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되었기때문이다.  - P9

서들이 있어요. 이제 당신들 것을 보여주시오. 우선 체포영장을 좀 봅시다." "맙소사!" 감시인이 말했다. "당신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줄을 모르는군. 지금 누구보다도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우리를 쓸데없이 화나게 할 작정이군요." "이 사람 말이 맞아요. 그렇게 믿는 게 좋을 거요." 프란츠가 말했다. 그러고는 손에 든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뭔가 의미심장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한참 동안 K를 바라보았다. 뜻하지 않게 프란츠와 서로 쏘아보는 상황이 되었지만 K는 곧 증명서들을 탁 치면서 말했다. "여기 내 신분증명서들이 있어요." "그래서요?" 키 큰 감시인이 바로 소리쳤다. "어린애보다더 고약하게 구는군.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게 뭐요? 신분증명서니체포영장 같은 문제로 감시인들과 언쟁을 벌인다고 당신의 그 빌어먹을 거대한 소송 사건을 조속히 결말지을 수 있을 것 같소? 우리는 신분증명서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하루 열 시간씩 당신을 감시하고 그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 외에는 당신 일과 아무 관계도 없는 말단 직원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 신분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지만,
그래도 우리를 고용한 상급 관청이 이런 체포 명령을 내리기에 앞서체포 대상자의 신원과 체포사유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우리도 알고 있소. 거기에는 착오가 있을 수 없지. 나는 말단 부서의 일밖에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바로는, 우리 관청은 주민들에게서 죄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고, 법에 쓰여 있듯이 죄에 이끌려서 감시인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오. 그것이 법이라는 거요. 거기에 무슨 착오가 있겠소?" "난 그런 법은 모릅니다." K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더 불리하군." 감시인이 말했다. "그런 법은 아마 - P15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K는 말을 계속하면서 그들 모두를 향해 몸을 돌렸는데, 사진을 보고 있는 세 사람에게까지 기꺼이 그렇게 하고자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사건은 그리대단한 사건일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뭔가 고소를 당하기는 했지만, 정말 고소를 당할 만한 경미한 죄도 없다는 사실에서 내리는 결론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부차적인 것이고, 중요한 건 누가 저를 고소했느냐는 겁니다. 어떤 기관이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는 거죠? 당신들은 관리인가요? 한 분도 제복을 입지 않았군요. 당신들이 입고 있는 옷은......" 그는 프란츠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제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여행복에 가깝군요. 저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해명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해명되고 나면 우리가 서로 아무 유감도 없이 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독관이 성냥갑을탁자 위에 탁 내려놓았다. "크게 착각하고 있군요."  - P21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썼다. 그러면서 그는 K에게 말했다. "당신은 만사를 참 단순하게 생각하는군! 우리가 이번 일을 원만하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아니, 그건 정말 어림없는 일이지.
당신을 절망시키려는 건 아니오. 아니, 왜 절망해야 합니까? 당신은 체포되었을 뿐이오 - P25

체포되었을 뿐이오. 그게 전부요. 나는 당신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고, 또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하며, 물론 일시적이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이제 헤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은행에 갈 생각이겠죠?"
"은행에요?" K가 물었다. "체포된 거 아니었소?" K는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청한 악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특히 감독관이 자리에서 일어선 뒤부터는 이들로부터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들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  - P25

K는 심리가 열리는 방을 찾기 위해 계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시 멈취 쳤다. 마당에는 이 첫번째 계단 말고도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개나 더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당 저쪽 끝에는 또 다른 마당으로연결되는 것 같은 작은 통로가 하나 있었다. 그는 저들이 방의 위치를좀 더 자세히 일러주지 않은 데 화가 치밀었다. 이는 분명 이상할 정도로 무성의하거나 무관심한 대접인데, 그는 이 점만큼은 확실하게짚고 넘어갈 작정이었다. 마침내 그는 첫번째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법원이 죄에 이끌리는 것이라는 감시인빌렘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그러자 심리가 열리는 방은 K가 우연히택한 계단 쪽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 P52

그건 곤란하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봐요." K가 말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처벌받기를 원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돈을 써가며 이들을 구해내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요. 나야 간단히 이 문을 닫고나가서 더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고 집으로 가버릴 수 있지요.
그렇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아요. 오히려 난 진심으로 어떻게든 이들을 구해주고 싶소. 이들이 처벌을 받게 되거나 그리 될지도 모른다는걸 예상했더라면, 이들의 이름을 절대 말하지 않았을 거요. 이들에게죄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죄가 있는 건 조직 자체이고, 죄가 있는 사람들은 고위 관리들이지요." "그건 그래요!" 두 감시인이 이렇게 외쳤다.  - P105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해서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자들. 즉 아직 한 명도 감히 지기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고위 관리들에게 자신의 힘이 미치는 한 응분의 처벌을 내리리라고 맹세했다.  - P108

그는 최근의 골치 아픈 여러 문제들 때문에 에르나를 완전히 잊고 있었고, 심지어 그 아이의 생일까지도 잊어버렸다. 초콜릿 이야기는 순전히 숙부와 숙모 앞에서 그를감싸주기 위해 지어낸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러니그가 이제부터 그 아이에게 정기적으로 보내주려고 작정한 극장표만으로는 분명 충분한 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기숙사를 찾아가서 열일곱 살짜리 여고생과 담소를 나눈다는 것도 현재형편으로는 어쩐지 부적절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제 뭐라고 할셈이냐?" 숙부가 물었다. 숙부는 편지 덕에 자신의 조급함과 흥분 상태를 잠시 잊어버리고는 편지를 한 번 더 읽고 있는 듯이 보였다. "예,
"숙부님." K가 말했다. "그건 사실입니다." "사실이라고?" 숙부가 소리쳤다. "뭐가 사실이란 말이냐? 그게 도대체 어떻게 사실일 수가 있어? 어떤 소송이지? 설마 형사 소송은 아니겠지?" "형사 소송입니다." K가 대답했다. "그런데 넌 형사 소송이라는 짐을 머리 위에 올려두고 여기 이렇게 조용히 앉아만 있다는 거야?" 숙부의 언성이 점점높아졌다. "제가 조용히 있을수록 결과는 더 좋을 거예요." K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걱정 마세요." "그런 말로 내가 안심할 수있겠어!" 숙부가 소리쳤다. "요제프, 이 녀석 요제프야. 네 자신에 대해, 그리고 친지들과 우리 가문의 명성을 생각해봐! 너는 이제껏 우리의 자랑이었는데, 수치가 되어서는 안 돼. 너의 그 태도 말이야" 숙부는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K를 바라보았다. "네 태도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 무죄한 피고인으로서 아직 힘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결코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봐. - P115

 조카에 관한 소송이라면기억에 남게 되지요. 그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숙부가 K에게 재차 물었다. "아주 불안해 보이는구나." "법원 사람들과 접촉하신다고요?" K가 물었다. "그래요."
변호사가 대답했다. "어린애 같은 질문을 하고 그러냐." 숙부가 말했다. "같은 활동 분야 사람들이 아니면 누구와 접촉하겠습니까?" 변호사가 덧붙였다. 그 말은 조금도 반박할 여지가 없어서 K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일하는 곳은 법무부 건물에 있는법원이지 다락방에 있는 법원은 아니겠지요! K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실제로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변호사는 마치 뭔가 당연한 사실을 불필요하게, 그리고 내친김에 설명한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 P129

도 닮았을 리가 없어요. 그분은 거의 난쟁이만 할 정도로 키가 작거든요. 그런데도 그림에서는 저렇게 크게 그리게 한 거예요. 여기 있는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분도 허영심이 엄청 많거든요. 하지만허영심은 나도 많아요. 그래서 내가 당신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다는것이 정말 속상해요." 이 마지막 말에 대해 K는 레니를 껴안아 끌어당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는 가만히 그의 어깨에 머리를기댔다. 그리고 그녀가 한 다른 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은 지위가 어떻게 되죠?" "예심판사예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을 껴안고 있는 K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장난을 쳤다. "또 겨우 예심판사야." K가 실망해서 말했다. "고위 법관들은 다 숨어 있군. 그래도 저 사람은 옥좌처럼 생긴 의자에 앉아있네요." "저건 모두 꾸며낸 거예요." 레니가 K의 손 위로 얼굴을 숙이면서 말했다. "실제로는 부엌 의자에 앉아 있는 건데 의자 위에 낡은 모포를 접어 얹어놓은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온통 소송 생각만 해야 하나요?" 그녀가 천천히 덧붙였다. "아니, 아니오." K가 말했다.
"소송에 대해 너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문제일 정도죠." "그건 잘못하고 있는 게 아녜요." 레니가 말했다. "당신은 너무 굽히지 않는다고들었어요."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K가 물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와 닿는 그녀의 몸을 느끼면서 숱이 많고 단단히 땋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그걸 말해주면 너무 많은 것을 발설하게 되는 거예요." 레니가 대답했다. "제발 이름은 묻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의 잘못이 있으면 고치시고, 더 이상 그렇게 고집을 세우지 마세요. 아무도 이 법원에 맞서 싸울 수는 없고, 결국 자백할 수밖 - P133

에 없어요. 다음번에는 꼭 자백을 하도록 하세요. 그래야 빠져나갈 구멍이 생겨요. 그것이 유일한 기회에요. 그러나 그것도 다른 사람들의도움 없이는 불가능해요. 하지만 그런 도움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직접 도와드릴게요." "당신은 이 법원에 대해, 그리고 거기서 요구되는 사기 관행에 대해 많이 알고 있군요." K는 이렇게 말하고는•너무 세게 그에게 몸을 밀착시키는 그녀를 안아 무릎에 올렸다. "이렇게 해주시니 좋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스커트를 만져서 펴고블라우스도 바로잡으면서 그의 무릎 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나서 두 팔을 그의 목에 두르고 뒤로 몸을 젖히더니 한참 동안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만일 내가 자백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를도와줄 수가 없나요?" K가 시험 삼아 물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놀라며 생각했다. ‘내가 도움을 줄 여자들을 모집하고 있군. 처음에는 뷔로스트너 양, 그다음에는 법원 정리의 아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시중드는 자그마한 아가씨. 그런데 이 아가씨는 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마치 내 무릎이 자신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양 앉아 있군! "그럴 수 없어요." 레니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런 경우에는 내가 당신을 도와드릴 수 없어요. 그런데당신은 내 도움 같은 건 전혀 원치 않으며, 관심도 없어요. 당신은 고집이 세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아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그녀가 물었다. "당신 애인이 있나요?" "없어요." K가 말했다.
"에이, 있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사실은 있어요." K가말했다. "말로는 없다고 했지만, 실은 사진까지 가지고 다니죠." 그녀가 졸라대는 바람에 그는 엘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가씨는 그의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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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오늘은 더 이상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청원서를 써야만 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만일 사무실에서 청원서를 쓸 시간이 나지 않으면 밤에 집에서라도 써야 했다. 밤 시간에 쓰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휴가라도 내야 했다. 하여튼 도중에 중단하는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은 업무에서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가장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청원서를 쓴다는 것은 거의 끝이 없는 작업이다. 특별히 소심한 성격이 아니더라도, 청원서를 완성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은 누구든지 쉽게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변호사가 청원서를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로 보이는 게으름이나 간교한속셈 때문이 아니다. 현재 무슨 이유로 기소되었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그것이 어떻게 확대될지 전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삶 전부를 아주 사소한 행동과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기억 속에 떠올려 서술하고 모든 방면에서 검토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은 참으로 우울한 작업이다. 그런 일은 언젠가 은퇴를하고 난 후에 다시 어린아이 같은 심성이 되는 노년의 정신이 몰두하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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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을 다룬 이론서를 비웃었으며, 공장도 고가의 제작품도 비싼 곡물의 파종도 좋아하지 않았고, 영지 경영의 어느 한 부분만 따로 파고들지도 않았다. 그의 안중에는 언제나 전체로서의 한 영지가 있을 뿐이었고, 그것은 부분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었다. 영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토양이나 공기에 포함된 질소와 산소도 아니고, 특수한 쟁기와 비료도 아니며, 질소와 산소와 쟁기와 비료를 움직이는 주요한 도구인노동자 농민이었다. 농촌 경영에 착수해 다양한 부분을 탐구하게 되면서 특히 그의 주의를 끈 것은 농민이었고, 그에게 농민은 도구일 뿐만 아니라 목적이고 재판관이었다. 처음에 그는 농민에게 필요한 것이무엇인지, 농민이 무엇을 좋고 나쁘게 여기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며그들을 관찰했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농민들에게서 행동거지와 말과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농민의 취향과 욕망을 이해하고, 그들의 말로 이야기하고.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자신이 이미 그들과 동지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그는 대담하게 그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말하자면 농민들이 그에게 실행을 요구한 의무, 즉 농민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실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니콜라이의 경영은 아주훌륭한 결과를 가져왔다.
영지 관리에서는 천부적인 통찰력으로 곧바로 오류 없이, 만일 농민들이 선거를 한다면 분명히 그들이 뽑았을 만한 사람을 관리인이나 촌장이나 대표자로 임명했고, 이들은 절대로 바뀌지 않았다. 비료의 화학적 성질을 연구하기 전에, ‘대차" (니콜라이는 냉소하며 이 말을 즐겨썼다)에 골몰하기 전에 우선 농가의 가축 수를 조사하고 온갖 가능한에필로그 제1부 397 - P397

거절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자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법칙이 있는, 열렬히 사랑하는 특별한 세계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그녀가 그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그가 농민들을 위해 한 공로를 말할라치면, 그는 화를 내며 받아쳤다. "전혀 그렇지 않아, 나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그 사람들 잘되라고 이러는 게 아니야. 이웃의 행복 같은 건 다 시 같은 소리, 아낙들의 잠꼬대 같은 소리지. 나는 내 아이들이 길거리에 나앉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재산을 일궈야 해, 그것뿐이야.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는 질서가 필요하고, 엄격함이 필요해.. 그렇고말고!" 그는 다혈질답게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리고 공평함도 물론." 그는 덧붙였다. "만일농민이 헐벗고 굶주리거나 말이 한 마리밖에 없다면 자신은 물론 나를위해서도 일할 수 없을 테니까."
니콜라이는 남을 위해서라거나 선행을 위해서 뭔가 한다는 생각을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 때문인지 그가 한 일은 전부 유익했고, 재산은 눈에 띄게 불어나 인근 농민들도 자기들을 사달라고 부탁하러 왔고, 그가 죽은 뒤에도 농민들은 오랫동안 그의 경영에 대한경건한 기억을 지켰다. "주인님은...... 농민의 일을 먼저 하고 당신 일을 하셨어. 봐주는 일도 없었지. 한마디로-주인님이었어!"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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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명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시되었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함께 걸었기 때문에 피예르도 세번째 행정부터는 다시 카라타예프와, 카라타예프를 주인으로 선택한 다리가 굽은 청회색 개와 함께 걸었다.
모스크바를 출발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카라타예프는 전에 모스크바의 병원에서 치료했던 열병이 재발했고, 카라타예프가 쇠약해지자 피예르는 점점 그와 멀어졌다. 피예르는 스스로도 이유는 알 수 없었지탄 카라타예프가 쇠약해지기 시작한 후로 그의 곁에 가기 위해서는왠지 노력을 해야 했다. 그리고 곁에 가더라도 그가 언제나 휴식 장소에 누워서 내는 나직한 신음 소리를 듣고 점점 심해지는 체취를 맡을뿐이었으므로 피에르는 되도록 그를 피하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피에르는 포로로 바라크에 수용되어 지내는 동안 인간이란 행복을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며 그 행복은 자신 안에, 즉 자연스러운 인간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불행은 부족보다 과잉에서 생긴다는 것을 이성이 아닌 자기 전 존재, 자기 삶을 통해 깨달았는데, 이 행군의 마지막 삼 주 동안 그는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또하나의 새롭고 위안이 되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는 이 세상에 인간이 행복하고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가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부자유스러운 상태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통에도 한계가 있고, 자유에도 한계가 존재하며, 이 한계가 매우 근접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미 침상에서 꽃잎이 한 개 떨어졌다고 고민하는 사람이나, 지금 축축한 맨땅에 누워 한쪽 옆구리는따뜻하고 다른 한쪽은 차가워서 고민하는 피예르나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며, 전에 곧잘 꼭 끼는 무도화를 신었을 때나, 지금처제3부 241 - P241

립 부스럼투성이의 맨발(신발은 벌써 오래전에 해져버렸다)로 걸을 때나 그 고통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당시그렇게 생각하고 아내와 결혼했지만, 마구간에 갇혀 잠을 자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는 그도 그것을 고통이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벗겨지고 부스럼이 생긴 맨발이었다. (말고기는 맛도 영양도 좋았고, 소금 대신 쓰는 화약의 초석냄새도 오히려 좋았고, 심하게 춥지도 않았고, 낮 행군 때는 더울 정도이고 밤에는 모닥불이 있었으며, 피를 빠는 이도 오히려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다만 처음에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발이었다.
행군 이틀째 피에르는 모닥불가에서 발의 부스럼을 살펴보고 이상태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일어나자 그도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고, 그리는 동안 열이 나면서 고통 없이 걷게 되었으나 그날 저녁 발을 살펴보니 훨씬 악화돼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보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했다.
피에르는 이제야 비로소 인간의 생명력과 주의를 전환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지닌 구원의 힘을 깨달았고, 그것은 마치 증기 압력이 한계를 넘어섰을 때 여분을 방출하는 증기기관의 안전판 같은 것이었다.
낙오된 포로가 이미 백 명 이상 총살되었지만, 피에르는 그것을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 했다. 그는 나날이 쇠약해져 머지않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 분명한 카라타예프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다. 처지가 힘들수록, 또 미래가 무서울수록 그의 머릿속에서는 지금의 처지와는 점점 더 무관한 - P242

온 것이피에르는 회복하는 지난 몇 달 동안 습관처럼 굳어졌던 인상에서 아주 조금씩 벗어나, 이제는 내일이 되어도 누구도 그를 내쫓지 않고, 따뜻한 잠자리를 빼앗지도 않으며, 점심도 차도 저녁도 틀림없이 나오는ㅣ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후에도 오랫동안 꿈에서는 여전히 포로 신세인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포로에서 풀려난 뒤 알게 되었던 안드레이공작의 죽음, 아내의 죽음, 프랑스군의 파멸도 조금씩 이해했다.
즐거움을 주는 자유-그가 모스크바를 출발한 후 첫 휴식 때 처음으로 의식했던 그 완전하고 빼앗을 수도 없는 인간 본래의 자유를 느끼는 즐거움이 회복기의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외면적 상황과는 무관한 내면적 자유에 마치 잉여처럼, 사치스러울 만큼외면적 자유까지 갖춰져 있다는 데 놀랐다. 그는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도시에 홀로 있었다.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를 어디로쫓아내지도 않았다. 원하는 것은 뭐든 옆에 있었고, 전에 늘 그를 괴롭혔던 아내에 대한 상념도 그녀가 이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이상없었다.
"아, 정말 좋다! 참으로 훌륭하다!" 그는 향기로운 국물과 함께 말끔하게 차려진 식탁이 운반돼 올 때, 밤에 부드럽고 깨끗한 침대에 몸을누일 때, 혹은 이제 아내도 프랑스군도 없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 이게 중얼거렸다. "아아, 정말 좋다. 참으로 훌륭하다!" 그리고 그는랜 습관대로 자신에게 물었다. 자, 이제부터는 어떻게 될까? 나는 이ㅈ부터 무엇을 하게 될까? 그러고는 자신에게 대답했다. 별것 없다. 살이가면 된다. 아아, 정말 훌륭하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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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토프가 방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이모에게 인사할 시간을 주려는 듯 잠시 고개를 숙였고, 니콜라이가 그녀 쪽으로 돌아섰을 때 마침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의 시선을 맞았다. 그녀는 품위와 우아함이 넘치는 동작으로 기쁜 미소를 지으며 반쯤 몸을 일으켜 가늘고화사한 손을 내밀고는 비로소 처음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듯한여성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객실에 있던 부리엔 양은놀라 의아한 눈길로 공작영애 마리야를 바라보았다. 교태에 능란한 이여자도 자신을 꼭 좋아해주길 바라는 남자를 만났을 때 이보다 더 훌륭한 태도를 취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검은 옷이 잘 어울려서일까, 아니면 저렇게 아름다워졌는데 내가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어쨌든 대단하다. 저 몸가짐과 우아함은!‘ 부리엔 양은 생각했다.
만약 이 순간 공작영애 마리야가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부리엔 양보다 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놀랐을 것이다. 그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본 순간부터 그녀는 일종의 새로운 생명력에 사로잡히고, 의지와 관계없이 말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로스토프가 들어오자 그녀의 얼굴은 갑자기 변했다. 색칠되고 조각된 초롱 안에 불을켜면 그전까지 조잡하고 거무스름하고 무의미해 보이던 표면에 복잡하고 정교한 예술적인 도안이 홀연 놀라운 아름다움을 띠며 떠오르듯공작영애 마리야의 얼굴도 갑자기 변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순결하고영적인 그녀의 정신활동이 비로소 표면에 드러난 것이었다. 스스로는불만스러웠던 자신의 정신활동, 즉 고뇌, 선에 대한 갈망, 순종, 사랑,
자기희생 같은 모든 것이 지금 반짝이는 눈에, 섬세한 미소에 부드러 - P41

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잠자리에 들기에도 너무 일러서 그에게는 드문 일이지만 지나온 인생을 곰곰이 생각하며 한참동안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공작영애 마리야는 스몰렌스크 교외에서 그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전에 그런 특별한 상황에서 만났다는 것도, 어머니가 한때 부유한신붓감으로 지목한 사람이 그녀였다는 것도 그녀에게 특별히 주의를쏟게 했다. 보로네시에서 그녀를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은 유쾌할 뿐만 아니라 강렬했다. 니콜라이는 그때 그녀에게서 특별한 정신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깊이 감동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 떠날 채비를 하고있었고, 보로네시를 떠나면 공작영애를 만날 기회를 잃게 되지만 유감스럽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교회에서 공작영애 마리야를 만난 것은그의 예상보다 훨씬 깊은(니콜라이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마음의 안정을 위해 바라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 창백하고 가냘프고 슬픈 얼굴, 그 반짝이는 눈, 조용하고 우아한 몸짓, 특히 그녀의 몸 전체에 흐르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깊고 부드러운 슬픔은 그를 불안하게 하고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로스토프는 남자에게서는 이런 높은 정신적 생활의 발현을 보는 것이 싫었고(그래서 안드레이 공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철학이다 공상이다 하며 멸시했지만, 공작영애 마리야에게서는 그 자신과 영 거리가 먼 정신세계의깊이를 오롯이 드러내는 슬픔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던것이다.
‘분명 훌륭한 아가씨일 것이다! 마치 천사 같다!‘ 그는 혼잣말을 했다. ‘왜 나는 자유로운 몸이 아닐까, 왜 소냐에게 그토록 서둘렀을까?‘ - P47

그리고 마음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두 사람을 비교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갖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되는 정신적 자질로 보자면, 한쪽은 빈곤하고 다른 한쪽은 풍부했다. 그는 자신이 자유로운 몸이라면 어떨지 상상해보았다. 어떻게 공작영애에게 청혼을 하고, 어떻게 그녀가 그의 아내가 될까? 아니, 그는 상상할 수 없었다. 무서운 마음이 들고, 뚜렷한 그림은 떠오르지 않았다. 소냐와의 미래 그림은 별써 한참 전에 그려보았고, 모두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데다 소냐 안에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하고 뚜렷했지만, 공작영애마리야와의 미래는 그가 그녀를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소냐에 관한 공상에는 어딘지 모르게 재미있는 소꿉놀이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공작영애 마리야를 생각하는 건 늘 어렵고, 조금은두렵기도 했다.
‘기도하던 그녀의 모습은 어땠는가!‘ 그는 생각했다. ‘온 영혼을 기도에 쏟는 것 같았다.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산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기도이며, 나는 그 기도가 반드시 실현되리라 확신한다. 나는 왜 나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기도로써 구하지 않을까?‘ 그는 생각했다. ‘내게필요한 것은 뭘까? 자유다. 소냐와 이별하는 것이다. 그녀가 한 말이옳다. 그는 도지사 부인이 한 말을 상기했다. ‘그녀와 결혼한다면 불행뿐일 것이다. 혼란, 어머니의 슬픔...... 재정 문제...... 혼란. 무서운 혼란! 그리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 아 하느님! 이 무섭고 출구도 없는 상황에서 저를 구해주소서! 그는 갑자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기도는 산도 움 - P48

직인다는데, 믿어야 한다. 어린 시절 나타샤와 함께 눈이 설탕이 되게해달라고 기도하고 정말 설탕이 되었는지 맛보러 뜰로 뛰어갔던 것처럽 기도해서는 안 된다. 아니다. 나는 지금 그런 부질없는 기도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파이프를 방 한쪽에 놓고, 두 손을 모으고 성상앞에 서며 자신에게 말했다. 공작영애 마리야에 대한 회상에 감동한그는 전에 없이 열심히 기도했다. 그의 눈과 목구멍에 눈물이 차올랐을 때, 하인 라브루시카가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다.
"바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들어오는 거야!" 니콜라이는 급히 자세를 바꾸며 말했다.
"도지사님한테서." 라브루시키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급사가왔습니다. 편지입니다."
"그래, 알았어, 고마워. 가봐!"
니콜라이는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한 통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었고 또 한 통은 소냐의 것이었다. 그는 필적으로 알아보고, 먼저 소냐의 편지를 뜯었다. 몇 줄 채 읽기도 전에 그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눈은놀라움과 기쁨으로 커졌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한곳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편지를 들고 읽으며 방안을 걷기 시작했다. 대강읽은 뒤 한번 더 읽고, 또 한번 읽은 뒤 어깨를 추썩이고 양손을 벌리며, 입을 벌리고 시선을 한곳에 못박은 채 방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췄다. 하느님이 반드시 들어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방금 그가 올린기도가 실현된 것이었지만, 니콜라이는 그것이 뭔가 심상치 않고 전혀예상하지 못했던 일인 양 놀랐고, 이토록 빨리 실현된 것은 그가 기도 - P49

분과 지위를 밝히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했다. 피예르는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피에르가 어떤 결심을 하기도 전에 다부는 고개를 들고 안경을 이마로 밀어올리더니 실눈을 뜨고 피예르를 쏘아보았다.
"나는 이자를 알아." 분명 피에르를 놀래줄 심산으로 그는 침착하고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소름끼치는 한기가 피에르의 등골을 스쳐가더니 바이스처럼 머리를 쥐었다.
"장군, 당신이 저를 아실 리가 없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자는 러시아 스파이야." 다부는 피에르의 말을 가로막더니 예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방안에 있던 다른 장군에게 말했다. 그리고다부는 얼굴을 돌렸다. 피에르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듯 재빨리 말했다.
"아닙니다. 전하." 그는 문득 다부가 대공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고말했다. "아닙니다, 전하, 당신이 저를 아실 리가 없습니다. 저는 민병장교이고, 모스크바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다부가 물었다.
"베주호프입니다."
"당신 말이 거짓이 아닌지 내게 무엇으로 증명하겠습니까?"
"전하!" 피에르는 화를 낸다기보다 애원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다부는 눈을 들고 피에르를 골똘히 보았다. 몇 초간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했고, 이 응시는 피예르를 구했다. 이 응시로 두 사람 사이에전쟁이나 재판이니 하는 모든 조건을 초월한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 - P63

었다. 이 순간 그들은 막연하지만 수많은 것을 느끼고 자신들이 인류의 자식이자 형제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인간의 행위와 목숨이 번호로 불리는 명부에서 고개를 들어 다부가•처음 피예르를 일별했을 때, 피예르는 한낱 상황에 지나지 않았으므로다부는 악행을 한다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총을 쏠 수도 있었지만, 지금 그는 이 남자 속에서 일개의 인간을 보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신 말이 사실인지 내게 무엇으로 증명하겠습니까?" 다부는 냉정하게 말했다.
피에르는 랑발이 떠올라 그의 이름과 소속 연대, 숙사가 있는 거리이름을 냈다.
"당신은 당신이 말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다부가말했다.
피에르는 끊기고 떨리는 목소리로 진술의 사실성을 증명할 증거를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부관이 들어와 다부에게 무엇인가 보고했다.
다부는 부관의 보고를 듣자 갑자기 표정이 밝아지더니 단추를 잠그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피예르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부관이 포로에 대해 환기하자, 다부는 눈살을 찌푸리고 피에르 쪽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데려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에르는 바라크로되돌아가는 것인지, 데비치에 들판을 지날 때 동료들이 가리킨 완전히준비된 형장으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돌아보았을 때 부관은 다부에게 무엇인가 되묻고 있었다. - P64

"그래, 물론이지!" 하고 다부는 말했는데, 피에르는 ‘그래‘가 무슨뜻인지 알지 못했다.
피에르는 어떻게, 얼마나, 어디로 걸어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완전한 무감각과 우둔의 상태로 주위의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발을 옮길 뿐이었는데, 일동이 걸음을멈추자 그도 멈췄다. 그동안 피에르의 머릿속에는 내내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그에게 최종적으로 사형을 선고한 것이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위원회에서 그를 심문한 자들은 누구도그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 할 수도 없었던 것이 분명하므로 아닐 것이었다. 그토록 인간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던 다부도 아닐 것이었다. 만약 일 분만 더 있었다면 다부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나쁘다는 것을 깨달았겠지만, 그 순간에 부관이 들어와 방해를 했던 것이다. 그 부관도 분명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때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대체 누가 최종적으로 사형을 명령하고, 그를 죽이려는 걸까-모든 기억, 갈망, 희망, 사상을 지닌 그의 생명을 빼앗으려 하는 걸까? 누가 그것을 했을까? 피에르는 그것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질서이며, 온갖 상황의 집적이었다.
어떤 질서가 그를, 피예르를 죽이려고, 생명과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말살하려고 하고 있었다. - P65


"지금 외운 건 무슨 기도인가?" 피에르는 물었다.
"엉?" 플라톤은 말했다(그는 벌써 잠들기 시작했다). "뭘 외웠느냐말입니까? 하느님께 기도했죠. 당신은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아니, 나도 하지." 피에르는 말했다. "그런데 자네가 말한 프롤라와라브라가 뭔가?"
"그거잖습니까" 하고 플라톤은 재빨리 대답했다. "말의 축일". 가축들도 불쌍히 여겨줘야 하니까요." 카라타예프는 말했다. "요놈 봐라.
장난꾸러기, 돌돌 말고 누웠군. 따뜻하지, 요놈 자식." 그는 발치에 누운 개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더니 이내 돌아누워 잠들었다.
밖에서는 어딘가 멀리서 울음소리와 비명이 들리고, 바라크 틈새로불빛이 보였지만, 안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피에르는 오랫동안 잠을이루지 못하고 옆에서 잠든 플라톤의 규칙적인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 자기 자리에 누워 있었고, 마음속에서는 조금전에 붕괴되어버린 세계가 다시 새로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전과는 다른 튼튼한 토대 위에 세워지는 것을 느꼈다. - P78

이 비교적 느린 각성에는 무서운 것도 날카로운 것도 없었다.
안드레이 공작의 마지막 날과 시간은 평범하고 단조롭게 지나갔다.
그의 곁을 떠나지 않던 공작영애 마리야와 나타샤도 그것을 느꼈다.
그들은 울지도 떨지도 않았고, 임종이 다가오자 그것을 직감하며 이제더는 그가 아니라(그는 이미 없었고, 그들을 떠나버렸다) 그에게 가장가까운 추억인 그 육체를 돌보았다. 두 사람의 이런 감정이 너무도 강 - P103

렬했기 때문에 죽음의 무서운 일면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또한 그들은 자신의 슬픔을 자극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앞에서도 그가 없는 곳에서도 울지 않았고, 서로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자신이 이해한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드레이 공작이 점점 더 깊이, 천천히, 조용히 그들을 떠나어디론가 내려가는 것을 보았고, 그래야 하고, 그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받았고, 모두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그의 곁으로 갔다. 이들을 데려오자 그는 아들에게 입을 맞추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것은 괴롭거나 슬퍼서가 아니라(공작영애 마리야와나타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요구된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었고, 아들을 축복해주라고 하자, 하라는 대로 한 뒤 또다른 할 일이있는지 물어보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영혼이 떠나가는 육체의 마지막 경련이 일었을 때, 공작영애 마리야와 나타샤는 그곳에 있었다.
"돌아가셨군요?!" 그가 몇 분 동안 아무 움직임도 없이 차가워지며그들 눈앞에 누워 있자, 공작영애 마리야는 말했다. 나타샤는 다가가서 생명을 잃은 눈을 잠시 보고, 서둘러 눈을 감겨주었다. 그녀는 눈을감겨준 뒤 그의 눈에 키스하지 않고 그에 대한 가장 가까운 추억이 된그의 몸, 그것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 어디 있을까?.......
염을 하고 옷을 갈아입힌 유해가 탁자 위의 관에 입관되자 모두 마 - P102

지막 인사를 하러 다가가서 울었다.
니콜루시키는 마음을 찢는 듯한 괴로운 당혹감에 울었다. 백작부인과 소냐는 나타샤에 대한 동정과 이제 그가 세상에 없다는 생각에 울었다. 노백작은 자기도 머지않아 이 무서운 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생각에 울었다.
나타샤와 공작영애 마리야도 이제는 함께 울었는데, 자신들의 개인적인 슬픔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일어난 단순하고도 엄숙한 죽음의 신비, 영혼을 사로잡은 그 경건한 감동 때문에 울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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