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오늘은 더 이상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청원서를 써야만 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만일 사무실에서 청원서를 쓸 시간이 나지 않으면 밤에 집에서라도 써야 했다. 밤 시간에 쓰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휴가라도 내야 했다. 하여튼 도중에 중단하는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은 업무에서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가장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청원서를 쓴다는 것은 거의 끝이 없는 작업이다. 특별히 소심한 성격이 아니더라도, 청원서를 완성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은 누구든지 쉽게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변호사가 청원서를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로 보이는 게으름이나 간교한속셈 때문이 아니다. 현재 무슨 이유로 기소되었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그것이 어떻게 확대될지 전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삶 전부를 아주 사소한 행동과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기억 속에 떠올려 서술하고 모든 방면에서 검토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은 참으로 우울한 작업이다. 그런 일은 언젠가 은퇴를하고 난 후에 다시 어린아이 같은 심성이 되는 노년의 정신이 몰두하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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