 날 그렇게 빤히 바라보는거죠?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사촌이 대답했다.
•디오티마가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그 사람을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는 걸 알아요? 난 그 사람을 보면 죽음이 생각나요!"
"선입견 없이 보면 삶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죽음입니다!"
"난 선입견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 사람이 나한테 말을 걸거나, 내가 ‘탁월한‘ 이념들을 ‘탁월한‘ 모임에서 ‘탁월하게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패닉 상태에빠져요 뭐라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몽환적인 공포가 밀려든다고요!"
"그 사람에 대한 공포인가요?"
"그럼 누구겠어요? 그 사람은 하이에나예요."
울리히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마구 비난을 쏟아냈다. "그 사람은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노력들이 완전히 붕괴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이 두려워하는 게 그건가보군요! 위대한 사촌, 혹시 기억하십니까? 내가 예전부터 당신한테 그 붕괴를 예언해온 걸? 붕괴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당신도 각오하고 있어야 합니다!"
디오티마는 오만한 표정으로 울리히를 노려보았다. 예전에 울리히가 했던 그 말은 그녀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처음 자신을 방문했을 때 자신이 했던 말도 이 순간 똑똑히기억났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그때 그녀는 한 - P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