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오늘은 더 이상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청원서를 써야만 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만일 사무실에서 청원서를 쓸 시간이 나지 않으면 밤에 집에서라도 써야 했다. 밤 시간에 쓰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휴가라도 내야 했다. 하여튼 도중에 중단하는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은 업무에서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가장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청원서를 쓴다는 것은 거의 끝이 없는 작업이다. 특별히 소심한 성격이 아니더라도, 청원서를 완성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은 누구든지 쉽게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변호사가 청원서를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로 보이는 게으름이나 간교한속셈 때문이 아니다. 현재 무슨 이유로 기소되었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그것이 어떻게 확대될지 전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삶 전부를 아주 사소한 행동과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기억 속에 떠올려 서술하고 모든 방면에서 검토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은 참으로 우울한 작업이다. 그런 일은 언젠가 은퇴를하고 난 후에 다시 어린아이 같은 심성이 되는 노년의 정신이 몰두하 - P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을 다룬 이론서를 비웃었으며, 공장도 고가의 제작품도 비싼 곡물의 파종도 좋아하지 않았고, 영지 경영의 어느 한 부분만 따로 파고들지도 않았다. 그의 안중에는 언제나 전체로서의 한 영지가 있을 뿐이었고, 그것은 부분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었다. 영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토양이나 공기에 포함된 질소와 산소도 아니고, 특수한 쟁기와 비료도 아니며, 질소와 산소와 쟁기와 비료를 움직이는 주요한 도구인노동자 농민이었다. 농촌 경영에 착수해 다양한 부분을 탐구하게 되면서 특히 그의 주의를 끈 것은 농민이었고, 그에게 농민은 도구일 뿐만 아니라 목적이고 재판관이었다. 처음에 그는 농민에게 필요한 것이무엇인지, 농민이 무엇을 좋고 나쁘게 여기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며그들을 관찰했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농민들에게서 행동거지와 말과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농민의 취향과 욕망을 이해하고, 그들의 말로 이야기하고.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자신이 이미 그들과 동지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그는 대담하게 그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말하자면 농민들이 그에게 실행을 요구한 의무, 즉 농민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실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니콜라이의 경영은 아주훌륭한 결과를 가져왔다.
영지 관리에서는 천부적인 통찰력으로 곧바로 오류 없이, 만일 농민들이 선거를 한다면 분명히 그들이 뽑았을 만한 사람을 관리인이나 촌장이나 대표자로 임명했고, 이들은 절대로 바뀌지 않았다. 비료의 화학적 성질을 연구하기 전에, ‘대차" (니콜라이는 냉소하며 이 말을 즐겨썼다)에 골몰하기 전에 우선 농가의 가축 수를 조사하고 온갖 가능한에필로그 제1부 397 - P397

거절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자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법칙이 있는, 열렬히 사랑하는 특별한 세계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그녀가 그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그가 농민들을 위해 한 공로를 말할라치면, 그는 화를 내며 받아쳤다. "전혀 그렇지 않아, 나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그 사람들 잘되라고 이러는 게 아니야. 이웃의 행복 같은 건 다 시 같은 소리, 아낙들의 잠꼬대 같은 소리지. 나는 내 아이들이 길거리에 나앉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재산을 일궈야 해, 그것뿐이야.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는 질서가 필요하고, 엄격함이 필요해.. 그렇고말고!" 그는 다혈질답게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리고 공평함도 물론." 그는 덧붙였다. "만일농민이 헐벗고 굶주리거나 말이 한 마리밖에 없다면 자신은 물론 나를위해서도 일할 수 없을 테니까."
니콜라이는 남을 위해서라거나 선행을 위해서 뭔가 한다는 생각을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 때문인지 그가 한 일은 전부 유익했고, 재산은 눈에 띄게 불어나 인근 농민들도 자기들을 사달라고 부탁하러 왔고, 그가 죽은 뒤에도 농민들은 오랫동안 그의 경영에 대한경건한 기억을 지켰다. "주인님은...... 농민의 일을 먼저 하고 당신 일을 하셨어. 봐주는 일도 없었지. 한마디로-주인님이었어!" - P4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 명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시되었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함께 걸었기 때문에 피예르도 세번째 행정부터는 다시 카라타예프와, 카라타예프를 주인으로 선택한 다리가 굽은 청회색 개와 함께 걸었다.
모스크바를 출발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카라타예프는 전에 모스크바의 병원에서 치료했던 열병이 재발했고, 카라타예프가 쇠약해지자 피예르는 점점 그와 멀어졌다. 피예르는 스스로도 이유는 알 수 없었지탄 카라타예프가 쇠약해지기 시작한 후로 그의 곁에 가기 위해서는왠지 노력을 해야 했다. 그리고 곁에 가더라도 그가 언제나 휴식 장소에 누워서 내는 나직한 신음 소리를 듣고 점점 심해지는 체취를 맡을뿐이었으므로 피에르는 되도록 그를 피하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피에르는 포로로 바라크에 수용되어 지내는 동안 인간이란 행복을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며 그 행복은 자신 안에, 즉 자연스러운 인간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불행은 부족보다 과잉에서 생긴다는 것을 이성이 아닌 자기 전 존재, 자기 삶을 통해 깨달았는데, 이 행군의 마지막 삼 주 동안 그는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또하나의 새롭고 위안이 되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는 이 세상에 인간이 행복하고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가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부자유스러운 상태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통에도 한계가 있고, 자유에도 한계가 존재하며, 이 한계가 매우 근접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미 침상에서 꽃잎이 한 개 떨어졌다고 고민하는 사람이나, 지금 축축한 맨땅에 누워 한쪽 옆구리는따뜻하고 다른 한쪽은 차가워서 고민하는 피예르나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며, 전에 곧잘 꼭 끼는 무도화를 신었을 때나, 지금처제3부 241 - P241

립 부스럼투성이의 맨발(신발은 벌써 오래전에 해져버렸다)로 걸을 때나 그 고통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당시그렇게 생각하고 아내와 결혼했지만, 마구간에 갇혀 잠을 자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는 그도 그것을 고통이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벗겨지고 부스럼이 생긴 맨발이었다. (말고기는 맛도 영양도 좋았고, 소금 대신 쓰는 화약의 초석냄새도 오히려 좋았고, 심하게 춥지도 않았고, 낮 행군 때는 더울 정도이고 밤에는 모닥불이 있었으며, 피를 빠는 이도 오히려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다만 처음에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발이었다.
행군 이틀째 피에르는 모닥불가에서 발의 부스럼을 살펴보고 이상태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일어나자 그도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고, 그리는 동안 열이 나면서 고통 없이 걷게 되었으나 그날 저녁 발을 살펴보니 훨씬 악화돼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보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했다.
피에르는 이제야 비로소 인간의 생명력과 주의를 전환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지닌 구원의 힘을 깨달았고, 그것은 마치 증기 압력이 한계를 넘어섰을 때 여분을 방출하는 증기기관의 안전판 같은 것이었다.
낙오된 포로가 이미 백 명 이상 총살되었지만, 피에르는 그것을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 했다. 그는 나날이 쇠약해져 머지않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 분명한 카라타예프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다. 처지가 힘들수록, 또 미래가 무서울수록 그의 머릿속에서는 지금의 처지와는 점점 더 무관한 - P242

온 것이피에르는 회복하는 지난 몇 달 동안 습관처럼 굳어졌던 인상에서 아주 조금씩 벗어나, 이제는 내일이 되어도 누구도 그를 내쫓지 않고, 따뜻한 잠자리를 빼앗지도 않으며, 점심도 차도 저녁도 틀림없이 나오는ㅣ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후에도 오랫동안 꿈에서는 여전히 포로 신세인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포로에서 풀려난 뒤 알게 되었던 안드레이공작의 죽음, 아내의 죽음, 프랑스군의 파멸도 조금씩 이해했다.
즐거움을 주는 자유-그가 모스크바를 출발한 후 첫 휴식 때 처음으로 의식했던 그 완전하고 빼앗을 수도 없는 인간 본래의 자유를 느끼는 즐거움이 회복기의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외면적 상황과는 무관한 내면적 자유에 마치 잉여처럼, 사치스러울 만큼외면적 자유까지 갖춰져 있다는 데 놀랐다. 그는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도시에 홀로 있었다.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를 어디로쫓아내지도 않았다. 원하는 것은 뭐든 옆에 있었고, 전에 늘 그를 괴롭혔던 아내에 대한 상념도 그녀가 이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이상없었다.
"아, 정말 좋다! 참으로 훌륭하다!" 그는 향기로운 국물과 함께 말끔하게 차려진 식탁이 운반돼 올 때, 밤에 부드럽고 깨끗한 침대에 몸을누일 때, 혹은 이제 아내도 프랑스군도 없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 이게 중얼거렸다. "아아, 정말 좋다. 참으로 훌륭하다!" 그리고 그는랜 습관대로 자신에게 물었다. 자, 이제부터는 어떻게 될까? 나는 이ㅈ부터 무엇을 하게 될까? 그러고는 자신에게 대답했다. 별것 없다. 살이가면 된다. 아아, 정말 훌륭하다! - P3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스토프가 방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이모에게 인사할 시간을 주려는 듯 잠시 고개를 숙였고, 니콜라이가 그녀 쪽으로 돌아섰을 때 마침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의 시선을 맞았다. 그녀는 품위와 우아함이 넘치는 동작으로 기쁜 미소를 지으며 반쯤 몸을 일으켜 가늘고화사한 손을 내밀고는 비로소 처음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듯한여성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객실에 있던 부리엔 양은놀라 의아한 눈길로 공작영애 마리야를 바라보았다. 교태에 능란한 이여자도 자신을 꼭 좋아해주길 바라는 남자를 만났을 때 이보다 더 훌륭한 태도를 취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검은 옷이 잘 어울려서일까, 아니면 저렇게 아름다워졌는데 내가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어쨌든 대단하다. 저 몸가짐과 우아함은!‘ 부리엔 양은 생각했다.
만약 이 순간 공작영애 마리야가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부리엔 양보다 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놀랐을 것이다. 그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본 순간부터 그녀는 일종의 새로운 생명력에 사로잡히고, 의지와 관계없이 말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로스토프가 들어오자 그녀의 얼굴은 갑자기 변했다. 색칠되고 조각된 초롱 안에 불을켜면 그전까지 조잡하고 거무스름하고 무의미해 보이던 표면에 복잡하고 정교한 예술적인 도안이 홀연 놀라운 아름다움을 띠며 떠오르듯공작영애 마리야의 얼굴도 갑자기 변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순결하고영적인 그녀의 정신활동이 비로소 표면에 드러난 것이었다. 스스로는불만스러웠던 자신의 정신활동, 즉 고뇌, 선에 대한 갈망, 순종, 사랑,
자기희생 같은 모든 것이 지금 반짝이는 눈에, 섬세한 미소에 부드러 - P41

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잠자리에 들기에도 너무 일러서 그에게는 드문 일이지만 지나온 인생을 곰곰이 생각하며 한참동안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공작영애 마리야는 스몰렌스크 교외에서 그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전에 그런 특별한 상황에서 만났다는 것도, 어머니가 한때 부유한신붓감으로 지목한 사람이 그녀였다는 것도 그녀에게 특별히 주의를쏟게 했다. 보로네시에서 그녀를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은 유쾌할 뿐만 아니라 강렬했다. 니콜라이는 그때 그녀에게서 특별한 정신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깊이 감동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 떠날 채비를 하고있었고, 보로네시를 떠나면 공작영애를 만날 기회를 잃게 되지만 유감스럽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교회에서 공작영애 마리야를 만난 것은그의 예상보다 훨씬 깊은(니콜라이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마음의 안정을 위해 바라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 창백하고 가냘프고 슬픈 얼굴, 그 반짝이는 눈, 조용하고 우아한 몸짓, 특히 그녀의 몸 전체에 흐르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깊고 부드러운 슬픔은 그를 불안하게 하고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로스토프는 남자에게서는 이런 높은 정신적 생활의 발현을 보는 것이 싫었고(그래서 안드레이 공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철학이다 공상이다 하며 멸시했지만, 공작영애 마리야에게서는 그 자신과 영 거리가 먼 정신세계의깊이를 오롯이 드러내는 슬픔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던것이다.
‘분명 훌륭한 아가씨일 것이다! 마치 천사 같다!‘ 그는 혼잣말을 했다. ‘왜 나는 자유로운 몸이 아닐까, 왜 소냐에게 그토록 서둘렀을까?‘ - P47

그리고 마음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두 사람을 비교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갖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되는 정신적 자질로 보자면, 한쪽은 빈곤하고 다른 한쪽은 풍부했다. 그는 자신이 자유로운 몸이라면 어떨지 상상해보았다. 어떻게 공작영애에게 청혼을 하고, 어떻게 그녀가 그의 아내가 될까? 아니, 그는 상상할 수 없었다. 무서운 마음이 들고, 뚜렷한 그림은 떠오르지 않았다. 소냐와의 미래 그림은 별써 한참 전에 그려보았고, 모두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데다 소냐 안에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하고 뚜렷했지만, 공작영애마리야와의 미래는 그가 그녀를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소냐에 관한 공상에는 어딘지 모르게 재미있는 소꿉놀이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공작영애 마리야를 생각하는 건 늘 어렵고, 조금은두렵기도 했다.
‘기도하던 그녀의 모습은 어땠는가!‘ 그는 생각했다. ‘온 영혼을 기도에 쏟는 것 같았다.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산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기도이며, 나는 그 기도가 반드시 실현되리라 확신한다. 나는 왜 나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기도로써 구하지 않을까?‘ 그는 생각했다. ‘내게필요한 것은 뭘까? 자유다. 소냐와 이별하는 것이다. 그녀가 한 말이옳다. 그는 도지사 부인이 한 말을 상기했다. ‘그녀와 결혼한다면 불행뿐일 것이다. 혼란, 어머니의 슬픔...... 재정 문제...... 혼란. 무서운 혼란! 그리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 아 하느님! 이 무섭고 출구도 없는 상황에서 저를 구해주소서! 그는 갑자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기도는 산도 움 - P48

직인다는데, 믿어야 한다. 어린 시절 나타샤와 함께 눈이 설탕이 되게해달라고 기도하고 정말 설탕이 되었는지 맛보러 뜰로 뛰어갔던 것처럽 기도해서는 안 된다. 아니다. 나는 지금 그런 부질없는 기도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파이프를 방 한쪽에 놓고, 두 손을 모으고 성상앞에 서며 자신에게 말했다. 공작영애 마리야에 대한 회상에 감동한그는 전에 없이 열심히 기도했다. 그의 눈과 목구멍에 눈물이 차올랐을 때, 하인 라브루시카가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다.
"바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들어오는 거야!" 니콜라이는 급히 자세를 바꾸며 말했다.
"도지사님한테서." 라브루시키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급사가왔습니다. 편지입니다."
"그래, 알았어, 고마워. 가봐!"
니콜라이는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한 통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었고 또 한 통은 소냐의 것이었다. 그는 필적으로 알아보고, 먼저 소냐의 편지를 뜯었다. 몇 줄 채 읽기도 전에 그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눈은놀라움과 기쁨으로 커졌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한곳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편지를 들고 읽으며 방안을 걷기 시작했다. 대강읽은 뒤 한번 더 읽고, 또 한번 읽은 뒤 어깨를 추썩이고 양손을 벌리며, 입을 벌리고 시선을 한곳에 못박은 채 방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췄다. 하느님이 반드시 들어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방금 그가 올린기도가 실현된 것이었지만, 니콜라이는 그것이 뭔가 심상치 않고 전혀예상하지 못했던 일인 양 놀랐고, 이토록 빨리 실현된 것은 그가 기도 - P49

분과 지위를 밝히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했다. 피예르는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피에르가 어떤 결심을 하기도 전에 다부는 고개를 들고 안경을 이마로 밀어올리더니 실눈을 뜨고 피예르를 쏘아보았다.
"나는 이자를 알아." 분명 피에르를 놀래줄 심산으로 그는 침착하고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소름끼치는 한기가 피에르의 등골을 스쳐가더니 바이스처럼 머리를 쥐었다.
"장군, 당신이 저를 아실 리가 없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자는 러시아 스파이야." 다부는 피에르의 말을 가로막더니 예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방안에 있던 다른 장군에게 말했다. 그리고다부는 얼굴을 돌렸다. 피에르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듯 재빨리 말했다.
"아닙니다. 전하." 그는 문득 다부가 대공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고말했다. "아닙니다, 전하, 당신이 저를 아실 리가 없습니다. 저는 민병장교이고, 모스크바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다부가 물었다.
"베주호프입니다."
"당신 말이 거짓이 아닌지 내게 무엇으로 증명하겠습니까?"
"전하!" 피에르는 화를 낸다기보다 애원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다부는 눈을 들고 피에르를 골똘히 보았다. 몇 초간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했고, 이 응시는 피예르를 구했다. 이 응시로 두 사람 사이에전쟁이나 재판이니 하는 모든 조건을 초월한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 - P63

었다. 이 순간 그들은 막연하지만 수많은 것을 느끼고 자신들이 인류의 자식이자 형제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인간의 행위와 목숨이 번호로 불리는 명부에서 고개를 들어 다부가•처음 피예르를 일별했을 때, 피예르는 한낱 상황에 지나지 않았으므로다부는 악행을 한다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총을 쏠 수도 있었지만, 지금 그는 이 남자 속에서 일개의 인간을 보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신 말이 사실인지 내게 무엇으로 증명하겠습니까?" 다부는 냉정하게 말했다.
피에르는 랑발이 떠올라 그의 이름과 소속 연대, 숙사가 있는 거리이름을 냈다.
"당신은 당신이 말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다부가말했다.
피에르는 끊기고 떨리는 목소리로 진술의 사실성을 증명할 증거를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부관이 들어와 다부에게 무엇인가 보고했다.
다부는 부관의 보고를 듣자 갑자기 표정이 밝아지더니 단추를 잠그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피예르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부관이 포로에 대해 환기하자, 다부는 눈살을 찌푸리고 피에르 쪽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데려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에르는 바라크로되돌아가는 것인지, 데비치에 들판을 지날 때 동료들이 가리킨 완전히준비된 형장으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돌아보았을 때 부관은 다부에게 무엇인가 되묻고 있었다. - P64

"그래, 물론이지!" 하고 다부는 말했는데, 피에르는 ‘그래‘가 무슨뜻인지 알지 못했다.
피에르는 어떻게, 얼마나, 어디로 걸어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완전한 무감각과 우둔의 상태로 주위의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발을 옮길 뿐이었는데, 일동이 걸음을멈추자 그도 멈췄다. 그동안 피에르의 머릿속에는 내내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그에게 최종적으로 사형을 선고한 것이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위원회에서 그를 심문한 자들은 누구도그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 할 수도 없었던 것이 분명하므로 아닐 것이었다. 그토록 인간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던 다부도 아닐 것이었다. 만약 일 분만 더 있었다면 다부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나쁘다는 것을 깨달았겠지만, 그 순간에 부관이 들어와 방해를 했던 것이다. 그 부관도 분명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때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대체 누가 최종적으로 사형을 명령하고, 그를 죽이려는 걸까-모든 기억, 갈망, 희망, 사상을 지닌 그의 생명을 빼앗으려 하는 걸까? 누가 그것을 했을까? 피에르는 그것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질서이며, 온갖 상황의 집적이었다.
어떤 질서가 그를, 피예르를 죽이려고, 생명과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말살하려고 하고 있었다. - P65


"지금 외운 건 무슨 기도인가?" 피에르는 물었다.
"엉?" 플라톤은 말했다(그는 벌써 잠들기 시작했다). "뭘 외웠느냐말입니까? 하느님께 기도했죠. 당신은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아니, 나도 하지." 피에르는 말했다. "그런데 자네가 말한 프롤라와라브라가 뭔가?"
"그거잖습니까" 하고 플라톤은 재빨리 대답했다. "말의 축일". 가축들도 불쌍히 여겨줘야 하니까요." 카라타예프는 말했다. "요놈 봐라.
장난꾸러기, 돌돌 말고 누웠군. 따뜻하지, 요놈 자식." 그는 발치에 누운 개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더니 이내 돌아누워 잠들었다.
밖에서는 어딘가 멀리서 울음소리와 비명이 들리고, 바라크 틈새로불빛이 보였지만, 안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피에르는 오랫동안 잠을이루지 못하고 옆에서 잠든 플라톤의 규칙적인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 자기 자리에 누워 있었고, 마음속에서는 조금전에 붕괴되어버린 세계가 다시 새로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전과는 다른 튼튼한 토대 위에 세워지는 것을 느꼈다. - P78

이 비교적 느린 각성에는 무서운 것도 날카로운 것도 없었다.
안드레이 공작의 마지막 날과 시간은 평범하고 단조롭게 지나갔다.
그의 곁을 떠나지 않던 공작영애 마리야와 나타샤도 그것을 느꼈다.
그들은 울지도 떨지도 않았고, 임종이 다가오자 그것을 직감하며 이제더는 그가 아니라(그는 이미 없었고, 그들을 떠나버렸다) 그에게 가장가까운 추억인 그 육체를 돌보았다. 두 사람의 이런 감정이 너무도 강 - P103

렬했기 때문에 죽음의 무서운 일면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또한 그들은 자신의 슬픔을 자극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앞에서도 그가 없는 곳에서도 울지 않았고, 서로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자신이 이해한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드레이 공작이 점점 더 깊이, 천천히, 조용히 그들을 떠나어디론가 내려가는 것을 보았고, 그래야 하고, 그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받았고, 모두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그의 곁으로 갔다. 이들을 데려오자 그는 아들에게 입을 맞추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것은 괴롭거나 슬퍼서가 아니라(공작영애 마리야와나타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요구된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었고, 아들을 축복해주라고 하자, 하라는 대로 한 뒤 또다른 할 일이있는지 물어보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영혼이 떠나가는 육체의 마지막 경련이 일었을 때, 공작영애 마리야와 나타샤는 그곳에 있었다.
"돌아가셨군요?!" 그가 몇 분 동안 아무 움직임도 없이 차가워지며그들 눈앞에 누워 있자, 공작영애 마리야는 말했다. 나타샤는 다가가서 생명을 잃은 눈을 잠시 보고, 서둘러 눈을 감겨주었다. 그녀는 눈을감겨준 뒤 그의 눈에 키스하지 않고 그에 대한 가장 가까운 추억이 된그의 몸, 그것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 어디 있을까?.......
염을 하고 옷을 갈아입힌 유해가 탁자 위의 관에 입관되자 모두 마 - P102

지막 인사를 하러 다가가서 울었다.
니콜루시키는 마음을 찢는 듯한 괴로운 당혹감에 울었다. 백작부인과 소냐는 나타샤에 대한 동정과 이제 그가 세상에 없다는 생각에 울었다. 노백작은 자기도 머지않아 이 무서운 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생각에 울었다.
나타샤와 공작영애 마리야도 이제는 함께 울었는데, 자신들의 개인적인 슬픔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일어난 단순하고도 엄숙한 죽음의 신비, 영혼을 사로잡은 그 경건한 감동 때문에 울었다. - P1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학은 진보하면서 관찰을 위해 더욱더 작은 단위를 취급하고 이방법으로 진리에 접근하려 한다. 그러나 역사가 아무리 작은 단위를다루더라도, 다른 것에서 분리된 단위를 인정하는 것, 어떤 현상의 시작을 인정하는 것, 모든 인간의 자의가 한 역사적 인물의 활동 속에 나타난다고 인정하는 것 자체가 오류라는 것을 우리는 느낀다.
역사의 결론이 어떻든 비평가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리는 것도, 그 관찰이 크든 작든 단편적 단위를 추출해서 한 것이기 때문이고, 취급된 역사상의 단위가 언제나임의적인 것이라면 비판도 언제나 그럴 권리를 갖는다.
관찰을 위해 무한소의 단위-역사의 미분, 즉 인간들의 동질의 욕구를 인정하고, 적분(이 무한소들의 합)의 방법을 터득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 P405

이 거울이나 유리를 깨뜨릴 때의 감정이며, 인간이 (통속적 의미의) 분별없는 짓을 하면서 인간적 조건을 초월한 인생에 대한 최고의 심판이존재한다고 언명하고 자신의 개인적 권력과 힘을 시험해보려 할 때의감정이다.
슬로보드스키 궁전에서 그런 감정을 처음 경험한 그날부터 그는 줄곧 그 영향을 받아오다가 이제야 비로소 그것에 대한 충분한 만족을발견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 방향으로 해오던 일들은 그게획을 지탱하고, 그것을 단념할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만약 지금 그가다른 사람들처럼 모스크바를 떠난다면 집을 나온 것도, 카프탄도, 권총도, 모스크바에 남겠다고 로스토프가 사람들에게 공언한 것도 다 무의미해질뿐더러, 그가 한 모든 행동이 멸시를 받고 웃음거리가 되고말 것이었다(피예르는 이런 것에 민감했다).
피예르의 육체적인 상태는 언제나처럼 정신적인 상태와 일치했다.
익숙지 않은 변변찮은 음식, 요 며칠 마셔댄 보드카, 와인과 시가의 결핍, 갈아입지 않아 더러워진 옷, 짧은 소파에서 침구도 없이 보내며 절반은 잠을 이루지 못한 이틀 밤, 이 모든 것이 피예르를 광기에 가까운흥분상태에 빠뜨렸던 것이다. - P540

늦은 밤이나 와인에 취했을 때 흔히 그렇듯 피에르는 대위의 이야기를 듣고 온전히 이해하면서도 왠지 모르지만 갑자기 떠오른 자신의 추억들을 더듬고 있었다. 연애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는 불현듯 나타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떠올랐고, 그 사랑의 여러 장면을 공상하면서내심 그것을 랑발의 이야기와 비교하고 있었다. 피에르는 얼마 전 수하레프 탑 옆에서 사랑하는 대상을 만났던 일을 아주 자세하게 떠올려보았다. 당시 그 만남은 그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았고, 그뒤로 생각한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만남이 아주 의미심장하고 시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 P559

사랑을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며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해왔고 지금도 사랑하지만, 그 여자는 절대 자기 것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저런!" 대위는 말했다.
피에르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너무 어린데다가 자기는 이름도 없는 사생아였기 때문에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후 부와 이름을 얻었을 때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고이 세상에서 가장 그 자신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존재로 그녀를 생각했기 때문에 역시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피예르는 대위를 바라보며, 이런 기분이 이해가 됩니까? 하고 물었다.
대위는 비록 이해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야기를 계속해달라는 몸짓을 했다.
"플라토닉러브, 구름 같군......" 그는 중얼거렸다. 와인 때문인지,
털어놓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자기가 이야기하는 인물을 모르고 또 알 리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혹은 이 모든 것이합쳐진 때문인지 어쨌든 피에르는 말문이 트였다. 그는 촉촉해진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놀려 자신의 결혼, 자신과가장 가까운 벗에 대한 나타샤의 사랑, 그녀의 변심, 그녀와 자신의 덤덤한 관계 등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랑발의 물음에 이끌려 그는 처음에 숨기던 신분과 이름까지 말했다.
피예르의 이야기에서 무엇보다도 대위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모스크바에 대저택을 두 채나 가진 대단한 부자라는 것과 그가 모든 것을 - P560

그는 파리가 얼굴에 닿을 때마다 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러면서동시에 얼굴 위로 뻗어가는 건물에 파리가 정면으로 부딪는데도 건물이 부서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그 밖에 또하나 중요한 것이있었다. 그것은 문가의 하얀 것이었고, 스핑크스 같은 그것 역시 그를압박했다.
‘그러나 저것은 탁자 위에 있는 내 루바시카인지도 모른다.‘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이것은 내 다리, 저것은 문인데, 왜 마구 높이 뻗어가는 거지? 이 피치피치피치 이치치..... 아아, 이제 그만,
그만둬. 제발 그만둬.‘ 안드레이 공작은 누군가를 향해 괴로운 듯이 애원했다. 그러자 느닷없이 다시 상념과 이미지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고 강렬하게 떠올랐다.
‘그렇다. 사랑이다(그는 다시금 아주 맑아진 머리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슨 목적이나 이유가 있는것도 아닌, 내가 빈사의 순간에 원수를 만나 사랑하게 됐을 때 경험한사랑이다. 나는 영혼의 본질이자,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참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행복한 감정을 맛보고 있다.
이웃을 사랑하고, 적을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에 나타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사랑으로 할 수 있지만, 적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그런 기쁨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는 어떻게 됐을까? 살아 있을까?.....
인간의 사랑은 미움으로 옮아갈 수도 있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변하지않는다. 어떠한 것도, 죽음도 그것을 파괴할 수 없다. 그것은 영혼의 - P575

본질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미워했던가.
그리고 모든 사람 중에서 그녀만큼 내가 사랑하고 또 미워하던 사람은없었다. 그리고 그는 나타샤를 생생하게 떠올렸는데, 이전처럼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는 매력을 지닌 존재로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그녀의영혼 그 자체로 그려보았다. 그는 그녀의 감정, 고통, 수치, 후회를 이해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그녀에 대한 거절의 잔인함을 절연의 냉혹함을 깨달았다. ‘한 번만 더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한 번만 더, 그눈을 들여다보고, 말할 수.......
이 피치피치피치 이치치 이-피치피치-쾅, 파리가 부딪혔다. 그리고 그의 주의는 갑자기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던꿈과 현실의 다른 세계로 옮아갔다. 이 세계에서는 여전히 그 건물이무너지지 않고 지어지고, 여전히 무언가가 뻗어가고, 여전히 빨간 동그라미에 싸여 초가 타고, 여전히 루바시카-스핑크스가 문가에 있었는데, 다른 무언가가 삐걱하더니 신선한 바람이 불어들고, 하얀 스핑크스가 문 앞에 새로이 나타났다. 이 스핑크스의 머리에는 그가 방금생각했던 나타샤의 창백한 얼굴과 반짝이는 눈이 있었다.
‘오오, 이런 끝도 없는 환각은 싫다!‘ 안드레이 공작은 뇌리에서 그얼굴을 몰아내려 애쓰며 생각했다. 그러나 그 얼굴은 현실의 힘을 가지고 앞에 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점점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때까지 떠올리던 순수한 상념의 세계로 되돌아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고, 환각은 그를 자기의 영역으로 더욱 깊이 끌어들였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규칙적으로 계속 들려오고, 정체불명의무언가가 여전히 압박하면서 뻗어가고, 이상한 얼굴이 그의 눈앞에 서 - P5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