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기러기
폴 갤리코 지음, 김은영 옮김, 허달용 그림 / 풀빛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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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에 있는 황혼녘을 나는 흰기러기와 곱사등이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이미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질 것인가를 미루어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읽다보니 요즘 한창 읽혀지는 책들과는 좀 동떨어진, 어쩌면 약간은 구식의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들게 되고.

작가인 폴 갤리코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게 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 흑백영화로 보았던 ‘포세이돈 어드벤쳐’와 ‘루 게릭’의 원작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로 인해 ‘흰기러기’의 이야기가 좀 퇴색되고 진부하게도 느껴졌었다.


흰기러기는 ‘흰기러기’와 ‘작은기적’ 두 편의 이야기로 꾸며진 책이다.

먼저 흰기러기의 주인공 필립은 흉측한 외모에 맑은 영혼의 소유자이다.

그는 자신을 남과 비교해 열등하다고 느껴서 은거하기보다는 세인들의 편견에 당당하게 맞서는 남자이기를 꿈꾸었다.

그래서 좀 더 넓은 세상을 다녀 보았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편견과 조롱, 모멸이었을 것이다.

그림에 재능이 있고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필립은 그의 추한 외모를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조용히 살기로 작정한다.

세상의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필립은 어느 날 프리다라는 소녀가 안고 온 상처 입은 흰기러기를 보살피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는 벅찬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그는 사랑을 받기보다는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당시 프랑스의 항구도시 덩케르트에 영국군이 갇혀 오도 가도 못한 채 독일군의 손에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은 그를 총성이 울리는 전장으로 떠나도록 만들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다운 일을 하러 가는 필립의 뒷모습은 더 이상 일그러지고 흉측한 곱사등이가 아니었고 배를 타고 미끄러지는 그의 머리위로는 흰기러기가 맴을 돌며 함께 갔다.

그 뒷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처음에 나온 ‘흰기러기’도 선입견과는 달리 막상 읽어보니 뒷맛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지만 나는 뒤에 나오는 ‘작은기적’에 마음이 움직였다.

사실 흰기러기가 ‘노틀담의 곱추’ 이미지가 연상되는 주인공을 내세운다면 ‘작은기적’은 ‘플란더스의 개’를 그리게 만든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가 내 어릴 적에 보았던 동화속 주인공과 겹쳐지면서 다시 새로운 감동을 울려준다.

사실주의나 합리적인 사고로는 이해 못할 우연이 서로 간에 연결 고리가 되어 정말 동화처럼 순수하고 작은 사랑의 기적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도 천애 고아인 페피노와 비올레타라는 유순한 당나귀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과정에서부터 온전한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병든 비올레타를 위하는 어린 페피노의 순수한 마음은 야생화 꽃다발의 향기로 화해 모든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침내 교황을 알현하게 되고 성 프란시스의 납골묘에 들어가 비올레타를 위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게 된다.

하지만 페피노는 그 전에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 프란시스의 무덤 앞에서 이기적이지 않고, 신의 뜻이 어떤 것이든 그 뜻을 거스르지 않으리라는 중대 결심을.

마침내 7백년 동안 굳게 막혀 있던 지하 동굴의 통로가 열리고 제단 앞으로 나아가는 비올레타의 발굽 소리와 페피노의 반듯한 뒷모습은 흔들리는 촛불로 인해 더욱 생생하게 각인되어진다.

그 날 그 무덤의 통로에 페피노와 비올레타와 함께 있었던 다미코 신부나 주교, 평신도 관리인등에게도 신의 은총은 함께 했다.

아주 작은 어린이의 순수한 영혼은 어른들의 가슴까지도 촉촉하게 적셔주는 단비를 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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