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않고, 군대에 진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전쟁은 없었을 것이고, 하사 전원이 재복무를 원하지 않았더라도 역시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영국의 음모가 없고, 올덴부르크 대공이 없고, 알렉산드르가 모욕을 느끼지 않고, 러시아에 전제 권력이 없고, 프랑스혁명과 뒤이은 독재와 제정시대가 없고, 거슬러올라가 프랑스혁명을 유발한 여러 원인이, 기타 등등이 없었다면 역시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인 중하나만 빠졌어도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원인수십억 가지 원인은 사건을 유발하며 우연히 동시에 겹친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특정한 원인이란 없으며,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몇 세기 전 인간 무리가 자신과 유사한 자들을 죽이면서 동에서 서로 이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백만의 인간이자신의 인간다운 감정과 이성을 버리고 서에서 동으로 전진하며 자신과 유사한 자들을 죽여야만 했던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느냐 일어나지 않느냐가 그들의 말 한마디에 달린 것같았던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의 행동도, 제비뽑기나 소집으로 출정한 개개 병사의 행동만큼이나 거의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르 (사건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의 의지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상황이 겹쳐야 하고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사건은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실행할 힘을 지닌 수백만이, 총을 쏘고 양식과 대포를 운반하는 병사들이, 일개인에 지나지 않는 약한 인간들의 의지의 이행에 동의하고, 복잡하고 다양한 무수한 원인에 이끌려 그 일에 유입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 P16
역사에서 운명론은 불합리한 현상(즉 우리가 그 합리성을 이해하지못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상의 이러한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할수록 그것은 더욱 우리에게 불합리하고 불가해한 것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를 행사하고, 자신을 위해 살고, 자신은 지금 어떤 행위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 존재로 느끼지만, 그 행위를 실행하자마자 시간의 흐름속 어느 시점에서 실행된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자유를 잃어버리며, 미리 정해진 의미만을 지닌, 역사의 소유가 된다. 인간에게는 양면의 생활이 있는데, 하나는 생활의 흥미가 추상적일수록 자유로워지는 개인적 생활이고, 또하나는 자기에게 정해진 법칙을 좋든 싫든 실행해야 하는 자연력이 행사되는 집단적 생활이다.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생활하지만, 역사적이고 전인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의식적인 도구 역할을 한다. 일단 실행된 행위는 돌이키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이의 무수한 행위와 합쳐지미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단계의 높은곳에 설수록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수록 다른 사람에 대해 더 큰권력을 갖게 되고, 또 개개 행동의 숙명과 필연성이 더 명백해진다. ‘왕들의 마음은 하느님의 손아귀에 있다. 왕은 역사의 노예다. 역사, 즉 인류의 무의식적, 전체적, 집단적 생활은 왕의 생활의 매순간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자신을 위해 이용한다. - P17
때문일까, 바람이 흔들기 때문일까. 아니면 밑에 서 있는 사내아이가먹고 싶어하기 때문일까? 어느 것도 원인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생명이 있는, 유기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의 모든 조건이 일치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 세포질의 분해 등등 때문이라고 하는 식물학자나, 내가 먹고 싶어 떨어지라고 빌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나무 밑의 사내아이나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 간 것은 그가 그것을 바랐기 때문이고, 그가 패망한 것은 알렉산드르가 그의 패망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갱도가 뚫려 몇만 푸드나 되는 산이 무너지는 것이 마지막 갱부의 마지막곡괭이질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옳기도 하고 옳지 않기도 한 것이다. 역사상의 사건에서 이른바 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 사건에명칭을 부여하는 라벨이며, 원래 라벨이라는 것이 그렇듯 사건 그 자체와는 가장 관계가 적다. 자기 자신에게는 자유로운 것이라 생각되던 영웅들의 모든 행위도역사적 의미에서 보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전체와 관련되어 있고, 개벽 이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 P19
어지럽히는 익사하게 된 창기병들을 이따금 불만스러운 듯 바라보며함께 걷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모스크바의 스텝에 이르는 세계 곳곳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가 언제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자기망각의 무분별로 몰아넣는다 믿었고, 이 신념은 그에게 조금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말을 끌고 오게 해 숙사로 돌아갔다. 구조선이 출동했으나 병사는 40명 남짓 익사했다. 대부분은 원래 있던 강변으로 다시 밀려왔다. 강을 헤엄쳐 간신히 건너편 기슭에 기어오른 것은 연대장과 병사 몇 명뿐이었다. 그들이 흠뻑 젖어 물을 뚝뚝떨어뜨리며 기어올라 나폴레옹이 있던 곳을 감격에 찬 눈으로 바라보며 "비바!" 하고 외쳤을 때, 그는 이미 그곳에 없었지만 그들은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날 밤 나폴레옹은 두 개의 명령 사이에 하나는 러시아에 가지고들어가려고 준비한 러시아 위조지폐를 되도록 빨리 보내라는 것이고, 또하나는 가지고 있던 서한을 빼앗겨 프랑스군에 내려진 명령 정보를발각되게 한 작센인 병사를 총살하라는 것이었다-세번째 명령을 내렸는데, 불필요하게 강에 뛰어든 폴란드인 연대장을 나폴레옹 자신이지휘하는 명예 연대(Légion d‘bonneur)로 편입시키라는 것이었다. 신은 파멸시키려는 사람에게서 먼저 이성을 빼앗는다. - P24
리 국민의 피를 흘리게 하려던 마음을 되돌리고 러시아 땅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데 동의하신다면, 나는 모든 일을 불문에 부칠 것이며, 그럼으로써 상호간의 협정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나는 우리가 어떤 도발도 하지 않았던 이 공격을 부득이 격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인류를 새로운 전화에서 벗어나게 할 가능성은 아직 폐하의 손에 있습니다. 경백(서명) 알렉산드르6월 13일 새벽 두시, 황제는 발라쇼프를 불러 나폴레옹에게 보낼 서한을 읽어주고 나서, 이 서한을 직접 프랑스 황제에게 전하라고 명령했다. 황제는 발라쇼프를 보내기 전에, 무장한 적병이 한 명이라도 러시아 땅에 남아 있는 한 강화를 맺지 않겠다는 말을 다시 되풀이했고, 이 말을 반드시 나폴레옹에게 전하라고 명령했다. 황제는 나폴레옹에게 보내는 서한에는 이 말을 적지 않았고, 그것은 강화 교섭의 마지막시도에서는 적절치 않다는 것을 타고난 기민함으로 느꼈기 때문인데, 그러면서도 발라쇼프에게는 나폴레옹에게 직접 이 말을 전하라고 명령했다. - P30
공작영애 마리야는 하루만 더 기다려달라고 청하며, 그가 아버지와풀지 않고 떠나면 아버지가 얼마나 불행해질지 안다고 말했지만,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은 아마 머지않아 군대에서 돌아올 것이고 아버지한테는 편지를 꼭 쓰겠지만, 지금은 이 이상 머물면 불화만 키울 뿐이라고 대답했다. "안녕, 앙드레! 불행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것이 인간에게는 결코죄가 없다는 걸 잊지 마요." 이것이 그가 누이와 작별 인사를 할 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리시예 고리의 집 가로길을 마차를 타고 나오면서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저애는, 가엾고 순진한 저 존재는 노망한 노인의 희생물로 남아 있다. 노인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아들은 자라면서 인생을즐기고 있지만,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생 속에서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군대에 간다. 왜? 그것은 나도 모른다. 내가 경멸하는 인간을 만나길 바라고, 그자에게 나를 죽이고 비웃을기회를 주려는 것인지도!‘ 생활의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전에는 그것이 서로 굳게 결합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뿔뿔이흩어져 있었다. 그저 무의미한 현상들이 아무 맥락도 없이 안드레이공작의 눈앞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 P63
원래 빈정거리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의 풀은 이날 자기가 없는 사이에 진지를 시찰하고 감히 그것에 대해 비판했다는 것 때문에 유달리화가 나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아우스터리츠의 기억 덕분에 이 짧은 만남만으로도 그에 대한 명확한 관념을 포착했다. 풀은 부정적이고, 확고부동하고, 순교적이리만큼 자신만만한 독일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왜냐하면 추상적인 관념-과학, 즉 자기가 완전한 진리를안다는 환상 위에 서서 자신감을 갖는 건 독일인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이 자신감을 갖는 건 자기가 지력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또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에 대해서도 자기가 절대적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인이 자신감을 갖는 건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잘정비된 나라의 국민이므로 영국인으로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알고 또 자기가 하는 일은 전부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의 자신감은 이 민족이 쉽게 흥분하고, 자기도 남도 잘 잊어버린다는 데서 온다. 러시아인의 자신감은 자기는아무것도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는, 말하자면 무엇인가를 완전히알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데서 온다. 독일인의 자신감은 그림가장 나쁘고, 가장 완고하고 또 가장 역겨운데, 독일인은 자기야말로진리, 즉 과학을 알고 있다고 망상하고, 자기가 생각한 과학을 절대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풀도 확실히 그런 인물이었다. - P76
에 찬 그 우매한 얼굴을 기억한다. 훌륭한 사령관에게는 특별한 자질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니 시정이니부드러움이니 철학적 탐구에 의한 회의 같은 가장 고매한 인간의자질은 없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령관은 시야가 좁고, 자신이 하는 일이 몹시 중요하다고 확신해야 하며(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용감한 사령관이 될 수 있다. 보통 사람처럼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동정하거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들이 권력자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그들을 위해천재론이 위조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전투의 승리에 기여하는것은 그들이 아니라 대오 속에서 틀렸다! 혹은 우라! 하고 외치는 자들이고, 이러한 대오 속에서야말로 나는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확신을가지고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고, 파울루치가 그를 불러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두 흩어지고 있었다. 이튿날 사열 때 황제는 안드레이 공작에게 어디서 근무하고 싶은지물었고, 안드레이 공작은 황제 측근에 머물기를 바라지 않고 실전 부대 근무를 청원했기 때문에 궁정 세계에서 살아갈 길을 스스로 영원히잃어버렸다. - P84
로스토프는 전투 때 부대의 군마가 아니라 카자크 말을 타는 자유를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있었다. 말을 잘 알고 좋아하는 그는 얼마 전 민한돈산의 큰 밤색 말을 얻었는데, 이 말을 타면 아무도 그를 앞지르지 못했다. 이 말을 타는 것은 로스토프의 즐거움이었다. 그는 이 말과 아침과 군의관의 아내를 생각했고, 눈앞에 닥친 위험에 대해서는생각하지 않았다. 전에는 전투에 나갈 때마다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 공포감은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가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은 포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니라(위험에 익숙해질 수는 없다) 위험에 직면했을 때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전투에 나갈 때, 다른 어떤 것보다 흥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 즉 눈앞에 닥친 위험을 제외한 다른온갖 것을 생각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군문에 들어와 처음 얼마 동안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소심함을 아무리 나무라도 그럴 수 없었으나, 해가 지나면서 저절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지금 일리인과나란히 자작나무 길을 나아가면서 손에 닿는 잎사귀를 가지에서 뜯기도 하고, 말의 사타구니에 발을 대보기도 하고, 다 피운 파이프를 뒤따라오는 경기병에게 돌아보지도 않고 건네주기도 하면서 마치 그냥 말을 타러 나온 사람처럼 침착하고 여유로웠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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